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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l 24. 2023

책들의 시간 44. 튜브

# 튜브_손원평 장편소설_창비

먼저, 

2023.07.1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구보다 밝게 빛나야 할 그 어린 나이에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 마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을 것이며, 누군가의 좋은 사람이었을 어린 선생님의 삶이, 등 떠밀려 끝나 버린 현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전혀 배경지식이 없었지만 읽고 싶었다. 책을 처음 본 순간, 여름의 느낌이 가득한 푸른 바다, 그리고 한 사람의 뛰어듦. 얼마나 자유로워 보이던지, 읽고 싶은 마음에 얼른 빌렸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손원평 님. 지금은 대입에 학교생활기록부의 독서 활동이 따로 제공되지 않지만, 한참 책을 많이 읽고 기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많이 읽고 기록했던 책 중 ‘아몬드(손원평)’가 있었다. 아몬드의 작가가 손원평 님이었다. 아몬드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튜브’에 대한 설렘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걸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뭔가가 필요하다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뭔가가 딱 나타나는 순간. 그런 순간에 대한 경험이다. 나에게 이 책은.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극 중 상황의 우울함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임신 오 개월의 여자 주인공이 걷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임신이라는 요소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 걸음걸이, 팔자걸음에다가 느릿느릿, 그러면서 구부정한, 그 여자의 모습이 너무 우울했다. 그 여자의 삶이 그 걸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인과관계가 맺어지는 듯한 느낌의. 그러면서 나의 모습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자주 하는 말. 

  “어깨를 펴고 걸어. 왜 이렇게 구부정해?”

  그 말을 너무 자주 들어왔던 탓에 ‘뭘 어떻게 걷든, 어떤 자세든 무슨 상관인가’라는 반감도 생겼지만 우울함이 다가올 때, 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냥 내 모습이, 외모가, 외양이, 내 자세가 우울을 만들어 낸 양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여자 주인공 삶의 불행이 걸음에 비롯된 양 마음이 이입되었나 보다. 


  그런데 이 책, ‘튜브’에 자세를 바꾼 남자의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 이런 이야기를 만나게 되다니. 삶의 선물이다. 신의 배려이며,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런 기분.      


1. 지푸라기 프로젝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삶의 절망감이 너무 커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 발걸음을 돌리고 싶지 않을 만큼의 절망감도 분명히 있지만, 아주 작은 이유만으로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가 그랬다. 죽으러 갔지만 죽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와, 변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일순간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작과 처음은 자세의 변화였다. 


 사실 무언가를 바꾸거나 개선하려는 시도가 처음은 아니었다. 김성곤은 동기부여 영상이나 자기 계발서에서 본 지침들을 여러 차례 따라 한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부터 개라거나 책상 정리부터 시작하라거나 윗몸일으키기를 딱 한 개만 해보라거나 새벽 네시에 일어나야 세상을 가질 수 있다는 조언들을 실제로 삶에 적용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심의 지속시간을 짧았고 그는 언제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김성곤일뿐이었다. 

(중략)

  마음가짐이나 결심처럼 막연한 것보다 실존하는 것, 그러니까 신체의 무언가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늘 해왔다. 하지만 그조차 김성곤에겐 멀게만 느껴지는 시도였다. 살아오면서 끊어놓고 가지 않은 헬스클럽 회원증만 다섯 장이 넘었고 운동이라는 단어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벌써 숨이 찼다. 괜스레 원대한 계획을 세워봤자 부질없는 작심삼일짜리 새해 계획처럼 될 게 뻔했다.(68쪽~69쪽)


  언제부터인가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시크릿(론다 번)’이 마지막이었나 보다. 그 책을 읽던 그 순간엔 좋았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몰아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 그리고 그 일을 머릿속에서 생생히 상상하는 순간. 그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하면 정말 이루어진다는 비밀.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책은 책이었고, 내 삶의 작은 울림은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자기 계발서를 통해 순간의 힘을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나는 변화되지 않았고, 나에겐 오히려 소설이, 소설 속 이야기가, 인물의 삶이, 그리고 그 인물의 여정이 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타인을 이해하는 삶. 그리고 극복의 힘. 소설이 나는 자기 계발서보다 더 좋았다.      

 

 소설 속 김성곤 안드레아가 그렇게 변화되려 애쓰는 모습에서 나를 본 건 인물이 가진 힘이구나 싶은 생각. 나도 김성곤처럼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변화를 갈망하는 인물이구나. 그런 마음.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변화를 꿈꾸었을 때 김성곤을 달라졌고, 성공이 아닌 변화를 맛보게 되었다. 그 변화의 시작이 김성곤에겐 자세의 변화였다. 그것도 구부정한 어깨를 펴는 일, 배를 집어넣는 일. 자세를 바르게 하는 일.      


2. 삶의 불가해함과 고정성에 대하여.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성곤이 깨달은 건 삶의 불가해함과 고정성이었다. 

  행운이 사고처럼 다가와 누군가를 마취시키면 불행이 여기 내가 있다고 선언하며 닥쳤다. 행운이 수고했지, 애썼어,라고 짧은 위로를 건네고 나면 불행이 그럼 이건 어때, 라며 단계와 강도를 높여 삶이라는 벽을 넘으려는 자들을 깊은 골짜기 아래로 떨어뜨렸다.(250쪽)     

  삶의 가장 큰 딜레마는 그것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삶은 방향도 목적도 없이 흐른다. 인과와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종종 헛된 이유는 그래서이다. 찾았다고 생각한 정답은 단기간의 해답이 될지언정 지속되는 삶 전체를 꿰뚫기 어렵다. 삶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진리는, 그것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뿐이다. (238쪽)


  책의 구성이 얼마나 재미있게 되어있던지 읽는 내내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런데 왜?’라는 생각도 들었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결말이 아닐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실패한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다시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한 책이다. 나는 책을 읽고, 다시 떠오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변화를 통해 성공을 맛본 김성곤 안드레아의 삶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결국 실패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삶의 딜레마이다.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을 결국 무기력하게 만들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버리는 것이라고 할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스스로의 가치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 승리’라는 말이 이미 부정적 용어로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게 된 요즘이지만, 세상의 기준과 가치가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을 빌려,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면 당신의 애씀은 언제나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성공과 변화를 같은 선에서 보지 않고, 성공을 향한 열망보다 스스로에 대한 변화를 찾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성공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참 많이 변해 왔다.  MBTI 성격유형 지표 검사에서 ‘P(인식형)’였던 나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J(판단형)’로 바뀌었다.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의 40퍼센트 정도를 실천하는 삶. 그런 삶이 나의 루틴을 만들고, 세상을 단단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나에게 그래서 실패한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는 그 순간을 확인하게 해 준 책이며, 나의 삶을 보상받은 기분이 들게 만들어 준 책이고, 또 뭔가를 계획하게 만든 책이다. 참 좋다.      


3. 정리


사진 속 남자는 젊고 재산이 있었고 친절했으며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그 남자의 곧게 펴진 등은, 피려고 노력한 것조차 아니었다. 그건 행복과 젊음,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반면 지금 그 남자를 흉내 내며 성곤이 세운 등은 스스로를 지탱하고자 하는 안간힘의 상징이었다.(71쪽)


  김성곤 안드레아가 자신의 옛날 사진을 보고, 스스로를 지탱하고자 하는 안간힘으로 등을 바르게 피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나도 자세를 바르게 하고 싶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비참한 삶의 시작이 걸음걸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변화의 시작이 바른 자세가 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그것이 나에겐 시크릿이고, 김성곤 안드레아의 마음이며, 변화의 시작이다. 나는, 무엇을 도전해 볼까?      


[이야기 나눠 보기]

1)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뭔가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만약에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자신의 행동 습관 중에서 바꾸고 싶은 습관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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