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리바라기 Jun 19. 2023

책들의 시간 39.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_강창래 지음_문학동네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책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다. 부제,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제목에 대한 끌림은 덜했지만 그냥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검색했을 때 계속 대출 중이어서 이제야 빌려서 읽을 수 있었다. 한 중간쯤 읽었을 때, 좋아하는 선생님께 이 책을 선물했다. 의미는 달랐다. 이 책은 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한 남편의 밥상일지이지만, 담백하고 차분한 문체, 그리고 심심한 듯하면서도 술술 읽히는 이야기들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바쁜 선생님의 삶 가운데 조금만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언젠가 보았던 선생님의 음식 사진이 바로 떠올라 선물로 이 책을 드렸다. 선생님의 음식 이야기도 궁금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음식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을 늘 가지고 있다. 나는 음식을 잘 못 만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 음식도 잘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음식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나는 사실 맛있다고 느끼는 기준도 아주 낮아 대부분의 음식을 다 맛있다고 여기는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읽을때면, 그 맛을 상상하기도 하고, 그 순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며 언젠가 먹었던 음식들이 떠올라 더 몰입하여 읽곤 한다. 이 책은 두 가지 감정 가운데 책을 읽었다. 음식을 만드는 작가의 모습과 그 가족의 모습에 마음 깊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슬픔과 나를 둘러싼 음식과 관련된 기억들, 그런 두 가지 감정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 참 좋다.      


1. 아픈 가족을 위한 남편의 음식 준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머리가 아닌가 싶다. 전에는 서둘러 냄비와 프라이팬부터 올리고 불을 켰다. 라면 끓이던 습관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일순서가 잡히고 재료 양도 꽤 가늠이 된다.

  준비에 시간 걸리는 건 재료부터 꺼내서 물에 담그고, 해동시킬 건 시키고,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를 ‘적당한 양’만큼만 꺼낸다. 재료가 다 준비된 다음에 용도에 적당한 냄비 또는 프라이팬을 고른다. (183쪽)  

   

  내가 쓰는 레시피는 누군가 따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음식을 만드는 감각과 느낌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쓴다. 특별히 공부하지도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다. 그러기 전에 해야 했기 때문에 물어가면서 하고 있다. 이제는 칼질도 많이 늘었다. 구단이나 십단들께서 보시면 아직 멀었겠지만.

  아침에 만든 나물과 콩나물국은 참 맛있다고 했다.(28쪽)


   이 책은 전문적인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 아니다. 또한 항암에 좋은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중간중간 어떤 좋은 점이 있다더라에 대한 소개는 있지만, 아내의 밥상을 준비하는 남편의 일기와 같은 책이다. 그래서 읽으면서 작가의 고요한 감정에, 때로는 휘몰아치는 감정에, 그리고 음식을 준비하는 그 밑바닥의 슬픈 감정에 마음이 움직여지곤 한다. 출판사 편집장이었던 아내의 암 발병. 그리고 아내와 남편은 살기 위해 다시 걷기를 시작했으며, 남편은 아내를 위해 아내가 먹을 수 있는,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든다. 대부분이 나물이긴 했지만, 나물부터 채소 수프, 생선 요리, 볶음밥에 탕수육까지. 탕수육은 시간을 들여 소스부터 만들다가 아내의 응급상황에 따라, 못 만들고 멈추었고, 그리고 아내가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만들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이 책 속에 잘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의 간호를 함께 하는 아들과의 시간도 이 책 속엔 담겨 있다.

  가족이 식구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음식을 같이 먹는 입을 말하는 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참 많이 깨닫게 되는 책이었다. 같이 음식을 먹고, 같이 생활하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가족에 대한 생각.


  책을 읽으면서 아빠 생각이 났다. 1989년에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빠. 아빠가 아프시면서 엄마는 아빠 몸에 좋다는 약들을 계속 구하기 시작하셨다. 어느 동네의 버섯에서부터 뱀탕에 이르기까지. 엄마와 함께 찾아간 뱀집은 평범한 집이었으나 마루로 된 바닥의 문을 열자 그 안에 뱀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그 뱀을 오랜 시간 달여 만든 뱀 즙. 뽀얀 국물에 비린맛으로 소금을 쳐서 먹었던 것 같은데, 엄마는 아빠 약으로 그 뱀 즙을 만들어 주시면서 우리 세 매에게도 먹이셨다. 그리고 지네 환. 지네를 말려 갈아서 환으로 만들었다는. 근데 그 환을 책장의 제일 높은 곳에 올려놓았는데, 나는 심심하면 의자를 가져와 올라가 그 환을 집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결국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가족의 병과 그 병을 함께 겪으며 희망을 꿈꾸면서 파괴되어 가는 또 다른 가족들의 피폐한 삶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래, 이런 모습이 가족의 모습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밥을 준비하고, 최대한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조절하고, 무엇이라도 먹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가족.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며,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느낌. 그래서 가족은 식구다.   

   

2. 이제 때때로 그리운 엄마의 음식.


  프라이팬에 물을 두르고 갈아둔 마늘을 조금 넣고 불을 켠다. 끓으면 채로 썬 오이를 넣고 볶는다. 하다 보면 물이 마르고 오이도 익은 색을 낸다. 불을 끄고 나물 무칠 큰 그릇에 옮긴다.

  잘게 썬 대파와 청양고추, 들깻가루, 깨소금, 들기름을 적당히 넣고 무친다. 무친 것을 작은 반찬 그릇에 예쁘게 담고 랩을 씌운다. 식탁 위에 올려두고 내 방으로 돌아온다.(32쪽)


  오이나물에 대한 부분이다. 오이를 기름에 볶아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물에 볶는 거였다. 다시 해 먹어봐야겠다. 마트에 갔을 때 오이 볶음이 먹고 싶어서 오이를 3개 사 왔더랬다. 그런데, 막상 퇴근하고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 배달앱을 켤 때가 많다.


  엄마가 해 주는 나물이 참 맛있다. 어렸을 땐, 엄마가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 하면 생각나는 건, 휴게소에서 사 온 갓김치. 엄마가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일흔이 넘은 엄마는 내가 친정에 내려가면, 맛있게 생선을 굽고, 나물을 여러 종류 무쳐 주고 한 상 가득 밥상을 차려 주신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요리를 잘하셨던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엄마가 해 주는 나물 중에서 단연 최고는 물미역 나물이다. 물미역을 씻어 조물조물 양념에 무쳐 주신 거라, 미역의 생생한 맛과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참 맛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오이나물이다. 오이를 볶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보니 물에 볶는 거였구나, 새로 알게 되었다.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따뜻한 오이나물의 아삭함이 밥맛을 더 맛있게 만들어 준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이 더 기억나고 맛있게 여겨지는 것은 어린 시절 길들여진 음식의 맛이며, 기억의 맛이며, 추억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 맛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아침에 엄마가 끓여주시던 김치가 가득한 죽도 생각나고, 엄마의 나물도 생각나고, 엄마만의 고명이 가지런히 올려진 떡국도 생각나고, 마늘이 잔뜩 들어간 삼겹살 구이도 생각난다. 친정을 내려가야겠다.  


         

3. 정리.


나이가 들수록 생활의 습관이나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에 전혀 못 먹던 것도 맛있게 먹기도 하고,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 싫어지기도 하며,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일품요리가 더 좋기도 하고, 배달 음식이 지겹기도 하며, 그냥 간단하게 밥에 멸치 볶음, 계란프라이를 넣고 비벼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을 때가 많다. 요즘은 그냥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이 예전보다 많이 귀찮지 않다. 그냥 밥만 하면, 집에 있는 반찬들로, 때로는 야채를 가득 넣은 카레로, 또 때로는 상추쌈에 한 끼를 훌륭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밥을 해 먹는 것이 많이 힘들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남이 해 주는 밥이 좋다. 그래서 이런 음식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을 때, 남이 해 준 밥을 맛보는 기분이라 설레면서도 좋다. 이 책이 전한 음식의 따뜻함이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 속에 차려진 밥상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리라 믿는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면, 어떤 음식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어떤 음식이며, 이 음식에 대한 자부심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책들의 시간 38. 뜬세상의 아름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