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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n 26. 2023

책들의 시간 40. 일주일

# 일주일_김려령 장편소설_창비


  책의 제목이 온갖 좋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빌린 책. 근데 막상 읽고 나니, 예상했던 내용과는 달랐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소설을 워낙 좋아하지만, 끝끝내 잘 안 읽히는 소설이 사실 더 많다. 어떤 때는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받아들인다는 허울 좋은 명목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마는 이 편식 성향, 나는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소설은 끝내 읽어냄으로써 또 하나의 생각을 키워가는 기분이 들고, 어떤 소설은 끝내 읽어내지 못함으로써 나의 한계를 발견하곤 한다. 이번 소설은 전자에 해당한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또 술술 잘 넘어가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뭔가 조금 거슬린 마음. 이 소설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던 이유는 부러움도 있었던 거 같다. 완벽한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선하고 통쾌한 서사에 내가 거부감을 느낀 건가 보다. 아마, 완벽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나를 현실 속에서는 늘 마주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으며,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인물의 유형과 내가 부러워하는 인물의 유형은 다르구나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나는 지질하지만 결국 승리하는 인물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걸 다시 확인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그러면서 또 하나, 생각의 전환. 이혼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소설. 그래서 이번 소설은 이혼을 키워드로 읽어냈으며 이혼을 경험하고, 이혼을 선택하는 누군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1. 이혼으로 밝아진 삶


애들이 애를 낳고 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잘 사는가 싶던 어느 날, 도연이 그와 헤어지겠다고 했다. 바람피우더냐? 아니. 손찌검하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부부면서도 같은 것을 전혀 다르게 보았다. 가치관이 너무 달라 하루가 멀다 하고 부딪쳤다. 그게 맞지. 내 생각은 달라. 말을 해, 말을! 말하고 싶지 않아. 애 남편한테 말을 못 해? 내 남편이 너라서. 그가 옷을 벗기는 것이 폭력으로 느껴졌을 때, 도연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헤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부모님이 용납할 이혼 조건이 아니었다. (92쪽)     

도연은 이혼하고 나서야 밝아졌고 종래의 예쁜 딸로 돌아왔다. 이제는 무슨 글을 쓰면서 이름 좀 난 모양이지만 아버지는 그럼에도 도연 옆에 든든한 배우자가 있길 바랐다. 아버지와는 다른 버팀목으로 도연 옆에 있길 바랐다. (93쪽)


  결혼이라는 것이 일대일의 관계 맺기가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흔한 공식이다. 견고한 가족 간의 결합이라는 결혼 제도가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게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70년대생인 나는 아직도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사랑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성장에 가족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하듯, 내가 결혼한 것에 대하여 내 사랑이 식었다고, 또는 나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쉽게 이혼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엮이어 있는 많은 관계들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가장 큰 것이 부모님이기도 하고. 


  결혼 초에 정말 마음이 맞지 않아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짐을 싸서 그 길로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이가 있었고, 내가 우겨 한 결혼이었으며, 친정엄마에게 말하기가 겁이 났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리고는 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흐른 시간이 이십여 년.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냥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간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선 때문이다. 어느 정도까지 말해도 그 사람이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리고 끝내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어떤 문제들도 있다는 것, 굳이 다 그의 마음과 상황을 알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는 그런 것을 통해 결혼을 유지해 왔고, 그것이 불편하지 않으며, 때로는 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것,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것,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 가끔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술을 마시고 차에서 잠들었겠거니 당연히 믿을 수 있는 것. 그런 것으로 나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래, 각자의 몫과 삶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혼을 하고 밝음을 되찾은 주인공 하도연의 삶. 그 삶에 누가 부모 생각해서 참아, 다들 그렇게 살아,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불행했던 결혼과 이혼이 원통한 전처가 있다. 전처는 억울하고 전남편은 다행인 기묘한 상황이었다. 도연은 맞지 않는 배우자와 사는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인내와 희생과 포기로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이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더한 집들도 그냥 살아. 그 잔인했던 폭언들, 보편화된 불행은 불행이 아닙니까. 남들은 다 감수하는 고통을 자신만 뿌리치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린 듯했다. (223~224쪽)


  보편화된 불행도 결국은 불행이라고 인정하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렇게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설이다. 타인의 삶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벗어나 이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지금 다시 읽고 읽는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을 통해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적어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라고는 말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2. 집착이라는 이름의 관계. 


  정희는 지적인 매력이 있었고 사회 전반에 관한 시선이 유철과 비슷했다. 그런 그녀에게 유철이 호감을 가졌었다. 만남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다. 유철은 강의 자리를 얻은 뒤 그녀에게 청혼했다. (중략) 결혼 뒤 유철은 학업과 강의를 같이 진행하면서 가끔은 정희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유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재빨리 파악했다. 거기까지여야 했다. 정희는 점점 유철의 부탁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210쪽)     

유철의 깍듯함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의 성격 탓으로 타인과는 늘 일정한 거리가 유지됐었다. 이성을 대하는 눈빛도 친절을 넘어서지 않았다. 여자관계를 의심할 만한 행동이 전혀 없었다. 유철이 비록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어도 그런 일로 책잡힐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남자였다. 끝까지 선하고 바르게 행동함으로써 모두를 속이는. (203쪽)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유철이 잠시 멈칫했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없이 그녀를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너라서 그랬겠지, 너라서. 이별의 원인은 정희의 잘못이라기보다 정희 본인인 거였다.(284쪽)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는 분명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실망, 그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실망도 여러 번 경험하다 보면, 기대하지 않게 되는 순간들이 오기 마련이고, 그것이 더 이상 미움도 슬픔도, 원망도 없이 다 사그라들면, 나는 그때가 이별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한 줌 남아있는 그를 향한 ‘측은지심’의 마음은 결국 나를 향한 ‘측은지심’의 마음이고, 그건 나에게 사랑에 대한 책임이므로 나는 아직 이별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는 중이다.      


  소설 속 유철과 정희도 처음은 누구에게나 처럼 호감이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느낌, 사회 전반의 현상에 대한 비슷한 시선, 그렇게 시작하였지만 정희는 유철에게 집착하기 시작하였고, 정희의 가치관으로 부부란 같이 생각하고 같이 처리하며, 숨김없이 모든 것을 함께하는 것이었기에 유철의 모든 순간에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것이 지나쳐 오히려 역설적으로 유철은 함께 있음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다수의 사람과 맺는 다양한 관계보다 소수의 사람과 맺는 깊은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타인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정욕구도 강했고, 타인의 칭찬이 늘 간절했으며, 나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어떤 자리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하지만 세상은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어떤 순간,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결국 나임을 안 어떤 순간, 책 속 구절의 표현처럼 사랑하므로 희생한다는 자기희생성 낭만이란 허울의 거짓을 안 순간 타인에 대한 관심과 갈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금도 여전히 소수의 사람과 맺는 깊은 관계를 좋아하지만, 그건 그 순간의 즐거운 나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늘 느끼는 거지만 진정한 ‘내 편’을 ‘남편’에게서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나는 안다. 진정한 ‘내 편’은 ‘나’여야 하는 것이 맞기에. 그 사실을 알고 나자 결혼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함께 사는 어떤 삶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그리고 때때로 어떤 순간에 함께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의 삶을.      


3. 정리     

  좋아하는 친구가 물었다. 어린 시절 너는 늘 ‘을’의 관계였던 것 같다고. 아마 누군가를 위해 애쓰고 희생하고, 배려하고, 맞춰주는 그런 나의 삶에 대하여 말한 것이겠지. 그런데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냐고. 가만가만 생각해 보면, 그 어떤 순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으나 오래 노력하진 않았다. 관계란 것이 주고받는 것이 기반이 되어야 하지만, 어떤 관계는 누군가의 노력도 필요함을 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도 결국 관계이며, 이혼이 그 관계의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의 이혼에 있어서는 더욱. 이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이혼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고 그냥 살겠다고 가볍게 말한 것은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측은지심’이든, ‘책임감’이든 결국은 사랑의 어떤 한 유형을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을.      


[이야기 나눠 보기]

1) 책의 제목이 일주일입니다. 한순간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였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추억의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이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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