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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Apr 03. 2023

책들의 시간 28_순간을 믿어요.

# 순간을 믿어요_이석원 이야기 산문집_(주)을유문화사


 오래전, 아는 선생님께서 자신이 참 좋아하는 책으로 이석원 작가의 ‘보통의 존재’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 이석원 작가의 책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가수였다고 하는데, 나는 작가로 먼저 알아,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다. 사실, ‘보통의 존재’를 읽었을 때에는 아, 이렇게 살아왔구나, 정도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 그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녔다. 사실, 한번 좋아한 책에 대한 믿음이 오래가는 편이다. 그래서 그 뒤 작가가 어떤 책을 내든, 쉽사리 실망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믿음. 나는 조금 그런 편이다. 그래서 이번 책도 기대가 되었다. 또, 이야기 산문집이라니, 얼마나 멋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그런 생각.      


1.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도 있음을. 


  그날 이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나마 눈길이 가는 사람이긴 했지만, 문화적인 취향이 다르니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긴 어렵겠다고. 나는 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되지도 않는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그렇지만 뭐, 생각은 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생각은 자유니까. 

  그러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연결될 가능성이 희박했다. 무엇보다 치명적이었던 건 그녀가 냉면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냉면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하필 이 사람일 줄이야. 나는 지금 바로 그 냉면 때문에 이 모든 고생을 하고 있는데. 

  우리 사이의 우연과 운명은 그렇게 서로가 연결되지 못하게끔 역으로 작동을 거듭하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문화와 음식에 대한 취향이 다르면 더 무엇을 가지고 기대할 수 있을까. (82쪽)


  연애든 결혼이든, 친구관계이든 모든 관계의 시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눈에 반한 그 순간이 있다고 할지라도,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노력으로 인해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작가도 인연은 우연이 아닌 노력과 표현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책에 적혀있다. 하지만 정말 노력만으로도 안 되는 관계도 있음을 이제는 안다. 지금은 중년의 나이에, 뭔가 이어지지 않는 관계들에 대하여서 마음을 애태우거나, 안달이 난다거나 그러지 않지만, 나도 그랬던 순간들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학창 시절. 

  평소에도 많은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인지라 지금까지 늘 한 명의 친구밖에 없는 나는 사람들과 잘 싸우지도 않지만, 한번 친해지면 오래가기도 한다. 하지만 늘 먼저 다가가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간 친구들과는 늘 오래오래 지내왔다. 가만 생각해 보면, 성격이 맞았던 거였다. 둘이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했고, 글 쓰는 것도 좋아했고, 책 읽는 것도 좋아했고. 그래서 잘 맞았던 거였다. 하지만, 이렇게 성격이 잘 맞는 것과는 별개로, 그냥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도, 여고 시절, 딸만 다섯 명이었던 집안의 세째 딸이었던 그 친구가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이름도 얼마나 부르기 쉽던지. 이름을 부르면 언어가 깨끗해지는 이름이었다. 모든 자매의 이름에 ‘화’ 자가 들어가는 친구. 고2 첫 번째 짝이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면, 사탕을 가져갔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주었고. 늘 말을 걸었으며, 늘 옆에 있었다. 나의 맹목적인 행동에도 그 아이의 마음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끝끝내 친해지지 않았다. 문화가 달랐던 것 같은 느낌. 자매 많은 집안의 셋째 딸과, 소유욕과 나만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나와는 문화가 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안다. 일방적인 노력이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만남이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노력도 아주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2. 나의 연애는. 


누굴 한번 만나려면 거의 일주일, 특별한 날이면 무려 한 달 전부터 어디서 만나며 무얼 먹으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거의 콘서트 준비하듯이 하며 살아온 내게, 대체 이렇게 각자의 자유가 허용되는 일상적이고도 나른한 데이트라는 건 난생처음 해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게 진짜 데이트가 맞는지 여전히 헷갈리는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고 할까? (172쪽)     

그건 마치 자신이 사랑하고 믿는 누군가에게 몸의 아주 일부만 기댄 채 잠을 청하는 반려동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내 살이 닿아 있는 한 이 존재가, 내게 완벽히 편안하고 무해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는 한 도달하기 어려운 상태였기에. 

마음이든 몸이든 조금이라도 닿아만 있으면 되는 그것으로 충분한 관계.(208쪽)


  연애는 짧았고, 지금껏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나에게 결혼의 장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감정의 동요 없는 편안함이라고 말하겠다. 결혼생활이 외롭지 않은 건 아니나,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외로움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결혼은 감정의 싸움이 덜한, 편안함이 있음을 이제는 안다. 처음부터 물론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기대하는 것이 많이 없는, 오히려 담백한 그 관계가 주는 안정과 편안함이 참 좋다. 

  작가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연애는 콘서트 준비하듯 계획과 에너지 소모가 많은 연애였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단점을 사랑이 시작되면 식는 속도가 빠르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작가에게 이번 연애는 느긋하고 편안함을 주는 연애였다. 그러면서 그 새로운 연애가 자신에게 주는 영향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살짝 부러움이 들었다. 내가 참 하고 싶은 연애가 있었는데, 그걸 해 보지 못한, 그리고 그걸 해 보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가 많다는 그런 마음들. 좋아하는 지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했다고 한다. 그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둘이서 나와 벤치에 앉아 수다를 그렇게 떨었다는데, 그 장면이 정말 부러워, 한동안 계속 생각이 나곤 하였다. 흔히들 로맨스 드라마에 잘 등장하는 그 도서관 데이트. 

  살면서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남편과 산다는 건, 도서관 데이트를 여전히 꿈꿀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같이 마트는 간다. 마트를 갈 때면, 살며시 손을 잡아보긴 한다. 여전히 잡은 손을 빼지 않는. 그 편안함. 나의 연애는, 편안함이다.      


3. 정리

  작가의 다른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처럼 그렇게 확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연애가 재미있고 좋고 부럽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그의 온 세계가 함께 온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연애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 주고,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받아들이는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연애가 좋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분. 


[이야기 나눠보기]

1) 나랑 참 공통의 관심사나 어울릴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며, 그 계기는 무엇입니까? 

2) 당신의 꿈꾸는 연애는 어떤 모습입니까? 어떤 연애를 하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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