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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Mar 27. 2023

책들의 시간 27_각자의 요가

# 각자의 요가(요가를 좋아하는 보통들에게)_이우제 지음_원더박스


  운동 관련 책을 참 좋아한다. 운동에 대한 자세나 설명, 사진이 있는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소재로 한 수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운동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런데 운동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음식에 대한 설명이나, 사진, 글을 좋아하지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운동을 하면서 느낀 감정, 그리고 운동을 통해 변해가는 그 과정에 대한 기록, 그런 것들을 읽는 것이 나는 재밌다. 

  처음, 읽었던 책은 이진송 님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였다. 그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지금도 참 많이 아끼는 책 중의 하나이다. 아이들에게도 권해주는 책이고, 읽었을 때 재미있어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었더랬다. 그리고 달리기를 권유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유명한 무라카미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더랬다. 

 주변 선생님께서는 운동을 직접 해야지, 운동을 책으로 읽고 있냐며 웃으셨지만, 나는 이렇게 활자로 적힌 운동 관련 내용의 글을 읽는 것이 참 재미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요가와 관련된 책. 요가를 좋아하는 보통들에게 보내는 각자의 요가. 제목도 참 좋다. 보통들이라는 단어와 각자의 요가라는 제목. 참 좋다.    

  

1. 요가에 대한 관심이 처음 생겼을 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이 가장 강해질 수 있는 순간과 만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이 내 안의 화두로 자리 잡은 뒤 요가가 내 삶에 더 깊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7쪽)     

  R은 자신의 아사나가 어떤 모습이든 삶과 함께하는 수련을 이어 나가는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수업을 거듭할수록 나아지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했다.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멋있다고 여기며 부러워했다. 내 눈가에도 삶의 흔적이 내려앉았을 때, 나의 주름 사이에도 그분처럼 넓은 마음과 평온이 자리해 있을까? 혹시라도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도그마에 갇혀 딱딱하게 굳어 버리면 어쩌지? R을 보며 깊이 생각해 보았다. (169쪽)


  살아온 삶에 있어 가장 아쉬운 순간이 있다. 내 젊음을 내 젊음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의 시선에 갇혀 살았던 시기. 대학교 시절. 

  어렸을 때에는 엄마의 손길이 온통 나를 향해 있어서인지, 늘 브랜드의 치마를, 원피스를 입었으며,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다녔다. 그러다 중학교에 갔을 때, 아빠를 닮은 내 유전형질은 곱슬머리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얼굴은 점점 더 새까매져 갔고, 식욕은 나날이 늘어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나날이 시작되었다. 사춘기에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분명 강했지만, 뚱뚱하고 못생기고 안경 쓴 여자아이라 여겼던 스스로를 향한 단정지음은 하나의 감옥이 되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벗어나기 힘들었다. 늘 치마는 종아리까지 길게 늘여 입었으며, 예쁜 옷보다는 몸에 맞는 옷을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곱슬머리가 부끄러웠지만 매직으로도 내 머리는 잘 펴지지 않았고, 언젠가 미용실 아줌마에게 속아 나이아가라 파마를 했던 날은 선배들에게 무슨 빗자루를 머리에 쓰고 다니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가슴이 큰 것 마저도 부끄러워 어깨를 움츠리고 가슴을 가리며 다녔던 시절의 자세가 지금은 완전히 굳어, 아이들이 ‘선생님 꼬부기 같아요.’라고 말할 정도로 등은 굽어있다. 

  중년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젊음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절을 세상의 시선에, 스스로의 정죄에 갇혀 늘 자신감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그걸 벗어나는 방법이 다이어트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살을 빼기 위해 요가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작가의 말처럼, 자신이 가장 강해질 수 있는 순간과 만나기 위해 살아오다 요가를 만났으면, 요가가 재미있었을까? 지금은 ‘요가’라는 단어가 주는 고요함과 평온과 절제와 정신적 위안을 잘 알고 있지만, 20살 그때의 나에게 요가는 살을 빼기 위한 수단이었다. 물론,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요가학원에서는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으라 했는데, 그래선 살을 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치듯 나왔다. 그때 나는 약했고, 어렸다.      

2. 걷기. 하나의 명상이 되어 버린. 


  좋은 건 나중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고 했던가. 이 걷기 명상 수업이 그랬다. 일정이 텅 비어 한가했던 어느 날, 멍하니 걷다가 문득 발로 주의가 갔다.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고 발바닥이 부드럽게 바닥에 붙었다가 엄지발가락으로 톡 밀어주면서 다시 땅에서 떨어지는, 걷는 그 순간의 발. 이때의 기억이 불현듯 머리에 스쳤다. ‘아무리가 걷기 명상 수업에서 발이 바닥에 닿고 체중이 실리고 다시 들어 올려지는 짧은 순간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라고 했었지!’ 음악을 듣던 이어폰과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고 그냥 걷기로 했다. 생각이 떠오를 때면 다시 발과 호흡으로 의식의 초점을 옮기며 가만히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을 때면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걷고는 한다. 스마트폰은 절대 보지 않는다. 음악도 듣지 않는다. 바람이 귀를 스치면 스치는 대로 그냥 지그시 앞을 보고 걷는다. 걷는 행위 자체, 걷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물론 신호가 부실한 와이파이처럼 집중이란 게 되다 안되다 하지만,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에 속절없이 끌려가는 것에 비하랴.(46쪽)


  결국 내 삶에서 나를 바꾼 건 걷기이다. 작가는 걷기 명상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지만, 나는 걷는 것으로 인해 아주 아주 많이 바뀌었다. 작가는 걷기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명상이 주는 좋은 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걸으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 좋았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지만 그 생각으로 인해 나만의 관점과 가치관과 생각을 발견하는 시간. 내게는 걷는 시간이 그러하였다. 그렇게 걸으면서 살도 많이 빠졌다. 물론 지금이야 세상에 맛있는 것이 워낙 많아 다시 예전의 몸무게로 돌아왔지만 요즘도 여전히 걷는 것이 주는 위안을 나는 경험하고 있다. 생각이 많은 날은 생각이 많은 대로,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은 날은 또 그대로, 걸으면서 생각하고, 걸으면서 잠잠해진다. 그게 참 좋다. 

  무엇보다 걸으면서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뚱뚱하고 못생겼다 생각했던 중학교 시절을 지나, 사랑의 감정에 굶주렸던 대학교 시절까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나는 책을 통해, 그리고 걷기를 통해 먼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아침 학교에 도착해 운동장을 도는 시간, 저녁 퇴근하고 다시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시간, 시시때때로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에서, 흩날리는 나뭇잎의 모습에서, 지저귀는 새의 모습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길고양이의 모습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지나고 있음을, 그것이 나에게는 운동이면서 명상이면서, 삶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3. 정리


  지금 나는 어깨가 굽었지만, 카페 의자에 앉아 허리를 쭉 펴고 등을 늘릴 때 그 시원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요가는 잘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요가의 세계에 빠져 살 것 같은 느낌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걷는 것이 참 좋다. 나는 나대로 나만의 삶의 방식을 긍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참 좋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좋아하는 운동이 있습니까? 어떤 운동이며, 그것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2) 운동이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가치는 어느 정도이며, 그렇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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