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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Apr 10. 2023

책들의 시간 29_우리의 환대

# 우리의 환대_장희원 소설집_문학과 지성사

  일이 많아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일이 많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마음만 먹으면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더 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하고, 그리고 일을 하니 늘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곤 한다.

  아침엔 늘 걸어야 하고, 칼퇴근은 하고 싶고, 집에서까지 수업 준비를 하고 싶지는 않고. 익숙해지면, 괜찮다. 그리고 일이라는 것도 몰릴 때와 한가할 때가 있어 이 시기만 지나면 충분히 시간 안에 할 수 있다. 아직은 적응단계, 근데 그 적응단계가 힘이 들어 요즘, 누가 툭 찌르면 울 것 같고, 괜히 신경질이 나고 그렇다. 그래서일까?

  심심하게 살고 싶다는 새해의 소망과는 다르게, 툭툭 일이 많이 터져 나온다. 차 사고도 났고, 운동장을 걷다 넘어져 살이 파이고, 상처가 나고 멍이 들었으며, 오늘은 차 유리에 돌이 튀었는지 깨져 있었다. 이렇게 뭔가 안 좋은 일이 계속해서 연달아 일어날 때는 도망쳐야 한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좋은 음식을 먹고, 몸을 쉬어주고, 조금은 세상에서 떨어져,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조용히 그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럼 그렇게 또 살아진다. 그런 시간이었다. 이 소설책을 만난 시간은.

  잘 알지 못하는 작가였지만, 제목이 익숙했다. 언젠가 읽었던 젊은작가 수상작집에서 ‘우리의 환대’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조금 충격적이었던 그 마음 때문이었는지 책을 보는 순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선택한 책. ‘우리의 환대’     


1. 엄마에게 있어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엄마와 자주 다퉜다. 주로 아주 사소한 것, 당사자가 기억할 수도 없는 말 한마디 같은 것을 두고 싸웠다. 나는 별거 아닌 일에도 여러 번 곱씹으며 과장해서 해석하고 눈물이 날 만큼 서운해했다. 그렇다고 울기는 싫어서 언성을 높이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다. 엄마가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에 더 화가 났던 건지도 몰랐다. 결국 지치고 힘들 정도로 오랫동안 그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혼자 있는 밤이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마 엄마도 나처럼 그런 시간을 보냈을 터였다.(184쪽)


  이 책에는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 한편이 욱신욱신하게 아파왔다. 상처를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견딤 가운데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상처 가운데에는 어긋난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 나, 그리고 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나는 엄마가 참 좋다. 누군들 엄마가 좋지 않겠냐 만은 나는 엄마의 강인함이 참 좋았다. 엄마는 나와 다르다. 사람들이 외양적인 모습으로 엄마와 내가 참 많이 닮았다고 하지만, 사실 엄마와 나는 많이 다르다. 외양적으로도 엄마는 하얗고, 나는 까맣고. 엄마는 사회적으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는 소수의 사람들과만 친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사실 잘 못한다. 엄마는 시장에서 옷을 사 입어도 고급스러운 사람으로 흔히 태가 나는 사람이다. 집에서도 늘 예쁘게 화장을 하고 계시는 엄마, 나는 밖에 나갈 때도 화장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차이가 나니, 중, 고등학교 때 엄마와 함께 밖에 나가면, 엄마 친구들이 엄마에게 조용히 “네 딸 맞아?” 이렇게 물어보는 일도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조금은 걱정거리였다. 학창 시절 꾸미지는 않지만, 공부는 잘하고 야무진 딸이라 믿었건만 늘 나의 선택은 엄마의 근심이 되었고, 결혼하고 나서도 선뜻 자랑하기 힘든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엄마는 전화를 할 때면,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라, 항상 열심히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지금 나대로, 정말 잘 지내고 있는데, 아무리 잘 지내고 있다고, 아무리 잘하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엄마는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게 자식에 대한 걱정이겠지. 그래서 엄마랑 나는 소설의 구절처럼 저렇게 싸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살갑게, 엄마에게 다가가지도 못한다.      


2. 그렇다면, 나의 딸은.


그는 아내가 본능적으로, 이제 영원히 아들을 잃었음을, 자신들이 도저히 좁히지 못할 어떤 경계선을 기어이 넘어버렸음을 깨닫는 중이라고 여겼다. 그들 앞으로 동이 트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아들을 생각했다. 침울해하는 영재 곁에서 위로해 주는 노인과 민영을 그려보았다. 이윽고 눈앞에 햇살을 맞으며 수영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찬란한 햇빛에 그들의 벌거벗은 몸뚱이가 미끈하게 빛났다. 영재는 물속으로 깊숙이 뛰어들었다. 노인과 민영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중략)

투명한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주황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요동쳤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너무 좋아서 가슴이 두근거려, 아빠” 저 멀리서 앳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69쪽)


   책에 실려 있는 두 번째 단편, ‘우리의 환대’는 ‘우리’라는 한자가 적혀 있지 않다면, 정말,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우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괄호 속의 ‘우리’는 축사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 3인 가족.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리고 아들. 아들 영재는 호주로 떠난 지 3년,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을 만나러 부모는 호주로 떠났다.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에게 성 정체성을 들키고 만다. 그 후 아버지와 영재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지낸다.

  가족끼리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가족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도 ‘가족이 모른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지낼 수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때로는 사람들은 가족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은 일들을 가슴에 그렇게 품고 살기도 한다. 근데 그걸 들키면, 가족이 그걸 알게 된다면...

  소설 속 영재는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시 만난 가족, 그 가족들은 이제 가족이지만 좁히지 못할 어떤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 있게 된다.

   딸은 시어머니가 키워주셨다. 2개월 때부터. 그래서 딸은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따른다. 나는 그냥 이모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딸이랑 같이 걸을 때, 나는 딸의 팔짱을 끼기가 어색하다. 손을 잡고 걷지도 않는다. 그냥 나란히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걷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가끔은 엄마와 나의 관계가, 딸과 나의 관계가 드라마에서 나오는 어떤 가족의 모습을 띠고 있지 않음을, 그리고 주변에서 보이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내 성향은 아닌가 그렇게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답은 없다. 사랑의 모습이 그렇게 다양하듯 가족의 관계도 그렇게 다양하겠거니 그렇게 생각한다.     


3. 정리

  책은 전체적으로 우울했다. 하지만 마음이 차분해지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요즘의 시간에 오히려 우울한 내용이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때로는 그 결핍이 삶의 동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결핍으로 인한 좌절감에 절망하기도 하고. 책 속에 결핍이 상처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도망쳐야 하는 이 운 없는 시간을 견딤으로써 이기는 방법을 택하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혹, 가족과의 관계 가운데 어긋난 관계가 있다면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은 무엇이며, 그 결핍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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