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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Mar 06. 2023

책들의 시간 24_모순

# 모순_양귀자 장편소설_쓰다

  이번 독서 모임의 책은 양귀자의 ‘모순’이었다. 모순을 읽어 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거 너무 옛날 책 아닌가?’였다. 대학교 때 양귀자의 책에 빠져 한참을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책의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재미있게 읽었었지’ 그런 생각과 함께, 작가의 다른 책 ‘원미동 사람들’도 함께 떠올랐다.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는 참 재미있어서, 이렇게 글을 잘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사람들의 마음이 잘 드러난 글들은 정말 공감을 이끌어 내는구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다시, ‘모순’을 읽었다. 읽으면서, ‘그래 내가 대학교 때 이 구절을 좋아했었지’도 발견할 수 있었고, 대학교 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근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으니, 책이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각각의 사람에게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음을, 그리고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책의 힘이다.      


1.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 


  그래도 사랑의 유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사랑이다. 김장우와 함께 떠났던 서해바다에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 장렬한 비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누추한 나는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였다. 부끄러움을 누더기처럼 걸치고 그토록이나 오래 기다려온 사랑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싶지 않다. 저 바다가 푸른 눈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는 더욱.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내가 두 사람 앞에서 판이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되었다. 나는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다. 나영규에게는 사랑과 유사한 의사(擬似) 사랑이 있었을 뿐이었다.(220쪽)


  이 책의 주인공 안진진은 현재 25살이다. 그리고 두 명의 남자를 만나고 있고. 지금이야 25살의 찬란함에 결혼이라니, 충분히 놀랄 일이지만,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1998년에는 27살 정도가 결혼 적령기였던 거 같긴 하다. 안진진은 스스로 한 명은 사랑하지만, 한 명은 사랑의 감정을 모방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25살 찬란한 안진진에게는 누추한 자신의 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할 수 없는 사람이 그 기준이 되고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자신의 현실을 말할 수 없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진실을 굳이 보여주지 않는 것, 그런 마음. 안진진은 그게 사랑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다 보여주고 말하게 되는 사람, 자신의 누추한 모습을 굳기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안진진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안진진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을 가지고 김장우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나영규와 결혼한다. 

  이 책의 제목, ‘모순’. 이 책은 끊임없이 모순된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던 사람과 결혼하는 현실. 그것도 모순이었으며, 아버지를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다시 삶의 생기를 찾는 엄마의 모습도 모순이다. 어떻게 이렇게 제목을 잘 지었을까? 

  아무튼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것이 때로는 과장과 부풀림으로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 마음을 누가 탓할 수 있겠냐 만은, 그 거짓의 덫에 걸리고 나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피곤한 일이 될 수도. 하지만 사람이 언제든 솔직할 수만 있을까? 나는 굳이 말하지 않는 진실, 그것을 거짓이라고 보지 않는다. 굳이 밝히지 않는 것, 굳이 나의 누추함을 말하지 않는 것, 굳이 나의 약점을 미리 말하지 않는 것.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에 있어서의 적당한 거리감. 그것이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런 거리감이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 

  어렸을 때는 결혼이라는 것이 ‘나의 편’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고, 나의 처지를 이해하며, 내가 솔직한 만큼 그도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굳이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은 느낌이다. ‘보다 나은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욕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개인적 누추함을 굳이 공유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함께 세상을 살아내고 있음을, 그것이 부부의 삶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렇다면, 결국 결혼 선택의 기준이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참 모순적인 결론에 이르고 만다.     

 

2. 무엇이 힘든지 발견할 수 없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삶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모부는 심심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돌출을 못 견뎌하고 파격을 혐오한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 있는가. 어쩌면 나는 이모의 넘쳐나는 낭만에의 동경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을 더 쉽게 선택하는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이모부 같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이모의 낭만성을 나무라는 것이 내게는 훨씬 쉽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그 한없는 모순…….(232쪽)


  이 책에는 주인공의 엄마와 이모가 나온다. 주인공은 김장우에게 이모를 엄마라고 소개한다. 이모와 엄마는 쌍둥이이지만 그 삶의 모습은 달랐다. 엄마의 삶은 늘 긴장 상태였으며, 폭력 남편과 감옥에 간 아들과 끊임없는 사건들을 견디기 위해 오히려 체념과 무기력보다는 불행의 극대화를 통해 삶의 생기를 발견하는 사람이었으며, 이모는 경제적 여유, 철마다 함께 여행 가는 남편, 잘 자란 아이들이 있지만, 어디를 갔다는 것보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는 남편과 아이들로 인해 삶의 생기를 잃어가는 사람이었다. 안진진은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지만, 이모의 낭만성을 비난한다. 

  보통 사람들은 ‘만약’의 삶을 가정하며 살곤 한다. 지금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만약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금의 삶이 고통이 될 때도 있다. 이모는 자신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무엇이 힘들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힘들어서 삶을 끝내고 만다. 무엇이 힘든지 발견할 수 없는 삶, 그런데도 힘든 삶. 그것이 삶이 가진 모순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지금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임으로 인한 극복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체념과 인정, 그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이어지는 나날이다.     

 

3. 정리. 


세상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네가 하는 박사 공부는 그렇게 단순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보는 세상이야. 네가 하는 박사 공부는 그렇게 단순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보는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어.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176쪽)


  이 구절처럼 모순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을까?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있는 삶. 그래서 삶의 모습은 너무 다양하고, 한 면만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그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나와 같지 않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없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게 삶이지, 그래, 그래서 살아보는 거지. 이런 마음.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이 참 많은 책이었다. 1998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었는데, 2023년에 읽어도 충분히 공감 가는 사람 사는 모습이 담긴 책. 재미있었다. ‘이야기 나눠보기’는 독서모임 사회자 선생님께서 제안한 내용으로 적어보고자 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지루한 천국에서 살던 이모는 결국 자살이라는 일탈을 저질렀습니다. 어른이 된 후 내가 저지른 일탈을 나눠 봅시다. 

2) 내 인생의 모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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