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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an 23. 2023

책들의 시간 18_인생의 역사

# 인생의 역사_신형철 시화(詩話)_난다


  제목이 거창하다 생각했다. 인생의 역사라니, 인생은 이미 삶이고, 그것 자체가 역사인데, 그 인생의 어떤 역사를 말한다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던 이유는 신형철 님의 평론이기 때문이었다. 신형철 작가님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 그 감동의 기운이 남아 ‘인생의 역사’에 대한 끌림도 남달랐다. 그렇게 정작 나는 읽어보지도 못한 책을 연초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했다. 그리고는 나도 얼른 책이 읽고 싶었다. 이야기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그 책에 대한,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내가 조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8쪽)


  알던 시도 많이 없지만, 작가의 단호한 말처럼 시는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말, 그래서 알고 있는 시도 경험이 달라지면 다시 겪는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그런 시가 몇 편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장석남 시인의 ‘배를 밀며’와 ‘배를 매며’의 시가 그랬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커 갈 때와 머뭇거릴 때의 마음. 사랑이 깊어갈수록 시는 내게 다르게 다가왔었다. 시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시를 읽었을 때의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그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시 평론집인 이 책이 읽고 싶었나 보다.      



1. 문학의 인식적 가치


나는 문학의 인식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것이 있다고는 간주되지만 어떻게 있다는 것인지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학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지식에 대해서 말이다. 근래 읽은 『예술과 그 가치』의 저자 매튜 카이란은 지식을 ‘명제적 지식’과 ‘비명제적 지식’으로 구별되는 논의를 활용해 대답을 시도한다. ‘명제적 지식’이란 “사실에 대한 지식”으로 이는 문학이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고유하게 추구할 만한 지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비명제적 지식’은 어떨까? 이는 “어떤 상태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으로서, 경험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지식의 형태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자전거 타는 법이나 수영하는 법이 그렇듯이 말이다. “사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상태”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한 많은 지식들이 그와 같은 비명제적 지식에 속한다. 경험 외에 그것을 배울 수 있는 장이 문학 말고 또 있을까.(293쪽)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 경험의 다양성. 나는 문학, 즉 시와 소설, 수필, 희곡 등을 통해 아주 다양한 사람을 만났으며, 내 마음의 상태를 조금 파악할 수 있었고, 그 사람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었고, 사람들의 기쁨에 같이 기뻐해 줄 수 있었다. 그게 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경험 외에 인생에 대한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문학이라는 말에 정말 공감한다. 누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명료하고 지식적이며 또 고급스러운 어휘로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 것도 마음에 든다. 

  문학의 인식적 가치, 작가가 말하고 있는 표현을 빌려 그런 것이 있다고 간주되지만 어떻게 있다는 것인지 쉽게 말하기 어려운 지식. 그것을 문학의 인식적 지식이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그렇게 문학을 통해 사실이 아닌 상태를 배운 경험이 있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정서적 어떤 측면만을 매번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책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의 인식적 가치가 아닐까. 언젠가 남편에 대한 불만과 미움, 그걸 표현하지 못하는 중년 여성이 밤에 몰래 훔친 킥보드를 타다가 사고를 당한 내용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사람마다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에 차곡차곡 쌓이는 불만의 상태. 그 상태에서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 나는 그렇게 소설을 통해 또 하나의 인식적 가치를 발견한다.      


2. 시를 만나는 방식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미 느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힘을 명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이 시를 읽은 미국과 한국의 독자들이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112쪽)


  시를 찾아 읽기는 쉽지 않지만 신형철 작가님의 말처럼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을 시 속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살아가다 보면 매번 다른 감정의 어떤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배를 매며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장석남의 배를 매며 중)’ 이 구절은 한창 사랑에 충만할 때 함께 하늘을 보던 그 시간, 구름과 빛과 시간과 그 공간의 감정이 하나로 묶이는 기분이 들었던 때 그냥 사랑한다는 말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때 발견한 시의 구절이다. 사랑한다는 것이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공유를 넘어 뭔가 끈으로 이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의 발견, 추측해 보면, 장석남 시인은 항구에 배를 매고 있었을 것이다. 노을이 지는 저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하늘빛이 남아있는 바닷물은 빛을 받아 일렁일렁이었을 것이며, 시인의 마음도 일렁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사랑에 빠져 있었을 것이며 배를 매며 일렁이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묶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냥 추측. 그냥 그런 느낌. 내가 느낀 느낌을 시인에게 이입하는 것은, 이미 '시'라는 것은 시인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의 감정으로 읽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게 나에게는 시의 구절 발견이었다. 

 ‘우리의 끝이 언제나 / 한 그루의 나무와 / 함께한다는 것에 있다(박준의 삼월의 나무 중)’ 이 구절은 읽었을 때 눈물이 났다. 시의 제목 ‘삼월의 나무’는 봄을 기다리는 나무이다. 겨울날 밥을 먹으면서 봄 나무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 그런데 나에게는 그 시절의 온통 마음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을 때 만난 구절이다. 한 그루의 나무와 함께 하는 끝이라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뭔가 모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시의 구절이 이렇게 어떤 순간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가 차분함을 가져오게 하고, 인정하게 되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내는 그 마법 같은 일. 이런 것들이 시를 만나는 방식이 아닐까.   

   

3. 정리


이제 그는 이렇게 말하기로 결심하는데 이를 제2비가의 결론이라도 해도 무방하다. “살며시 어루만지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임을.” 사랑 따위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다. 격정으로서의 사랑이 덧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진실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 천사가 껴안으면 바스러질 뿐인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살며시 어루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자세 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90쪽)


  이 책은 시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고 있다. 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서 좋아하는 것들로 읊었던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에 대한 신형철 작가의 시화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 느낌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까지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들어서, 또 때로는 공감하지 못하지만 아, 다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좋아하는 한강의 시와 박준의 시에 대한 해석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발견하였지만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던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몇 년 전 읽었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처럼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도 공부가 필요함을 깨닫는 시간이 나에겐 이처럼 책을 읽는 시간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인생의 역사’에 실린 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는 무엇입니까? 또한 마음에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자신이 좋아하는 시의 구절이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 그 구절을 통해 시를 발견한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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