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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Nov 10. 2022

그 남자의 연애편지 3. 잔소리쟁이 아부지.

1981년 12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빠의 두 번째 편지. 1981년 12월 26일. 

진아에게

     

오늘도 어머님께서는 돈 때문에 여기저기를 찾아다니시며 속이 상하셨겠구려.

어머님 몸 상하시지 않도록 당신이 염려해 드리고 당신도 항상 건강에 주의하도록 바라오. 

지금쯤 곁에 핏덩이가 누워 있을 줄 아오. 

00이는 말을 잘 듣는지, 00는 새벽에 지금도 일어나는지 그 버릇을 조금씩 고치도록 하오. 

00은 방학이 되어 무얼 어떻게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오. 

어렵지만 당신도 정말 약을 해 먹어야 할 터인데 어쩌는지 모르겠소. 00가 있으니 일찍 밥 때문에 일어나지 말고 오랫동안 조리를 잘하도록 해요. 

어머님께 상의를 해서라도 내가 있으면 잉어 한 마리는 해 줄텐데. 미안하오. 

부산 누나에게도 오늘 편지를 쓰오. 

그리고 서울 윤 총무에게도 편지를 쓰오. 

이 편지는 귀국하는 사람 편에 회사에서 부탁하여 국내 우표로 서울서 보내는 것이니 그리 아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날 00이가 와서 남의 눈 때문에 잠깐 만났다가 갔소. 

내게 무척 큰 힘이 되고 있어요. 그만큼 나도 열심히 하오. 숙소에서 12명이 자는데 이젠 제법 친하여져 커피도 끓여주고 화투놀이도 하고 재미있게 지내오. 

식사는 내가 집에 있을 때 한 끼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반찬에 흰 밥, 끼니때마다 부식이 바뀌어 소고기 장조림, 동태찌개, 깻잎, 김치, 오이김치, 갈비찜, 소고기 두부국, 숙주나물, 김, 날계란 등 조금도 이곳 걱정을 말아요. 

거북선 한 갑에 240원이니 엄마가 넣어준 한산도가 없는 이곳엔 인기가 대단해 한산도 한 갑에 거북선 두 갑과 몇 차례 바꾸기도 했구려. 

작년에 00이 형이 있었던 아파트 공사 현장 안에 이제 건물이 거의 완공되었고, 

내년 3월경 다른 곳으로, 새 공사 현장으로 가면 내가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것으로 

00이는 말하지만 모두가 내가 생각해, 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이라면 힘든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오. 

회사 간부들은 몇몇은 나를 알고 있는 바 더욱 몸을 아끼고 요령을 피울 수 없는 실정이요. 

부디 어머님, 당신 건강하여야 하오. 

여보, 우리가 이제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당신은 좀 더 가정에 신경을 써서 

마음이 맞지 않다던가 00가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온갖 정성을 다 하여야 할 줄 아오. 

전번 편지 대한항공 엽서 2장과 편지 한 통은 다 잘 받았는지 모르겠소. 

국제 우편으로 하면 우표가 약 500원 돈이나 이렇게 귀국자 편에 보내면 60원이면 되오. 

양해하오. 건강하길 바라오. 

태어난 애기가 무어든지 상관없소. 

건강하게. 아이들 정신도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은 오직 당신 책임이오. 

사랑하는 진아. 오늘은 이만 안녕. 


1981. 12. 26. 아빠.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 아빠 잔소리쟁이다’ 싶다. 

어쩜 이리 세심하게 일화도 잘 이야기하시고, 엄마 걱정할까 한국에선 먹어보지도 못한 밥상이라며 걱정 말라며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왠지 풍도 있으신 거 같고. 

무엇보다 며느리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당부하시는 말씀에서, 참 그 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생각이 많아진다. 

외국에서 보낸 편지인데, 편지봉투에 왜 한국 우표가 붙어 있을까 생각했던 의문이 풀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편지를 보내면, 우표값이 너무 많이 들어 한국에 들어가시는 귀국자 편에 편지를 모아 보내셨나 보다. 

아빠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겠다고 의지를 보이셨다. 

아빠의 그 시간이 쌓여 우린, 조금씩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가난에서. 

아빠의 마지막 구절에 괜스레 눈물이 핑 난다. 

건강하게, 정신도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자상하고 다정하셨으며, 어린 나를 발등에 올려 함께 춤을 춰 주시던 따뜻한 분이셨다. 아빠의 그런 사랑을 넘치도록 받아, 열두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는 아빠가 참 많이 그리웠지만, 따뜻한 사랑은 늘 마음에 남아 잘 자랄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 엄마가 든든하게 계셨기에.      


아이고. 한산도가 거북선보다 더 맛있는 담배인가 보다. 아빠,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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