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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an 16. 2023

책들의 시간 17_아버지의 해방일지

# 아버지의 해방일지_정지아 장편소설_창비

아버지의 해방일지_정지아 장편소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얼마나 재미있게 보았던지. 몇 번이나 다시 보기를 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구 씨(손석구)와 미정(김지원)이가 다시 만나 서로 이름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하는 장면도 아니고, 구 씨와 미정이가 만두를 먹는 장면도 아니다. 내가 그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염창희(이민기)가 화장실에서 롤스로이스의 열쇠를 발견하고, 며칠을 여유롭게 지내는 장면이다. 그리고 드디어 창희가 롤스로이스를 만났을 때, 그때의 해방감이란, 완전 창희에게 마음이 이입되어 몇 번이다 다시 보고 또 보고 그랬는지 모른다. 해방일지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좋아하는 지인과 함께 사람들의 소셜미디어 글들을 보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이 보였다. 초록 초록한 표지의 빨간 별표가 눈에 띄었다. 어, ‘해방일지?’ 궁금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그래서 읽고 싶었던 책. 

  학교 도서관에서 책 신청을 하고, 빌려와서는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재미있다. 재미있었다.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만나게 되는 이런 재미있는 글은 선물 같다. 술술 넘어가는 글 읽기에서 나중엔 눈물이 핑 돌았다. 에구.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는 그런 책. 글 속 고아리의 아버지 고상욱 씨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버지가 떠오르는 책. 


  오십 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 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249쪽)


  책을 덮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그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나, 내가 아는 아빠의 모습과 동생이 아는 아빠의 모습이 달랐고, 나 또한 사람들에게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모두 나의 모습인데, 나는 모두에게 좋게만 보이려 했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는. 

    

1. 유전자의 장난질이라 해도 결국은 닮게 되는. 


  친정에만 내려가면 엄마는 내가 참 많이 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외양적으로는 엄마를 많이 닮았지만, 성격이나 생각, 가치관들에 아빠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글을 쓰는 것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친절한 것도. 때로는 허풍마저도. 

  결국은 벗어날 수 없는 유전자의 힘이라는 건가? 생각과 가치관의 형성이 부모의 영향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당연히 그 삶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지만 결국은 비슷해진 삶의 모습에 좌절할 때도 있다. 


  나는 아리라는 이름 따위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딱 벌어진 어깨에 소도 때려잡을 듯 강건한 육체를 지닌, 그러니까 혁명전사의 딸에 참으로 걸맞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흔한 경숙이 혜숙이 같은 이름이었다면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당황과 모멸의 순간을, 나는 당신들의 청춘을 기념하고자 했던 부모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하며 살아왔고, 살아내는 중이었다.(30쪽)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법을 나는 모른다. 사회주의자 부모가 나를 그렇게 키웠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내 부모는 어린 나를 일으켜주지 않았다. 무릎이 까져 피가 흘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조금 울다가 별수 없이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렇게 자란 나는 누구 앞에서도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울어본 적도 없다. 이게 바로 빨치산의 딸의 본질인 것이다. (53쪽)


  글 속 고아리는 혁명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인내를 미덕으로 여겼던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고 견딤을 통해 시간의 고통을 벗어 나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모습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시대인 것이다. 가끔은 그 중간 어디쯤인가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될 때도 있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 또는 나 스스로의 삶에서도 내가 너무 쉽게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해 보지도 않고 지레 못한다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들이 들 때가 있다. 때로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하여, 타인의 감정을 쉽게 재단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감정에 솔직함보다 적절하게 숨겨, 감정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간과 태도가 필요하다고 여기게 된다. 


  나는 고아리의 괜찮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는 삶이, 부모의 가르침과 교육 속에서 다듬어진 단단한 삶이 조금은 부러웠다. 나의 삶 속에서는 어떤 유산이 남아 있을까? 엄마와 아빠의 어떤 모습들이 나를 이루고, 그것이 나라를 자아를 만나 어떻게 발현되고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2. 연대. 연대의 가치에 대하여.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

아버지의 눈빛은, 누군가 사진으로 그 찰나를 포착했다면, 처형 직전의 독립운동가나 학살당한 동지의 시신을 목도한 혁명가로 해도 믿을 만큼 진지하다 못해 비장했다. (13쪽)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 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 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68쪽)


  ‘혼자 사는 사람들(홍성은 감독)’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의 옆집에 사는 젊은이의 죽음. 고독사. 아무도 그 사람의 장례를 치러 주지 않는다. 혼자 사는 사람이었으니, 삶도 혼자였고 죽음의 순간도 혼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에 이사 온 또 다른 젊은이가 먼저 살던 사람의 제사를 지내준다. 그리고는 주인공에게 그 제사를 같이 지내 주지 않겠냐며 제안한다. 하나둘 모여든 또래 젊은이들. 그렇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죽은 이의 제사를 지내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고독사의 연령이 낮아지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연대의 희망을 사알짝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근데 이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지녔던 협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거나, 아버지에게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장례식장으로 모여든다. 고아리는 아버지의 손님들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은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장례를 무사히 치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누구든 그 죽음 앞에 슬픔과 책임감과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며 손을 걷어붙인다. 

  아이가 한 명뿐인 내게 사람들이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부모가 죽어버리면 자식 혼자 너무 외롭지 않겠냐고, 그 장례의 힘든 과정을 자식이 어떻게 혼자서 다 해내겠냐고. 그래서 아이를 하나 더 낳아야 한다는 말을 함의하고 있지만, 나는 들은 체 만 체하고 만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우리 딸의 삶이 외로울까 걱정이 많이 되기도 한다. 이미 1인 가구의 증가 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요즘,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안은 없을까? 그것이 연대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3. 정리     


  단숨에 소설을 읽을 만큼 소설이 재미있었다. 그러면서도 책을 다 덮었을 땐,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자식을 위한 가장의 그 마음, 그리고 그 삶은 존중받아야 하며, 가치 있음을. 아빠는 너무 빨리 돌아가셔 내게 그리움으로 남았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다시 만나게 된 나의 아부지. 일흔도 훨씬 많이 넘은 나이에도 일을 하시는 시아버지를 생각하니, 그 삶의 가치로움이 다르게 다가온다. 오랜 시간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로 살아오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아부지가 어렵고, 아부지는 여전히 며느리의 마음을 조심스레 살핀다. 머쓱해하지 말아야지를 다짐하게 되는 하루다.     


[이야기 나눠보기]

1) 내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모님의 유산은 무엇입니까? 외형적 모습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습관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2) 소설의 구절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면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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