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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Feb 27. 2023

책들의 시간 23_아만자

# 아만자 1권~5권_김보통 글, 그림_예담

  친정 오빠의 추천 책이다. 오빠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으며 좋은 책이라며 추천해 주었다. 오빠의 말에 얼른 읽어보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작가 책이었다. 김보통 작가의 수필집을 읽은 적이 있다. 디저트에 대한 생각을 적은 책이었는데, 술술 읽혀서 기억에 오래 남았었다. 사실 이런저런 검색 가운데 ‘아만자’라는 책을 알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읽을 생각을 안 했는데, 오빠의 추천 덕분에 읽고 싶어 졌다. 읽고 나서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빠가 생각나서. 

  작가는 이 책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또한 마지막 글에도 ‘지금쯤 숲 속 어딘가 호젓한 호숫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채 세월아 네월아 태평하게 낚시를 하고 계실 나의 아버지’에게 작가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 가족의 바람대로 작가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평범함을 버리고 만화가가 된다. 그리고 ‘아만자’는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반성문 같은 글이라며 고백하고 있다. ‘아만자’, ‘암환자’ 작가의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으며, 이 만화의 주인공은 스물일곱 암에 걸린 박동명이다.    

  

1. 왜, 나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처음 주인공이 병원에서 ‘암’을 진단받을 때, 주인공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 덤덤하게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여자친구에게도 말하고, 병원에 입원을 해서도 영국에 가서 ‘피시 앤 칩스’를 먹고 싶다고 농담을 하는. 하지만 병이 깊어질수록, 주인공의 마음에는 원망이 계속 쌓여간다. 그리고는 질문한다. 

  “왜, 왜 내가 죽어야 하지?”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얼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을까? 왜 그런 불행이 나에게 다가올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있어 ‘암’은 피할 수 없는 가족력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내가 12살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으며, 사촌 작은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큰아버지는 ‘위암’이셨다. 그리고 엄마는 뇌종양으로 수술을 10시간을 하고 40여 일을 병원에 입원해 있으셨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는 채 10년이 되지 않아 엄마는 ‘난소암’에 걸리셨다. 엄청난 항암의 시간을 견디고 엄마는 지금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다. 이런 가족력에 ‘암’이 두려울 법도 하지만 아직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대비 없이, 철없이 살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왜… 왜 내가 죽어야 하지? 싫어… 나는 아직 젊잖아. 취업도 해야 하는데…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왜… 왜 난데? 왜? 이게 뭐야… 하고 싶은 게 아직 많은데… 왜… 도대체 내가 왜? 내가 왜 죽어야 하는데… 죽기 싫어… 정말로… 말해봐. 이유가 뭔데? 왜? 도대체. 왜 이런 건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5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이런 질문이 나올 거 같다. 왜 나지? 왜 나인거지? 아빠도 그러지 않았을까? 아빠의 시간을 나는 잘 기억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아빠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아빠의 나이 46살 정도. 지금의 내 나이. 아빠는 아주아주 어렵게 살다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노동자로 일을 하였고, 그리고 돌아와서는 택시 운전사, 공인중개사로 일하셨다. 흔히들 말하는 부동산 붐의 시절, 아빠는 공인중개사로 많은 돈을 버셨고, 그간의 어려움의 시간을 보상받는 것 같으셨을 거다. 근데, 그때 폐암에 걸리셨다. 살만하니 죽는다고, 그 속담이 아빠의 삶을 그렇게 관통했다. 아빠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드디어 이제 살만하다고, 여행이라는 것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안심했을 때, 아니 좀 더 행복에 겨웠을 때 아빠는 죽음의 시간을 선고받았다. 왜 나이냐며 끊임없이 부르짖으셨겠지? 

죽음은 그렇게 이유를 가지고 다가오는 게 아님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무슨 의미를 만들었는데? 죽음에 무슨 잘못이나 의미가 있겠어. 달팽이와 새와 너구리와 나무가 죽듯이 그저 태어났으니 죽을 뿐이지. 특별한 죽음 같은 건 없어. 굳이 따지면 운이 없는 거지. 그래서 내가 묻잖아. 무슨 의미를 만들었냐고? 살아 있는 동안 네 삶에 어떤 의미를 만들었냐고? 네가 죽지 말아야 할 의미가 있어? 네 죽음이 특별히 슬픈 의미는? 그런 걸 만들었어? 말해봐. 어떤 의미를 만들었니? 죽음의 의미를 물을 정도로 의미 있는 삶이었니? 그냥 살아 있기만 했던 거 아니니?(5권)


  참, 잔인한 신이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너 그냥 태어났으니 죽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신. 그게 진리이면서도 스물일곱 살 주인공의 죽음은 예상을 넘어선 이른 죽음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슬픈 의미의 죽음이지만 신은 죽지 말아야 할 의미가 있냐고 묻고 있다. 죽음 앞에 스스로 돌아보며 질문하게 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과연 있나 하는 생각. 슬프지 않은 죽음이 있나 그런 생각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물론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2.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다시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대답해! 나는 실패한 거야? 어떻게 된 거야? 넌 누구야?!

만약 내가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을 거야.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을 거야!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더 많은 사람을 용서했을 거야! 더 많은 기쁨과 슬픔을! 더더 많은 환희와 절망과! 그보다 더 많은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느끼며 살았을 거야! 그래. 정말 살았을 거야.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그저 살았을 거야. 물론 숱하게 상처받고, 많은 시간을 후회하겠지. 때로는 삶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괴로운 순간도 있을 거야. 하지만 망설이는 걸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게 살아 있다는 거니까. 산다는 거니까. 

나는… 결국 나는 죽는 거야? 

그렇다고 지난 나의 삶을 후회한다거나 의미 없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나는 분명 살았으니까. 나를 지켜봐 준, 나를 사랑해 준, 항상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게 의미가 되었으니까. 바라는 게 있다면 부디, 부디 모두가 깊은 슬픔에 빠져 있지 않길, 나를 잊지 말아 주길, 그리고,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가길(5권)


  아빠는 다시 살 수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어떤 삶을 살기를 원했을까? 어떤 시간들을 보냈을까? 가정한다는 것이 슬픔을 더 깊게 만드는 일인 줄 알지만, 가정해 보게 된다. 아빠의 마음을 내가 짐작하기란 한계가 있지만 내 시간 속에 아빠는 어떻게 계셨을까? 13살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땐, 누구보다 큰 웃음으로 축하해 주셨겠지? 고등학교 때는 같이 여행을 갔을 것 같고, 대학교를 선택할 때 엄마랑 싸우는 나를 보고는 내 편을 들어주셨을 것 같은 느낌. 결혼하겠다며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을 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문도 안 열어 주셨겠지. 

  삶을 살아가는 순간마다 아빠의 부재가 불쑥 나타나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빠를 잊지 않고 살고 있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에도 나를 참 보고 싶어 했다는 아빠를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기억하고 있다. 


3. 정리 


  김보통 작가의 ‘아만자’는 암에 걸린 주인공의 생각, 그 곁을 지키는 부모님의 마음, 온전한 슬픔으로 남자친구를 떠나보내는 연인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사막화되어 가는 숲을 막기 위한 주인공의 여정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엔 사막이 상징하는 것이 죽음인가 생각했더랬다. 죽음을 막기 위한 몸부림의 과정. 하지만 책을 다 읽으면서 여기저기 두고 온 마음을 찾아내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초기에 발견하면, ‘암’도 치료가 가능하다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암의 종류에 따라서 그 예후가 다름을, 그래서 암 치료 후 생존 확률이 높다는 것도 암의 종류마다 다르기에, ‘암’은 여전히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질병임을. 

  책을 읽으면서, 아빠의 시간을 생각했고, 엄마의 시간을 생각했다. 나는 아빠의 시간은 함께하지 못했고, 엄마의 항암 시간은 함께 했었다. 그다지 힘들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엄마는 이겨내고 살아낼 것이며, 암의 초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금, 삶의 이 순간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책을 읽어 마음이 잔잔해진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발견해 봅시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어떤 환희의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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