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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Feb 20. 2023

책들의 시간 22_믿음에 대하여

# 믿음에 대하여_박상영 연작소설_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작품집에서 박상영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는 작가의 산문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읽었더랬다. 재미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이름이 익숙했다. 이번 책은 제목이 고전적이라 선택하였다. 사실, 요즘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 그 ‘균열’에 대하여 생각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믿음에 대하여’를 발견하고는 읽고 싶었다. 작가가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믿음에 대하여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연작소설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네 편의 소설이 이 책에 실려있다.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서로 직장 동료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또는 스쳐가는 인연으로 엮이어 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광고가 하나 있다. 너무 옛날 광고라 기억이 완전하진 않지만 광고의 카피가 ‘잘생긴 남자에게는 여자친구가 있고, 더 잘생긴 남자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다.’였다. 그때 이 광고를 보고는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 소설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남 간의 사랑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사랑이란 정서는 누구에게나 충분히 공감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요즘 애들, 그들에게도 힘들었을 안간힘의 궤적.      


  첫 번째 작품을 읽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새 대학교 3학년이 되어버린 딸. 태어났을 땐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렇게 생각했던 마음이 초등학교 들어갈 땐 친구들하고 잘 지낼 수 있을까의 고민으로, 고등학교 땐 대입 진학에 대한 고민으로 그렇게 고민의 폭을 넓혀가더니만, 올해. 대학교 3학년이 되니 자기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직업을 가질 순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엄마가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이 혹여 부담이 될까, 숨 죽여 말도 못 붙인다. 


 서른한 살, 벌써 네 번째 신입 사원이 된 나는 스물세 살에 잡지사에 들어와 내 나이 무렵에 이미 팔 년 차 직장인이었던 배서정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삶에 옮겨 붙은 어떤 안간힘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 (62쪽)


  이 단편의 주인공은 김남준. 스물세 살에 잡지사 인턴으로 들어가, 사회생활을 배운 남자. 나중엔 방송국의 앵커가 되지만, 그 처음의 실패가 김남준에겐 삶의 자세를 남겼다. 적당히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과잉된 감정을 보여주지 않으며, 누구나 예상 가능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통증만을 보여주는 삶의 자세. ‘안간힘의 궤적’이란 구절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학교는 그나마 그런 안간힘의 궤적에서 사실 조금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며, 나이가 많든 적든 ‘교사’라는 동등한 직책을 지니고 있으니. 

  작년 한 해 나는 조금 마음이 힘들었다.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요즘 애들’ 때문에. 끊임없이 MZ세대란 저런 거냐며를 외치며, 그 사람을 비난했었고, 일을 대하는 자세의 불성실함을 비판했었다. 결국 그 사람의 일은 내 몫으로 돌아왔지만, 차라리 그게 편했다. 설명하고 가르치고 비난하고 비판하며 감정이 상하는 그 순간을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내가 하고 만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더 편했다. 

  이 단편의 제목 ‘요즘 애들’은 요즘 애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아우, 나는 그 정도의 선배는 아니었지’ 라든가 ‘아무리 선배라도 요샌 저렇게 사생활을 물어보진 않지.’ 라든가 조금은 변명을 하며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김남준도 안간힘의 궤적을 따라, 선배 배서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직장생활은 결국 안간힘을 내며 버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여전히 마흔 중반의 나도, 이 직장생활에서 안간힘을 내고 버티고 있으니.  

    

2. 믿음이 깨어지기 시작하는 균열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작품의 네 번째 단편, ‘믿음에 대하여’는 임철우가 주인공이다. 임철우는 사진작가였지만, 연인이었던 Y의 죽음으로 인해 지금껏 살아왔던 길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나는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조명과 카메라를 사용해 더없이 화려한 사진을 찍었다. 일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채와 섬세한 그림자들이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내가 찍은 광고 사진이 국제 광고제 옥외광고 부분을 수상하자 프랑스 본사에서 대표의 인장이 찍힌 감사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내 일을, 나아가 내 삶을 사랑했고 한 번도 그 절실한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Y의 배신과 죽음 이후 나는 바뀌었다. 나의 사진이, 그 속에 담긴 대상의 모습이 모두 거짓 같아 보였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믿음은 회복되지 못했고 나는 창작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 지난 삶을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었다.(190쪽)


  임철우에게 사진을 찍는 일은 어떤 일이었을까? 보이는 것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인의 거짓말로 인해, 임철우는 진실이란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사랑했던 일을 그만둔다.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또는 어떤 관계에서든 ‘믿음’이라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그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소설 속에는 크게 두 연인의 관계가 나온다. 김남준과 고찬호, 임철우와 유한영. 그들은 연인 관계였으며, 어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거를 선택하게 된다. 결혼 관계를 통해 가족이 구성되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동거도 정말 많은 것 같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선택하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동거에 대하여 나는 예전에는 찬성하였고, 지금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발견하게 되는 작은 충돌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균열의 시작이 되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임철우는 연인의 거짓말이 자신이 사랑했던 일에 있어서의 균열을 가져왔고, 유한영은 자신의 소망과 같은 소망을 품지 않는 연인으로 인해 사랑의 균열을 발견한다. 또한 김남준과 고찬호는 코로나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의 균열을 경험한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삶을 대하는 같은 태도를 지닌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작은 취미마저도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흔들리며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임철우가 자신이 사랑했던 일이라 믿었던 사진사의 일을 그만두고 작은 술집을 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다시 사진사의 일을 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선택한 삶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도 다시 시작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확고한 무언가를 가지기 힘든 세상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자신에 대한 긍정과 믿음이 필요한 세상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3. 정리. 


  이 소설은 20~30대 청춘들의 일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 우리가 20대였을 때 마주했던 세상과는 달라져 있음을, 그러나 나는 삶을 대하는 어떤 본질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소설가 K와의 인터뷰는 즐거웠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게 부러웠는데, 그때의 내게 결핍된 것이 그런 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것들. 내가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46쪽)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이미 안정된 삶에 대한 보장으로 인한 편안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으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조차 전혀 궁금하지 않은 부정적 감정일 때, 그냥 살아지지만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그렇게 다가온다. 그때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어진다. 나는 그랬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내 삶을 갉아먹긴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더 위험한 시간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딸이 살아가는 시간엔, 지금의 20~30대 청춘이 살아가는 세상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을지언정, 끊임없이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이, 자신에 대한 탐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있기를 바라게 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요즘 애들’이었던 시기에 직장에서 겪었던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을 통해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나눠 봅시다. 

2)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믿었던 일의 균열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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