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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l 17. 2023

책들의 시간 43.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_정재찬 지음_인플루엔셜


글을 쓰기에 앞서,

자연재해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인재인지도 모를 많은 일들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시간, 그 앞에서 감히 ‘슬프다’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 그 시간을 견디는 많은 사람들이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집중호우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구조 현장에서 함께하시는 분들, 그리고 슬픔에 막막함에 가슴속 차오르는 분노에 힘겨워하는 많은 이들이 이 시간을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구차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비는 계속되었고, 조금씩 스며드는 습기에 온몸은 끈적끈적하고, 곱슬머리는 더 곱슬곱슬해져서 제멋대로 흩날리고, 게다가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빠질 듯했다.

  뒷걸음질 치다 내 왼발이 내 오른발을 쳤는데, (아니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내 몸을 나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신체 작용인데, 뇌의 반응 속도가 신체보다 느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발 뒤꿈치에 발가락이 부딪혔다. 아팠다. 아프구나. 그렇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서서히 고름이 차오르더니 발톱이 빠질 것처럼 들어 올려졌다.

  겁이 나서 병원을 갔더니, 반창고를 붙이라고 하셨고, 찰떡같이 믿었는데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작은 상처 하나로도 삶은 이리 쉽게 구차해졌다. 내 온 마음을 가져가버린 것처럼.      


   이때 만난 책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 지음)’이다. 사실, 아이들과 방학 전 활동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정재찬 교수님의 짧은 시 강의를 들려주고 생각할 문제들을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마음먹고 정재찬 교수님의 강의를 찾아보다가 내가 빠져 들었다. ‘절정(이육사)’을 해석하는 그 강의가 너무 좋아서 정채찬 교수님의 책이 읽고 싶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채찬 지음)’라는 책이 워낙 유명해 알고는 있었지만, 읽어보지 않은 터라 학교 도서관에서 두 권의 책을 빌렸다. 먼저 읽은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1. 결심,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이 책은 총 7장 14개의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밥벌이(생업, 노동), 돌봄(아이, 부모), 건강(몸, 마음), 배움(교육, 공부), 사랑(열애, 동행), 관계(인사이더, 아웃사이더), 소유(가진 것, 잃은 것)를 주제로, 시와 소설과, 수필과 영화와 노래까지 아우르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정재찬 교수님의 강의를 많이 들었기에,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책으로 읽는 것은 또 다른 재미이다.      


결심이란, 살아온 나에 대한 부정이었고, 살아갈 나에 관한 긍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살아온 날들을 반성하며 비장하게 결심할 때면, 살아갈 날들은 늘 밝게 빛나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좀 더 지나면 우리는 또 실망하고 반성하고 아마 또 똑같은 결심을 새로운 각오로 하곤 하겠지요. 자주 결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결심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일 텐데, 한사코 나를 부정하느라 나를 힘들게 하고 타인들마저 힘들게 한 것이지요. 눈에 밟히고 애잔하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처럼, 그러다 또 이내 잊히는 길가의 패랭이꽃처럼, 우리 삶이란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면서 또 한편으로는 잊히지 않는 게 두려운 것. 그렇게 자신을 키우고 무너뜨리고, 우쭐해하다가 우울해하며 이어가는 것. (135쪽)


   교수님이 류시화 시인의 ‘패랭이꽃’이라는 시를 들려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결심’에 대하여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늘 무언가를 결심하지만, 어느새 잊고 살다가 또 결심하는, 그런 시간들이 되풀이되었지만 그것에 대한 의미를 둔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고, 결심에 대한 정의에 완전 공감이 갔다.

  '결심'을 살아온 나에 대한 부정과 살아갈 나에 대한 긍정으로 본 시선, 새로우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결심들이 나를 몰아붙이는 동기가 되기도 했었고, 그 결심을 실현하지 못했을 때 밀려오는 자책감에, 보잘것없는 나를 확인하는 마음에 우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삶이란 이렇게 자신을 키우고 자신을 무너뜨리고, 또 비대해진 자아로 우쭐하다가도 이내 하찮은 나를 발견하고 우울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이 부분은 책의 ‘건강’에서 ‘마음’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은 별개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때로는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때 신체화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의 건강은 자신의 감정을 잘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할 때, 과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주인이 우리이긴 할까? 우리가 제대로 감정을 인지하고 알고 있긴 한 걸까에 대한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것이 내 감정이 아닐 수도 있음에 ‘감정’조차도 확신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감정은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자꾸 지하실에 가두어놓고 검열하고 외면해 왔습니다. 그렇게 잉태된 감정들을 어떻게 다뤄내느냐가 이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초현대사회는 개인에게서 이러한 감정을 오히려 박탈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테판 메스트로비치는 ≪탈감정 사회≫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 내 감정인가?” [중략]

이러한 탈감정 사회에서는 우리가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수가 없기 때문에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라는 것이 사라져 버립니다.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쌓여 있을 때 영화나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혹은 화를 내고 나면 무언가 해소되는 기분이 들죠? 그러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탈감정 사회에서는 남이 만들어놓은 모호한 감정들 사이에서 세련되고 친절한 행동만 하게 될 뿐입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계의 검열, 표현해도 들어주지 않는 세계의 무감각함과 공감의 부재, 그런 현실이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146쪽~147쪽)


  교수님은 책에서 ‘탈감정 사회’의 초래가 사람들의 감정을 어떻게 잃어버리게 만드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새 남이 만들어놓은 모호한 감정들 사이에서 세련되고 친절하게 행동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외롭고 높고 쓸쓸한 감정들을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받아들여 억압하고 꺼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계의 검열이, 바로 보이는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수없이 많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들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을 추구하며 살게 만드는 것이 ‘세계의 검열’ 일 수 있음을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자연스레 표현하고,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감정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정의를 내려 봄이 좋을 것 같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가 슬퍼할 때 오히려 감정의 정화가 일어났던 것처럼, 감정은 그 자체로 감정인 것이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라 굳이 구분하지 않는 것. 그래서 슬픔도, 우울도 그냥 인정해 보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정리


   인문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조금 맛을 본 느낌의 책. 사람들이 인문학의 회복에 대하여 말을 하지만, 내가 인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사실 그 정의도 잘 내리지 못할 때가 많았고, 과연 인간의 삶과 관계에 대한 학문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도 많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그래서 더 나은 삶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길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책을 읽으면서 글로 적고 싶은 것이 많았다. 돌봄 부분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땐, 아이가 나를 키웠음에 대하여 적고 싶었고, 배움 부분의 교육에선 점점 어려워지는 배움과 가르침에 대하여 적고 싶었다. 그리고 밥벌이 부분에서는 ‘소금 시’를 읽고 온몸의 소금을 쥐어짜도 울지 못하는 삶에 대하여 글로 적고 싶었다. 좋은 책이다. 생각할 것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책의 부제,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자기 삶의 언어를 찾게 만들어 준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최근 뭔가를 새롭게 결심한 것이 있습니까? 책의 내용에 따르면, 결심이란 살아온 날들의 반성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스스로의 결심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 책에선 마음, 공부, 아웃사이더, 가진 것, 동행, 교육, 열애, 아이, 생업, 몸, 잃은 것, 인사이더, 노동, 부모에서 인생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대하여 발견할 수 있었던 어떤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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