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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l 03. 2023

책들의 시간 41.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_목정원 사진산문_아침달

  사진을 참 좋아한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의 그 시선이 부러울 때가 많다. 사진에 담긴 이야기들이 궁금할 때가 많고 그 순간 사진을 찍는 사람의 그 마음을 상상해 볼 때가 많다.  내가 보는 사진에, 내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이 모두 나만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나는 사진을 통해 떠오르는 그 이야기들로 인해 추억에 빠질 때가 많다. 나에게 사진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하나의 장치이며, 누군가의 시선을 상상하게 만드는 매개체이고,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이번 책은 제목이 좋아서, 제목이 눈물 나게 슬퍼서 선택한 책이다.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제목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읽고 싶었다. 하지만 사진산문집은 처음이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도 사실 몰랐다. 중간중간 저자의 글이 수필처럼 다가오고, 공감 가는 구절들이 있기는 했지만, 사진이 훨씬 많은 책을 통해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이 제목이 의미하는 사진들은 어떤 사진들일까, 그런 궁금증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진 산문집을 읽어 보았다.      


1. 사진으로 담아내는 풍경의 의미


사진으로 남은 모든 풍경은 결코 내가 바라본 그대로일 수 없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나는 탄식한다. 이것을 담을 수 없다. 이것은 지나갔다. 그런데도 시간이 흘러, 훗날 현상된 사진을 보며 어떤 이들은 경탄할 것이다. 그 숲이 아름답다고. 어쩌면 나도 흘린 듯 벅찰 것이다. 그 숲의 아름다움이 마치 사진 속에 박제된 꼭 그만큼이었던 것처럼. 짐짓 충분하다는 듯이. 거짓된 향수에 자족하며.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알고 있을 것이다. 빼곡한 나무들의 한가운데서 하얀 입김으로 경탄했던, 그 숲과 이 사진은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확증하는 것은 그 숲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눈앞에 사물이 없더라도 정물화를 그릴 순 있지만 당신이 없었다면 이 사진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나는 디지털 시대의 허다한 조작 가능성을 외면하고, 거기 틈입할 폭력의 위험만은 잊지 않은 채, 다만 바르트를 따라 조금은 옛날에 서서, 경외하듯 이 말을 쓴다. 사진의 근본은 그 대상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데 있다. (61~65쪽)


  이 책의 제목,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를 읊조리는 순간 슬픔이 밀려왔다. 사진을 담는 순간들을 생각했을 때, 혼자 산책하며 풍경을 담는 순간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였던 그 시간을 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 산문집의 제목을 읽는 순간, 정말 어느 미래에 그 사람이 없는 그 사진을 보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이 사진이 남아 있을 리 없다’라는 책 속 구절처럼, 결국 사진의 근본은 그 대상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것에 공감이 갔다. 사진의 모습이 그날 그 순간 보던 그 모습과 같지 않을 수는 있지만, 나는 알기에. 내가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의 공기와 그 순간의 마음을 알기에, 사진은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의 눈을 통해 보일 때에도, 그 사람에게 다른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그것이 사진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2. 윤슬,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을 꿈꾸며. 


우리가 생의 많은 순간을 장면으로 기억하듯이. 삶에는 장면이 되는 순간과 채 장면이 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어, 허다한 얼굴이야 희미해져도, 장면 속 당신이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그때 당신의 왼쪽 뺨으로 겨울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던 것을, 나는 잊을 수가 없는 것처럼.(48쪽)


  윤슬은 순우리말로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말한다. 윤슬이라는 단어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 단어가 그렇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냥 윤슬, 단어로 알고 있는 윤슬이었으니까. 그런데 눈이 부시게 맑고 더운 날, 참 좋은 사람과 강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 햇빛은 여름날답게 강렬했으며, 눈이 부셔 바로 앞도 바라볼 수 없던 그런 날. 머리 위는 뜨겁고, 팔은 뜨끈뜨끈해지던 그런 날. 그런데 같이 바라보는 강가의 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사람도 좋았고,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일상의 이야기들이 물결 따라 흐르는 그 기분도 좋았고, 넘치는 더위에 늘어지는 시간도 참 좋았다. 그때 함께 보았던 윤슬. 윤슬의 뜻을 아냐며 물어보았고 나는 윤슬이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그래서 그때 찍은 그 사진에는 그 순간의 마음이 담겨있다.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 


  반짝이는 순간들을 지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반짝인다는 것을 사실 잘 모르고 지날 때가 많았다. 나는 그랬다. 지나고 나서야 아, 그 순간이 내 삶의 반짝이는 순간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매 순간 매시간 반짝이는 시간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윤슬을 바라보던 그 순간. 그 시간, 그 공간,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 나의 반짝임이 작고 보잘것없어 하늘의 그 어떤 밤하늘의 순간에도 나를 발견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제 힘으로 빛을 내는 그런, 반짝이는 그 존재로 그렇게 살고 싶다. 나를 긍정하는 그 하루를 살아내는 마음. 


윤슬_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3. 정리     

  요새는 어플을 통해 사진을 찍고는 꼭 한 구절 적어 둔다. 그 순간의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윤슬을 함께 보았던 어느 날, 덥고 맑고 깨끗하고 쨍했던 날, 그날의 마음을. 

  사진이 그런 것이다. 당신이 있음으로 인해 그 순간의 기억이 완성되는. 

  이 책을 읽고는 어느 미래에 없을 당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했다. 사진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구절들도 있었고, 뭔가 모를 슬픔에 대한 것이 역사적 순간과 관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사진 산문집인 이 책을 보면서, 사진 속의 순간과 저자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사진에 담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찍은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무엇이며, 왜 그 사진을 좋아하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나에게 있어 ‘반짝이는 순간’은 어떤 순간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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