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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Feb 13. 2023

책들의 시간 21_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_정세랑 외_창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읽고 싶단 생각을 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편지. 편지였기 때문에. 편지가 가지는 은밀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잘 알고 있어서 나는 편지글이 유난히 좋다. 얼마 전 조선시대 나신걸이라는 사람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국가지정 문화재가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쓰인 편지라니, 얼마나 귀한지. 무엇보다 편지의 내용이 변방 하급관리인 남편이 아내에게 그리움과 생활의 걱정을 토로한 내용이라니. 이 소소하면서 살뜰한 내용을 읽을 땐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라 하니 그 궁금함이 컸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에필로그에 쓰인 문구 때문에.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정세랑 작가의 이런 말에서 시작했습니다. 

 천년 전, 이천 년 전의 여성 작가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언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흐름 속에 내가 있구나. 릴레이 같다는 생각을 해요. -jtbc 「방구석 1열」 141회에서. 


  정세랑 작가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피프티 피플’ 이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수업을 하고 싶어 창비에 직접 메일을 보내고, 몇 부분을 복사해서 수업에 사용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는 책 속 인물의 삶을 아이들과 함께 분석하고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토론의 주제로 삼은 적이 있다. 그니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정세랑 작가의 한 마디에 시작된 이 책에 대한 궁금함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1. 아주 작은 변화의 시작을 꿈꾸며.      


  이 책은 ‘언니’에 집중한다. 여성의 삶 속에서 같은, 또는 비슷한, 그리고 먼저의 삶을 산 선배인 언니들의 이야기가 자신에게 준 영향력, 그걸 편지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혼자 걸을 때에도 함께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음악감독에게 편지를 쓰며, 음악감독은 또 동물권을 위해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삶에 도움을 준 배우에게. 자신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영향력을 준 사람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다.

  모든 편지들을 읽으면서 제각기 분투하는 삶의 모습이 남 일이 아니라 나의 일임을 너무 잘 알기에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논픽션 작가님인 하미나 님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스베틀라나’에게 쓴 편지의 구절을 읽으면서 스베틀라나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개미처럼 조금씩 천천히. 

  이 말은 요즘도 제가 절망할 때마다 속으로 되뇌는 말입니다. 그렇죠. 세상은 그렇게 빠르게 바뀌지 않지요. (79쪽) / 고통은 이야기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하미나)


  세상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지만 분명히 바뀌어왔음을 알고 있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분명 다를 것이며, 선한 목적 아래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로 인하여 바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편지 중에서 마음에 잔잔히 스며드는 편지가 있었다.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식물세밀화가인 이소영 님이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편지. ‘식물은 언제나 다정합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에게도 제 눈앞의 들꽃들이 보일까요? 아주 작고 흔하며 긴 시간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내기 위해 강인한 생명력을 얻어낸. 매 계절에 피어나는 들꽃이요. 크레인과 저는 전혀 다른 시간에 살지만, 할미꽃과 동백나무와 개나리로 연결되는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어디서나 피어나는 이 작은 들꽃들이 제게 종종 그러듯 크레인에게도 위안을 건넸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에게도 식물이 전하는 위안이 전해지길 바랍니다.(60쪽) / 식물은 언제나 다정합니다(이소영)


  이 편지는 위안이 필요한 우리에게 쓰고 있지만 선교사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와서 ‘한국의 들꽃과 전설’을 쓴 크레인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크레인은 1900년대 초 우리나라의 꽃을 관찰하고 그걸 그림으로 그려 책을 냈다. 다만 그 책은 일본과 미국에서만 출간되었기에 우리나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소영 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식물 기록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기록된 것이 더 많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또한 식물의 학명에 일본인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소영 님은 이 편지에서 크레인의 섬세함을 들려준다. 할미꽃 그림 옆에 작게 ‘할머니꽃’이라 적은 부분, 복주머니란 옆에 개불알꽃이라는 이름 대신 영문명만 적어 놓은 부분이라든지. 신종을 발견해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자 하는 욕망과 기록의 목적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등, 크레인이 식물을 대하는 태도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작은 위안을 경험했다. 크레인이 미국에서 머나먼 한국에 와서 우연히 발견한 들꽃에 마음을 빼앗기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렇지 않은 어떤 날 작은 꽃에 마음을 빼앗기던 그 순간의 마음. 그리고 위안. 그래서 이 편지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2. 정리.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과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긴 했다. 하지만 하나로 이야기를 모아갈 자신이 없어, 그냥 나의 ‘언니’를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서 ‘니키 리’는 과거 외할아버지 생신 잔치에서 보았던 기생의 모습이 예술을 사랑하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왔음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할지 ‘실비아플러스’에게 물어보고 있다. 

  저마다의 삶을 이루어갈 때 영향을 준 언니, 나에겐 그런 언니가 있나. 카페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삶에 ‘언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빠도 있었고, 선배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다. 정세랑 작가님의 말처럼 어떤 흐름 속에 나를 있게 만들어 주는 존재들이 매번 있었으며, 한동안 사라졌으며, 늘 잊고 살다가 문득 떠올라 내 삶을 이루고 있음을 나는 안다. 

  야간학교라고 알아요? 물어봐 줬던 언니, 그 시작이 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열망이 되게 만들었음을. 아주 큰 삶의 도전이나 변화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다짐하게 만들었으며, 나를 조금은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었던 같이 일하는 사람들, 나를 긍정해 주는 여전히 좋은 친구도 나에겐 ‘언니’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지금껏 받았던 편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나요? 누구에게 받은 편지였으며 왜 기억에 남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크든 작든 스스로의 삶에 영향력을 주었던 ‘언니(사람)’가 있다면 누구였으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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