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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Aug 07. 2023

책들의 시간 46. 홀(The Hole)

# 홀_편혜영 장편 소설_문학과 지성사


  몰입해서 읽었다. 나중엔 책이 끝나가는 게 아쉬워 여러 번 책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읽고, 또 읽을 내용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 또 멈추고, 그렇게 읽은 책이다. 재미있다. 소설의 소개 문구처럼 ‘가져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삶의 어둠, 그 구멍 속으로 단숨에 끌려간 한 남자’의 이야기. 이걸 재미있다고 표현하기에는 소설 속 주인공에게 미안하지만, 소설은 정말 재미있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장르는 스릴러. 

  방학 동안 어떤 소설을 읽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소설을 선택할 때 보통은 작가를 본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 중 재미있었던 소설을 기억하고,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 보는 것. 보통은 마음에 들었던 작가의 책은 다 재미있다. 하지만 그렇게 선택해서 읽는 책은 한계가 있다. 늘 알던 작가의 책만 읽게 되는. 

  도서관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다가 제목이 좋으면 그렇게 읽어보곤 했다. 그러다 선물처럼 만나게 되는 책들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책을 읽기도 한다. 이 책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기사들을 읽다가 발견한 책이다.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 힘든 서사의 힘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 정말이었다. 손에서 놓기 힘들었다.      


1. 사십 대, 나의 사십 대. 


  오기가 생각하기에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 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 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 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 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나 박탈감은 곧잘 자존감을 건드리고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참을성을 빼앗고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정의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 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가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78쪽)


  주인공 오기는 사십 대가 되기 전까지 손바닥에 힘을 주며 살았다. 주먹을 꽉 쥐며 움켜잡고 그렇게 뭔가를 잡기 위해서, 또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살았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사십 대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 삶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쥐고 살아왔으며, 무엇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주인공 오기의 아내는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했다. 출판사에 취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고, 책을 쓰겠다 하였지만 쓰지 못했다. 아내는 변해갔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뭔가를 배우러 다니지도 않고 누구처럼 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오기가 뭔가를 이루어나가고, 자리를 잡아가고, 교수가 되고, 전원주택을 가질 때 그 아내도 그 옆에 있었지만, 아내는 아내의 성취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내와 오기는 그렇게 사십 대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죄와 잘 어울리는 나이, 사십 대. 너무 많이 가져 오만해지기 쉬우며, 때로는 분노와 박탈감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의감으로 포장하는 나이, 왜 이리 공감이 가는지. 나의 말이 다 옳은 것이 아니면서도 옳다고 여길 때가 많으며, 다른 이의 행복을 온전히 축하해주지도 못할 때가 많은 것, 나의 행동을 정의감이라 여기며 타인의 삶을 깎아내리는 것, 그것도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뉴스를 볼 때면 겁이 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의 표출하는 범죄가 늘어났으며, 마치 물꼬가 터진 듯 여기저기서 비슷한 범죄가 계속 행해지는 것. 그것의 바탕에는 박탈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만이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 너도 나와 같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문제의 시작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이 아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사회의 구성원인 내가 이 아픈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소설 속 주인공 오기는 사십 대 속물의 삶을 살다가 한순간에 사고로 박탈감을 가진 잉여의 삶을 살게 되었다.     

      

2. 매사 충실했지만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기분


  훨씬 이전부터, 어쩌면 인생이라는 걸 어렴풋이 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삶을 살아온 동시에 잃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간혹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매사 충실했지만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기분. 그래서 더 악착같이 굴 때가 있었다.(176쪽)     

  오기는 삶의 애착이 심했지만, 그 순간의 무력감 역시 오기의 것이었다. 아내가 핸들을 잡고 있는 오기의 팔을 거세게 움켜잡았다. 오기는 깜짝 놀랐고 아내의 팔을 힘껏 뿌리쳤다. 

  차가 앞차에 부딪히고 가드레일을 받고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는 걸 깨닫자, 편안해졌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마음이 놓였다. 안달복달하며 삶을 꾸려오던 게 조금 억울했지만 삶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더 압도적이었다. 오기는 제 몸이 떠오르기를, 지상으로부터 가벼이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185쪽)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오기는 죽고 싶었을까, 아니면 살고 싶었을까? 그런 생각. 삶의 애착과 무력감이 종이 한 장의 차이라는 생각. 오기는 아내의 집요한 추궁에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통사고의 결과, 아내는 죽고 오기만 살아남았다.      

  소설의 구절처럼 인생이라는 것은 안다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더 모를 일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겁이 많은 나는 늘 좋은 일을 겪을 때 안 좋은 일을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을 겪을 때 좋은 일을 생각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겸손의 마음과는 다른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온전히 즐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떤 순간에서라도. 감정도 그러하였고. 

  유튜브를 보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며 말해주는 이야기가 ‘자랑하지 마라.’였다.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하여서 안된다고. 어느 정도는 공감했지만 슬펐다. 그 이야기를 공감하는 나도 슬펐고, 그렇게 자랑을 할 수 없는 세상도 슬펐다. 

  정말 친한 친구가 있다. 내 일상을 자랑하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친구, 나도 그 친구의 기쁨에 좋겠다고 부럽다고, 정말 잘되었다고 그렇게 말해줄 수 있다. 좋은 걸 좋다고, 슬픈 걸 슬프다고, 그리고 부러운 건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감정에 솔직한. 

  그게 나는 ‘매사 충실했지만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기분. 그래서 더 악착같이 굴 때’를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3. 정리.      

  주인공 오기의 삶은 성공을 맛본 사십 대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무너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했지만, 살고 싶은 오기의 마음도 내내 느껴졌다. 이 소설은 ‘그래, 그럼에도 살아야 해’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지.’를 말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은 삶의 한순간에 닥친 일들, 사고, 그 대상과 그 주변의 사람, 그리고 뒤늦게 터지는 울음, 그저 그럴 때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저 그럴 때가 우리에게도 올 수 있음을.   

   

[이야기 나눠 보기]

1) 예상치 못했던 순간, 삶에 있어서 홀(구멍)에 빠진 순간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사십 대를 정의 내린다면 어떻게 내릴 수 있을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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