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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an 02. 2023

책들의 시간 15_오늘의 인생

# 오늘의 인생_마스다 미리 만화, 이소담 옮김_(주)이봄

오늘의 인생, 마스다 미리 만화.

  2023년도가 시작되었다. 매번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전 몸살처럼 한차례 앓곤 한다. 때로는 열감기로, 때로는 대상포진을 앓았던 자리에 이유 모를 수포와 신경통으로, 때로는 깊게 침몰하는 마음 앓이로. 한 해를 떠나보내는 것도 쉽지 않고 한 해를 맞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냥 일상의 하루일 뿐이라고 되뇌곤 하지만 뭔가를 계획하고 싶은 마음과,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들, 불확실성에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이런 마음으로 다시,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을 꺼내 들었다. ‘오늘의 인생’.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같이 일했던 선생님의 카톡 프로필 덕분이다. 참으로 삶을 경쾌하게 살아내시는 선생님의 카톡 프로필에 이 책 사진이 올라와 있었고, 늘 그 선생님의 경쾌함이 부러웠던 나는 이 책이 읽고 싶었다. 그리고는 빠져들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에.

  제일 좋았던 것은 ‘수짱(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화들이다. 어린이집 조리사인 수짱의 연애,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좋아서, 마스다 미리의 책들을 모조리 읽곤 했었다. 30대 중반의 여자가 느낄만한 이야기들, 일본의 문화와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었고, 부모님과의 관계,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참 선한 이웃의 이야기들이 나는 좋았다. 짧은 컷의 단순한 그림체도 좋았다. 그래서 2023년도가 시작되는 지금, 제일 처음 꺼내 든 책이 바로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이다.      


1. ‘알고 있는 것’이 나를 도와줄 때.      


  이 책은 하루하루 작가가 생각하는 짧은 생각들을 만화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의 하루, 작가가 생각한 마음이 바로 ‘알고 있는 것이 나를 도와준다’는 생각이다. 만화의 대사를 글로 풀어보자면 이렇다.


  비디오 대여점의 베이맥스를 보고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내가 영화 <빅 히어로>를 보지 않았다면 저것은 그저 비디오 대여점에 장식된 풍선 인형일 뿐입니다. 그런데 나는 베이맥스를 알고 있고 그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금지된 다정한 로봇인 줄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을 도와주었다.’ 그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들이 지지대가 되어 쓰러지지 않고 버티게 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충격을 크게 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사실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지금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때 문득 귓가에 들린 호시노 겐의 노래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노래 가사 중에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도 괜찮아’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때 그 가사가 나를 조금 기운 내게 해주었습니다. 내 개성의 연약함도 개성의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영화나 음악이나 공연이나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난간’을 만드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152쪽~154쪽)


  개성의 연약함. 작가가 고민했던 어떤 순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공감이 갔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일, 음악이나 공연을 듣고 보는 일, 책을 읽는 일이 작가의 세계에 난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표현이 참 좋다. 작가는 그런 것들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 생기고, 그것이 자신의 어떤 순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2023년도는 알고 있는 것으로 나의 ‘난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알고 있는 것이 어떤 순간의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내가 떨어지지 않게 막아줄 난간이 되어줄 거라는 작은 믿음. 그 알고 있음이 지식일 수도 있으며, 정확한 상황 판단력일 수도 있고, 합리적 마음일 수도 있다. 그 알고 있는 것이 마음의 연약함에서 강인함을 만들고 좁은 이해의 폭을 넓게 만들어 좀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 같단 느낌. 그래서 책을 열심히 읽고 싶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더 많이 듣고, 단단한 힘이 되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다. 뭔가에 대한 배움의 열의도 가지고 싶다.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좀 더 귀를 열어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그런 생각. 그런 오늘의 생각.      


2. 오늘의 생각, 기록하기.


  새해를 앞두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선생님께서 새해 계획을 세우셨냐는 질문에, 늘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다만 하루하루 감사함으로 지내시겠다고.

  그러게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새해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계획을 잔뜩 세우곤 하였는데, 그러다 나이가 들어간다 느꼈던 어느 순간, 이런 계획들이 참 무의미하게 느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냥 흘려보내기를 몇 년.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맞이한 2023년도.

  다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 보고 싶은 마음.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은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해 준 책이다. 하루하루의 생각을 붙잡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책 속에 가득 들어 있다.

  그럼, 올해는 어떻게 보내볼까? 다시 베란다에 텃밭을 가꾸고 싶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작물을 키운다면 더 좋지 않을까? 애호박 키우기를 검색했다가 이내 포기한다. 호박잎을 먹을 거면 키우는 것도 좋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생각나고. 그림 다이어리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마스다 미리가 ‘오늘의 인생’을 그린 것 마냥 나도 한 컷 오늘의 장면을 다이어리에 남겨 볼까 하는 마음. 그림을 못 그리는데 이건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해 볼까? 브런치를 꾸준히 작성하여, 52주 브런치도 만들고. 고장의 둘레길을 정복해보고 싶기도 하고. 또 템플스테이도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냥 생각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나의 새해는 이런 배부른 상상으로 시작한다.      


3. 정리     


  새해를 앞두고 감정의 불편함이 있었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쌓여 계속 내가 느낀 불쾌함을 토로하게 되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결국은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오는 나날들.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내 부끄러워져 얼굴이 화끈거리는.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불편했다. 그냥 넘겨도 될 일을 되새김질하는 그 순간의 내가 나는 불편했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나는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다.


 입만 열면 독기 어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가 느낀 불쾌함이나 불안함들을 마음속에 붙들어두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게 또 습관이 되어 버리고? 계속 그러고 살면 무서울 것 같아. 불쾌함이나 불안함에 점점 민감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반응해버리고.(16쪽)


 그래서 올해는 심심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무탈하고 태평하고 지극히 심심하여, 책을 읽는 한 해. 그런 한 해가 나에게 오기를 바란다.      


[이야기 나눠보기]

1) 여러분의 올해는 어떤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어떤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는지 나눠 봅시다.

2) 살아가면서 ‘알고 있는 것’이 나의 난간이 되어준 경험이 있습니까? 그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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