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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l 10. 2023

책들의 시간 42. 슬픔이 택배로 왔다

# 슬픔이 택배로 왔다_정호승 시집_창비


   학교 행사로 정호승 시인이 초청되어 온 적이 있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설렜다.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시인의 첫인상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교회의 목사님 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들었던 것은, ‘시인’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옛날부터 시를 좋아했었고, 머릿속에 시인은 이럴 거라고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가 있었다. 왠지 시인은 아주 편안한 복장에 덥수룩한 머리, 사투리를 쓸 것 같고, 편안한, 그래서 다가가기 쉬운 느낌일 거라고 내 머릿속에 저장시켜 놓았나 보다. 그런데 정호승 시인의 첫인상은 아주 깔끔한, 정장이 잘 어울리시는, 안경을 쓴 모습에서 교수님의 느낌이 강하게 풍겨오는 그런 이미지였다.


  강연에서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에 대한 강의를 하셨고, 시의 구절로 나오는 ‘가슴 검은 도요새’에 대하여 설명하셨던 기억이 있다. 시 ‘수선화에게’의 아주 유명한 구절,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며, 종종 읊조리는 구절이면서 나를 향한 명언 같은 말이다. 그래서 외로움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날이면, 조용히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보곤 한다. 그래서 이 구절을 쓴 정호승 시인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과 존경이 있었다.


 이번 시집은 정호승 시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한 시집이면서 신작 시집으로 열네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을 선택하여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는 제목이 참 좋아서. 수업 준비를 하면서,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를 읽고 생각하고 되뇌고 있었던 터라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선택하는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를 읽으면서 어려워졌다.

요새, 나는 시가 참 어렵다.      


1.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


  시를 읽으면서 이번 시의 키워드가 죽음인가 보다 생각했다. ‘잘 죽는 것’이란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 기분. 그래서인지 시를 읽으면서 계속 종교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나님이 생각났다가, 부처님이 생각났다가, 또 성모마리아 님도 생각났다가, 시인의 말에서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함으로써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절대자에게 먼저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는 구절을 읽고는, 그 절대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가장 슬펐던 시는 ‘어머니에 대한 후회(114쪽~115쪽)’이다. 여든이 다 된 누나에게 어머니의 임종을 맡기고, 일을 하러 간 시적 화자, 여기서는 시인. ‘내가 뭘 안다고/ 인간의 죽음의 순간에 대해 내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내뱉는 말. 봄을 기다리던 초저녁 6시와 어두운 저녁 7시 사이의 시간. 그 시간에 벌어진 어머니의 죽음.      


  살면서 그렇게 후회를 만드는 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엔 그것이 후회를 만들지도 모른 채 그렇게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후회하게 되는 순간. 최선의 선택이라 믿어도 인생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기에. 그래서 사는 게 어렵다 여겨지는 요즘이다.    

  

  시인을 시를 통해 끊임없이 죽음의 순간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따라가겠노라 고백하고 있다. 누군가 끊임없이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또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그 시간 속에서 아, 죽음이 나를 부르고 있구나 그렇게 깨닫는 순간(‘부르심(154쪽~155쪽)) 무릎을 꿇고 당신의 소리에 대답하겠노라 말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하여, 늙음에 대하여 한없이 많이 생각하지만, 당장 일어나지 않을 일 같아서, 아주 먼 일 같아서 그냥 생각의 방향을 돌리곤 한다. 시인의 고백처럼 ’ 밥을 더 많이 먹고/ 사랑을 더 많이 하고 싶어서/ 당신을 따라가지 않으려고(‘발버둥(162쪽))’ 그렇게 나도 사실 발버둥을 치는 건 아닐까?      


2. 낙법(落法)


내가 당신에게 배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낙법이었다

당신이 당신의 생애 전체를 기울여

나를 메치고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어두운 골목길에 쓰러뜨리고

벼랑 아래로 힘껏 떠밀어버린 것도

결국은 나에게 낙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넘어지면 넘어지면 되고

쓰러지면 쓰러지면 된다는 것을

새가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기차를 타면 기차에 나를 맡기는 것처럼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

쓰러지면 쓰러진 곳에 나를 맡기면 된다는 것을

진실로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넘어져도 제대로 넘어지는 법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데에

내 존재를 다하여

나는 가난한 당신의 사랑이 필요했다     

                                                                                     낙법(落法)(71쪽)


 가난한 당신의 사랑은 뭘까? 낙법을 가르쳐 준 당신, 가난한 당신의 사랑. 결국 삶은 낙법을 배우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언젠가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 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유도를 배우면서 낙법을 배워 다치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때는 뭔 소린가 피식 웃고 말았는데, 살면서 낙법이 필요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를 읽고.

  나는 지금 낙법을 배우고 있구나. 쓰러져도 괜찮다를 배우고 있구나. 세상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구나.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시이다. 두려움이 많다. 좋지 않은 일들을 만나게 될까 봐. 내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사고라도 만나게 될까 봐. 그래서 사실 조심스레 살아갈 때가 많다. 그래도 어떤 순간에는 부끄러움과 마주할 때가 있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쪽을 선택한다. 싸우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이 시는, 제대로 넘어져야 다시 일어설 수도 있겠구나를 생각하게 한다. 삶의 자세를 하나 마음에 새긴다. 낙법.      


3. 정리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늘 말을 했다. 시적 화자의 정서를 찾아봐, 시적 화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리고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표현법이 쓰였는지도 말해봐. 그렇게 가르친 지 10여 년. 그래서 나는 이제 시를 못 읽는 사람이 되었다. 며칠 그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역설적으로 시를 가르치면서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모든 시들을 표현법으로만, 주제로만 찾게 되어버린 슬픈 시간들.

  정재찬 교수님의 시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시가 좋아졌다. 그리고 시집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지만, 나는 이제 다시 시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시가 어렵다면, 왜 그렇게 여기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왜 그 시를 좋아하는지, 시의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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