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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Feb 06. 2023

책들의 시간 20_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_송지현 소설_문학동네

좋다. 며칠 따뜻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겨울이지만, 따뜻한 날들.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부자가 된 마음으로 아껴가며 읽은 책. 처음 들어본 작가의 소설집. 제목은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심심한 소설을 참 좋아하는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책을 다 읽었을 땐, 언젠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엄마와 오빠와 나와 남동생이 함께 온천에 갔다 오면서 먹었던 잔치국수가 생각나기도 했고, 삼계탕이 생각나기도 했다. 남들과 같으면서도 다른 가족의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 책. 여름의 제목을 가진 소설은 한 편 밖에 없지만, 소설을 읽고 나니 여름날의 지루함과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난 다음의 상쾌함이 함께 느껴졌다. 그래서 좋았다. 단편소설집이지만, 각각의 소설 중간중간에 퍼즐처럼 앞에서 나왔던 소설의 구절이나, 장면, 주인공의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1. 내가 성숙하다는 착각에 대하여.      


많은 단편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 것을 고른다면, ‘오늘의 가족’과 ‘명절 전야’이다. 두 소설 모두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오늘의 가족’은 외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장에 모여든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미주는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고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뒤늦게 시골로 내려간다. 장례식장에 모여든 가족의 모습, 이 소설은 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왠지, 어디서 본 듯한, 우리 가족의 단면을 미리 맛본 기분이 들 만큼. 나는 가족들 제각기의 모습이 익숙했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미주. 미주가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 그리고 그 자신은 어른스럽다 생각했지만 결국은 어린이의 미숙한 생각이었던 그 성숙함. 


사실 미주가 처음부터 주영을 예뻐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영이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와 자신으로 완벽했던 세계가 모두 엉망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자신이 그 어린 생명체를 키우는 걸 도와야 한다는 것도. 그 생명체에게 자신의 몫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기뻐하는 척했다. 어른들이 열두 살짜리 아이의 현실적인 예측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주는 알고 있었다. 미주는 또한 자신이 언니 노릇을 하면 어른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른들을 안심시키고 나면 미주는 또래에게 추앙받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또래에게 추앙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려면 또래가 하지 않는 것들을 해야 했다. 미주는 시를 읽고 영화를 보고, 미술을 감상했다. 그리고 또래와 놀지 않았다.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추앙받는다는 게 고작 그런 거란걸 미주는 혼자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72쪽)


미주는 동생이 태어나면서 어른들을 안심시키고 또래에게 추앙받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린 열두 살. 그러면서 친구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게 되었다고. 그것이 시를 읽고 영화를 보고 미술을 감상하는 것이었다고. 미주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땠을까? 참 부끄러운 기억들이 많다. 미주보다 나는 더 어른의 나이에, 스무 살. 나는 또래와 다르기를 바랐다. 야간학교 교사 생활을 하며, 나는 봉사를 하는 사람이야를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늘 특별한 삶을 살아간다 생각했고, 자부심이 있었고, 국어국문학과에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조금은 과묵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우울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몸으로 우울을 표현하던 선배를 아주 오래 혼자 좋아했다. 그의 우울이 나를 만나면 밝아질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이상한 믿음으로. 전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헛된 믿음으로 스무 살을 보냈다. 지금, 마흔여섯의 나이로 그 시절을 생각해 보니 부끄럽다. 너무 부끄러워 혼자 있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미주는 혼자가 되어서야 추앙받는다는 것이 고작 그런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결국 예술가의 삶, 그런 삶을 살아간다. 미주의 삼십 대는, 사십 대는, 오십 대는 어떠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또 삶을 찾아 살아가겠지. 스무 살의 부끄러움을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나처럼.      


2. 가족의 부재를 견뎌내는 힘.      


  단편 ‘명절 전야’는 북적북적 가족들이 모여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명절 전의 분위기를 그린 소설이 아니다. 슬픈 소설이다. 슬픈 소설이면서도, 다행이다 싶은 소설이다. 


엄마는 그날도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용은 매우 진부한 것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콱 죽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부한 것들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가 있었다. 언제나 잘 먹히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고 동생과 나는 문을 두드리며 울었다. 콱 죽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칼로 콱 찌른다는 것일까. 목을 콱 맨다는 것일까, 베개로 얼굴을 콱 누른다는 것일까. 의성어나 의태어를 남발하지 말라는 작문 선생님의 말에도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콱'이라는 단어도 각자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생과 나는 주방에 있는 식칼로 엄마의 방문을 땄다. 엄마는 침대에서 잘 자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땀에 전 채로 다시 방문을 닫고 나왔다.(112쪽)


  아빠는 내가 12살 때 돌아가셨다. 폐암이셨고, 폐암임을 안 지 채 2년이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아빠의 부재를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엄마의 존재가 아빠의 부재를 매 순간 기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채워주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강인함이 늘 존경스러웠다. 그 시절 엄마의 나이를 훌쩍 넘은 지금, 서른여덟 살 시작된 과부의 삶의 얼마나 팍팍했을지 이제는 안다. 그런데 엄마는 단 한 번도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신 적도 없으셨고, 자신 삶의 한탄을 자식들에게 토로한 적도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온천을 자주 다녔다. 가족탕.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엔, 엄마랑 오빠랑 나랑 남동생이랑 온천을 다녔다. 가족여행처럼. 열세 살 아홉 살 형제가 둘이서 얼마나 잘 씻었겠냐만은 오빠랑 남동생은 아빠 없이 둘이서 온천탕에 갔다 왔고, 나는 엄마랑 둘이 목욕을 했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만나 어떤 날은 잔치국수를, 어떤 날은 김 모락모락 나는 두꺼운 손 두부를, 또 어떤 날은 백숙을 먹었다. 그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가족의 부재를 견디는 방법, 그게 과연 있을까 싶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동생의 죽음 이후 엄마의 술주정을 견디지 못하고 죽겠다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그 후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엄마를 떠나는 것이다. 엄마의 집을 떠나 독립하면서 다시금 살아내는 인생. 늘 가까이 있다 생각한 고양이마저 죽음으로 그녀의 곁을 떠나지만, 그녀는 세상을 살아낸다. 가족의 부재를 견디는 그녀와 그녀 엄마의 삶이 너무 슬퍼 눈물이 났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세상임을. 그 세상을 잘 살아내기를 응원하게 된다.      


3. 정리. 


 평범하다는 것이 뭘까? 1989년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알려지자 나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떤 아이는 내게 “아빠 없어? 왜 엄마 이야기만 해?”라고 물었다. 가족 구성원에게 있어 평범의 기준이 부모의 존재와 자식의 유무라면, 그건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나타나는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들을 나는 사랑한다. 부재한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견디어내는 삶도, 그들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삶도. 그리고 세상에 정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어디쯤에서 한 발짝쯤 비켜난 삶도 나는 사랑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지금의 자신을 만든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2) 무언가의 부재를 경험했던 상황이 있다면 무엇이었으며, 그 부재를 견딜 때 가장 힘이 되어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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