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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an 09. 2023

책들의 시간 16_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2

#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2_김멜라 외_생각정거장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2 


  나는 단편소설이 좋다. 긴 생각의 흐름과 서사를 따라가야 하는 장편소설의 호흡이 나에게는 버겁다. 하지만 단편소설의 그 압축적인 사건과 현실의 묘사, 짧지만 강한 생각의 전달력이 나는 좋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단편소설집을 선택할 때가 많다. 

  ‘이효석 문학상’은 등단한 지 15년 이내의 작가들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이효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에 제정되었다고 한다. 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작품 중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성석제)’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지인이 이 소설을 재미있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만으로도 그냥 신기하고 좋았다. 그러면서 이효석 문학상의 대상 수상작들이 이효석의 소설과 어떤 맥락에서 그 가치를 이어오는 것인지, 수상의 기준이 무엇인지, 많은 작가들의 문학상이 있는데, 각각의 문학상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다른지 많이 궁금해졌다. 

  앎이 얕고 탐구력이 부족하며, 분석적이지 못한 내가 그걸 발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두고서라도 지금의 나는 문학상을 받은 단편소설을 읽는 것이 참 좋다. 재미있다. 그리고 소설은 여전히 나에게 현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1. 나의 죽음 이후 꿈을 통해 단 한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면.      


  이번 이효석 문학상의 대상 작품은 김멜라 작가의 ‘제 꿈 꾸세요’이다. 처음 제목만으로 얼마나 달달한 상상을 했는지 모른다. 근데, 아니었다. 이 작품은 죽음 이후 주인공과 사신 챔바와의 여정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죽음의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무겁지 않으며, 또 가볍지 않다. 

  예전에는 노년층의 고독사가 많았다면, 지금은 그 양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30대 청년의 고독사도 많아졌으며, 중, 장년층의 고독사도 많아졌다. 혼자 사는 사람이 예전에 비하여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수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이 늘어났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외로움을 더 느끼게 만드는 요즘. 이 소설은 30대 무직자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몬드와 잘게 부순 과자, 말린 크랜베리가 딱딱하게 굳은 초콜릿 덩어리와 함께 인후부의 길을 잘못 든 순간. 내 숨구멍의 마디들이 생장점을 뚫고 나가는 식물처럼 몸이라는 외피를 뚫고 나갈 듯 팽창했다. 폼매트에 엎드려 캑캑거리면서도 나는 이 상황이 죽음으로 끝날 수 있음을 인식했다. 그렇다면 내 사망확인서에 적힐 사랑 원인은 이런 건가. 이물질에 의한 기도폐쇄와 호흡곤란. 하지만 그보다 먼저 시도한 약물 과용은? 켜켜이 쌓인 삶의 질곡들과 내가 나를 찢고 소각해버리고 싶게 만드는 과거의 크고 작은 수치심은? 한마디로, 여름이 다르고 겨울이 다른 내 바이오리듬과 양극성 심리는? 수면장애와 토막잠. 그것들을 불러일으킨 바닥난 의지력, 그리고 압력솥의 추처럼 옆으로 누운 팔자를 그리며 요동친 인간관계는?(13쪽)


  약을 먹고 죽고자 했던 주인공은 사흘 만에 깨어났지만, 카톡엔 그녀의 시간을 궁금해하는 단 한 통의 카톡도 없었다. 외로운 시간. 그러다 먹게 된 시리얼 과자에 주인공은 죽게 된다. 죽음의 순간, 주인공은 자신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한다.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수치심의 순간도 있을 것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감정의 기복도 있을 것이고, 힘든 사회생활의 인간관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해’를 말하기에는 타인의 고통을 너무 쉽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고민이 되었다. 나의 이 생각을 심사위원들의 평과 작품론에서 공감받을 수 있었다. 문학상 작품집의 좋은 점이 심사위원들의 평과 작가 인터뷰, 문학 작품론 등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사람의 관점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오만 안에 자주 정박되곤 합니다. 나의 정체성은 그런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어 어느 때든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거나 왜곡될 위험에 처해 있지요. 때문에 일부러 타인 대신 고독의 손을 잡는 날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지는 않을 겁니다.(88쪽)/작품론_전소영


  주인공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해 줄 사람을 찾아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사신, 또는 길잡이 챔바와 함께. 나의 죽음 이후, 꿈을 통해 단 한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면, 나는 누구를 찾아가야 할까? 널브러진 방과, 내 일상의 기록들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쉽지 않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다. 주인공도 그러했으니라.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참 마음에 든다. 나도 그렇게 선택할 거 같은 느낌. ‘제 꿈꾸세요’라며, 좋은 꿈으로 찾아가고 싶은 느낌.      


2. 사람 사는 모습을 담고.      


  이번 이효석 문학상에도 백수린 작가의 작품이 실려있다. 백수린 작가는 할머니의 삶이나 딸과 엄마의 관계를 잘 포착하여 소설로 표현한 작품을 많이 쓴다. 백수린 작가의 단편 ‘아주 환한 날들’은 남편이 죽고 난 다음 혼자 사는 일흔이 넘은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젊었을 때는 남편보다 이치에 밝아 가난하지만 과일 가게를 잘 운영하였고,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딸과의 거리감이 생겼다. 그걸 극복하지 못하며 살아가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듯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뭔가를 하는 것을 계획하는 사람. 월요일엔 화장실 청소를 하고 화요일엔 아쿠아로빅을 배우고 수요일엔 문화센터에서 수필 쓰기 강의를 듣는. 자신의 시간을 아주 촘촘하게 설계하여, 그 어떤 외로움의 시간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사람. 그렇게 시간을 정해 하루하루 계획을 지켜가며 사는 삶. 그 모습에서 나는 얼핏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남편과 구속받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가치관이 만나 나에게는 시간이 많이 주어져 있다. 그 시간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며, 내가 보내는 일상이 흩어지는 것을 못 견딘다. 그래서 자발적 외로움을 선택할 때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운동장을 돌고, 학교 급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퇴근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하지만, 이건, 사회적 관계에 지쳐 선택한 하나의 도피처일 수도 있고 관계 맺기의 두려움을 들키기 싫은 마음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음을 나는 안다. 다만, 들여다보기 싫을 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 서서히 번져 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 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166쪽)


 우리 엄마의 나이는 칠십 대이고, 내 나이는 사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소설 속 엄마와 딸의 나이처럼. 나는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다시 아주 환한 날들이 엄마의 삶 속에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다. 오랜 시간 홀로의 삶 속에서 자식들만 바라보며 사는 엄마의 삶 속에 ‘아주 환한 날들’이 찾아오기를.      



3. 정리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숨겨진 나의 욕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 사는 모습을 담고 있는 소설이 좋다. 죽음의 길을 인도하는 사자와 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사람들의 꿈속엔 좋은 꿈으로 찾아가기를 바라는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하기도 하며, 코로나로 인해 격리가 심했던 그 시절 마음 깊이에서 발생하는 혐오의 마음을 비난할 수도 없음을 인정하게 하는 소설이 나는 좋다. 완벽한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는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이, 나는 좋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요즘 나의 사는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요새 나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최근 가장 기뻤던 순간도 좋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좋습니다. 자신의 사는 모습을 나눠 봅시다. 

2) 이효석 문학상 수상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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