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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Aug 14. 2023

책들의 시간 47. 서른의 반격

#. 서른의 반격_손원평 장편소설_은행나무


  다시, 손원평 작가님의 책이다. ‘튜브’를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바로 선택하여 읽은 책이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그러면서 서른, 나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정말 어린 나이이구나. 서른은. 그런 생각이 들었으며, 나의 서른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았다. 

  나의 서른은, 계속된 임용시험에서 떨어지고 학원 강사로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도 사실 정말 재미있는 기억들이 많은 시절이었기에, 일하면서 참 재미있었다. 나는 지금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참 재미있고 좋다. 때로는 이 귀한 일을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침마다 감사일기를 쓰기도 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대기업의 문화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스물 중반의 여성이다. 불합리한 어떤 구조 속에서, 또는 상사와의 관계 속에서 불편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딱 우리네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 참 체제 순응적인 나도, 때로는 ‘이거 너무한 것 아닌가’ 그렇게 여기는 순간이 있는데, 직장 생활이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순간들이 더 많지 않을까? 


1. 직장에서 나의 모습은. 


  나는 그의 미련함이 반갑지 않았다. 모름지기 사람은 적당히 일을 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수에 맞게. 주어진 시간과 급여에 맞게.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비정규직인 우리에게 일이라는 건 꼼수, 눈치, 요령의 삼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최소한의 노동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헤프게 이용당하지 않고, 당연한 듯 착취당하지 않고, 적당히 치고 빠질 수 있다. 계속 못하다가 갑자기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계속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본전도 못 뽑고 신랄히 욕만 먹는다. 아슬아슬 선을 지키는 수준에서 일하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끔은 못하는 척 피해 가고, 귀찮더라도 가끔 핀잔을 듣는 상황을 만들어 상사를 우쭐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럭저럭 보통은 해. 가끔 덤벙대기도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있어’ 정도면 충분하다. 그게 자신을 지키며 일하는 방법이다. 특히 대단한 보람이나 연봉,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일일수록.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너무 닳고 닳은 인간인 걸까. 아니면 꿈이 없는 사람인 걸까.(43쪽)


  나이가 마흔 중반인 나는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양면적인 감정이 들었다. 작년, 정말 이렇게 일하는 사람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아니 이것보다 더한.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아니 자기 일마저도 미루는. 그래서 우리 부서는 그 사람의 일을 나눠서 하느라 모두 없어진 1의 일을 나누어 1.5인분의 삶을 살았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웠고, 내 감정을 그 사람을 미워하는데 쏟느라 피폐해졌다. 이제 겨우 서른 살인 그 사람을 마흔다섯의 내가 그렇게 미워했다. 그 사람은 그렇게 1년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가 임용에 붙어 떠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평온을 찾았다.      


  열심히 일했으면 좋겠다가 아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면, 대신해 주겠지가 아니라 같이 하겠다는 마음. 이런 마음을 꼰대라고 한다면 나는 꼰대가 되겠다. 

  근데,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 “엄마, 나는 주어진 일을 빨리 끝내고 내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일을 미루지 않고 하는데, 그럼 계속 다른 일을 시켜.”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르바이트는 시간에 고용된 사람이니, 시간 안에 다양한 일을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가, 처음 고용될 때 계약된 일들이 분명 있을 텐데, 그것을 빨리 끝냈다고 다른 일들을 계속 시키는 것은 맞는 것인가, 또 이렇게도 생각했다가 이랬다 저랬다 했다. 마음이.     


  소설 속 인물들은 부당한 일들 앞에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아, 사회를 변화시키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용기를 내었을 때,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던 억울함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 구절을 인용해 본다. 직장에서 나의 모습은, 존엄성과 도덕, 상식을 지키면서 적어도 내 몫을 위해서만 살지 않겠다는 다짐. 나는 그렇다. 


 “인간이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순간에 놓이면 존엄성과 도덕, 상식을 지키는 건 소수의 몫이 돼요. 내가 그런 환경과 역사를 통과했다면 똑같이 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결국 뭔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떤 노력이요?”

“적어도 내 몫을 위해서만 싸우지는 않겠다고 자꾸자꾸 다짐하는 노력이요. 마음에 기름이 끼면 끝이니까.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요. 더 나은 어떤 것을 향해 차츰 다가가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죠.”(80쪽~81쪽)

 


2. 어린 시절, 친구와의 관계


  지혜는 내게 돈을 갈취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돈 계산은 언제나 깔끔했고 가끔은 내게 호의를 베풀 듯 선물을 했다. 생일 때면 꼭꼭 눌러쓴 카드를 백화점에서 파는 립글로스와 함께 내 가방에 몰래 숨겨두기도 했다. 나는 늘 헷갈리는 기분으로 그녀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물질적인 대가를 받고 그러는 거라고 수군댔지만 내게 변명할 기회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애의 심복이었고, 초라하지만 버리기엔 유용한 도구였으며, 우린 친구잖아,라는 말 한마디에 쉽게 설득되는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친구는 이런 게 아니잖아. 먼저 말할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156쪽)


  소설 속 주인공 김지혜는 고등학교 때 친구 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한다.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친구가 아니었고, ‘우린 친구잖아’라는 말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친구니까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그런 종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 


  살면서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우리’라는 것이 필요해 의해 우리가 되었다가 타인이 되었다가 한다. 자기 편한 기준으로 우리에 포함시켰다가 빼버렸다가 그렇게 손쉽게 인간관계를 정의해 버리는 사람 앞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 우리라 생각했다가 아니었다는 배신감, 그런데 또 그건 너만의 착각이라는 그런 잘못의 떠넘김에 순전히 당하고 나면,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을 그렇게 대했던 사람을 직장에서 다시 만난다. 그때 그 사람이 주인공에게 꺼냈던 말, “우리 친구 사이잖아.” 그 말에 주인공 김지혜가 “우린 친구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관계는 변하게 된다. 고등학교 내내 먼저 말할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했던 그 말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밖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 불편한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너와 나는 친구가 아니다’라는 명확한 관계의 정립.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되돌아보면, 좋아한다는 마음의 표현이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된 적도 많았었고, 같은 마음이 아니어서 내내 마음만 졸이다가 끝내 친해지지 못했던 친구들도 많았고, 나는 친구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 연락이 없어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 친구들도 많았다. 관계엔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희생이 자신을 좀먹는 희생이 된다면, 그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3. 정리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직장에서, 부당한 일들 앞에 자신의 목소리를 명확히 내기란 쉽지 않다. 나는 늘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체제 순응적인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할 때가 많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사실 마음의 상처가 되는 그런 부당한 일들을 많이 겪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목소리를 내는 일의 중요성,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일의 필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많은 일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갑자기 큰 어떤 것을 시작하기엔 두렵다. 그러니, 아주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키되, 잘못된 것에 대하여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을 말할 수 있는 것, 그런 도전을 삶 속에서 가져보는 건 필요하지 않을까?   

   

[이야기 나눠 보기]

1) 살면서 닥친 부당함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그 순간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어린 시절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사건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이 현재 자신의 삶에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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