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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n 12. 2023

책들의 시간 38. 뜬세상의 아름다움

# 뜬세상의 아름다움_정약용 산문_박무영 옮김_태학사


  예전부터 학교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죽으면 만나고 싶은 세 사람. 물론 그럴 수야 없겠지만, 시조 수업을 할 때나, 훈민정음을 가르칠 때나, 정약용의 수필을 가르칠 때면 꼭 아이들에게 말하곤 한다. 선생님이 죽으면 만나고 싶은 세 사람. 


  그 첫 번째는 ‘세종대왕’이다. 나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한글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그 생각과 마음과 과정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종대왕 혼자만의 업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훈민정음의 가치는 대단하기에 그 중심에 있었던 세종대왕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그리하여 만날 수 있다면 세종대왕을 근처에서 꼭 보고 싶다. 


  두 번째는 ‘임제’이다. 임제는 조선시대의 문인이다. 임제의 시조를 가르치면서 황진이와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마음에 임제가 콕 박혔다. 물론 그 사람의 전체 생애와 환경과 삶의 방식을 찾아보거나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임제가 황진이 무덤가에서 읊었다는 그 시조 하나만으로도 나는 임제가 참 좋았다.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그 기세가 닮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함으로 자유로운 영혼과 결혼했다. 


  그리고 마지막, 바로 ‘정약용’이다. 교과서에서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수오재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밀려오던 감동이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재미있어서. 그러면서도 바로 옆에서 아버지께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정약용이 나는 참 좋았다. 이번 책은 그런 정약용의 수필을 모은 책. 예전에 읽었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지음, 박석무 역자, 창비)’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책, ‘뜬세상의 아름다움’도 재미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정약용의 모습을 넘어서 인간적인 어떤 모습을 발견한 느낌.      



1. 외롭고 높고 쓸쓸한. 


 지구는 둥글고 땅은 사방으로 평탄하니 하늘 아래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나 백성들 중에는 곤륜산에 올라가고, 형산과 곽산에 올라가며 높은 곳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가 버린 것은 뒤쫓을 수 없고 앞으로 올 일은 기약할 수 없으니, 하늘 아래 지금 누리고 있는 처지가 가장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도 백성들 중에는 가마와 말을 다 망가뜨리고 전답을 탕진해 가며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평생 동안 미혹되어 오직 ‘저것’만을 바라보며 ‘이것’을 누릴 줄 모르는지 오래되었다. (82쪽)     

너는 모습이 깎아 놓은 듯 예뻤다. 코 왼쪽에 조그만 검은 점이 있었고, 웃으면 양쪽 어금니가 뾰족하니 드러났었다. 아아, 나는 네 모습을 생각하며 잊지 않는 것으로 네게 보상하마. (130쪽)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갔으니

복사꽃 무성한 봄빛은 신혼 때 같구려. 

살아 이별, 죽어 이별에 사람이 늙지만

슬픔은 짧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오. 

이 밤 목란사 노랫소리 유난히도 좋으니

옛날의 하피첩은 먹 흔적이 아직 남았소.

나뉘었다 다시 합함은 참으로 우리의 모습,

한 쌍의 표주박을 남겨 자손에게 주노라. (175쪽)


  교과서에 나온 작품들을 바탕으로 내가 상상한 정약용의 모습은 꼬장꼬장하면서도 옳은 말을 내뱉는 흔히들 말하는 꼰대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이것도 하며, 저것도 하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왠지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그럴 거 같은 느낌에, 정약용의 글에서 나는 아버지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약용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참 외롭고 높고 쓸쓸했을 정약용이 보였다. 

  서너 살을 채 못 넘긴 자식들의 죽음 앞에, 잊지 않음으로 보상하겠다는 아버지의 모습,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았던 아내와의 시간. 유배지에 있을 때 아내가 보내주었던 치마에 글을 적어 딸에게 보내기도 하였으며, 중풍으로 고생하며 하루하루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해 절망하던 시간들을 견디던 그 모습. 그리고 형제들의 죽음을 그대로 지켜보아야 하는 삶. 사랑하는 제자의 일방적인 연락 두절, 문득 커버린 아들이 유배지를 찾아왔던 그 순간. 아버지의 석방을 위해 애쓰는 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읽으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면서 정약용이 더 좋아지기도 하였다. 

  아내와의 육십 년 회혼일을 맞이하여 남긴 시에서 아내에게 하는 그 말은 가슴이 떨릴 만큼 설레고 좋았다. 살아 이별, 죽어 이별이었지만, 슬픔보다는 기쁨이 긴 삶, 아내에게 성은에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드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견디는 정약용의 삶을 생각해 본다. 젊은 시절, 학문과 성취로 온 세상을 가진 듯 흥이 넘치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며, 좋은 사람들과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호탕하게 웃던 그 기쁨들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런 영화로움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었기에, 절망과 슬픔과 불행과 부끄러움을 견디는 그 순간의 삶도 정약용에게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2. 나의 생애, 순간순간에 만나는 정약용들. 


위아래로 5천 년 사이에 하필 한 시대에 함께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로세로 3만 리 되는 땅에서 하필 한 나라에 함께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서로 나이 차가 많고 먼 고을에 산다면 마주해도 정중하게 대할 뿐 즐거울 수는 없다. 죽을 때까지 서로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 몇 가지 밖에도 지위와 형편이 비슷하지 않고 취향이 같지 않으면, 동갑내기로 이웃에 살아도 함께 모여 놀며 교유하려 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교유가 넓지 못한 까닭이 이것인데, 우리나라는 더욱 심하다. (41쪽)


  죽으면 정약용을 만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는 삶 속에서 매 순간 매 시간 정약용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넘치도록 좋은 사람들. 정약용 같은 사람들. 남들보다 멀리 내다보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유머러스한 사람, 따뜻함이 넘쳐 같이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사람.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있지만, 세상을 살아갈 땐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는 사람. 그래서 나에게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라고 가르쳐 준 사람. 사건을 명확하게 바라보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답을 주는 사람, 무엇보다 필요한 순간에 딴지를 제대로 걸 줄 아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참 좋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요즘, 일이 많아 지치곤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지만, 일에서 생긴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려 무기력해지기도 하며, 그 감정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해 스멀스멀 기어 오는 우울에 서서히 잠식당하기도 한다. 근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그런 순간에 채마밭을 가꾸며 자신의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정약용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글로써 자신의 마음을 다잡던 정약용의 모습을 또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마음이 가라앉고 다시 일상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 주변의 정약용 같은 사람들과 함께 감사함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3. 정리

  나는 성격을 잘 드러내지 않긴 하지만, 편견이 강한 사람이다. 또 호불호도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에 대한 뚜렷함이 있다. 정약용에 대한 무조건적인 좋아함이 이 책에 대하여 무한 긍정을 불러일으켰다. 좋았다. 이렇게 정약용을 만나볼 수 있어서. 내가 그 시대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이 아니었기에,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책 속에서의 모습 밖에 없다. 그럼에도 책 속엔 숨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정약용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혹시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왜 좋아하게 되었고, 어떤 점이 좋은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정약용은 유배를 갔을 때, 채마밭을 가꾸고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시간을 견뎠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자신만의 극복 방법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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