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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Aug 21. 2023

책들의 시간 48. 수영하는 여자들

# 수영하는 여자들_리비 페이지 장편소설, 박성혜 옮김_구픽

  여름엔, 소설이지. 그런 마음을 고수한 채 계속 소설을 읽고 있다. 이번 책도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만으로 소설의 내용을 짐작했을 땐, 그냥,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했더랬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책은 지키고 싶은 공간을 향한 사람들의 투쟁이었으며,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무겁지 않은, 소설의 끝부분에서는 눈물이 살짝 맺히는 그런 이야기.      


1.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곳. 


 “오래된 도서관이 문을 닫았던 그때,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곳은 배움의 장소였고 우리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곳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는 그곳이 우리를 위해 있어줄 거라 믿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잠시 혼자이고 싶을 때 향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어떤 이유로 그런 순간이 필요하든 상관없이 말이죠.”(167쪽)


  이 소설의 원제는 ‘The Lido’이다. 리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육지 마을의 바다 같은 수영장. 마을의 학교 학생들부터 마을 주민까지 바다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전쟁을 겪는 동안에도 리도는 사람들의 위안이 되어 주었으며, 태어나서 죽는 삶의 한 시간 가운데에도 리도는 함께였다. 소설은 시에서 운영하는 리도가 운영 위기를 겪고 대기업에 팔려 없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그 공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에게는 그런 특별한 공간이 있나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런 공간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어서. 


  찬찬히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간까지의 공간들을 되새겨 보았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짧은 지하도를 건너야 했다. 길 중간중간에는 항상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었고, 길지 않은 지하도였지만 늘 어두컴컴했으며, 작은 소리도 울리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어둡고 무서운 공간이기도 하지만 학교 다니는 내내 그 공간은 등, 하교 길 아이들로 북적이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부풀려 전해지기 마련이기에, 학교 가는 길의 지하차도도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하도의 천정에서는 계속 물이 맺혔다가 똑똑 떨어지곤 했다. 지하도를 지날 때 그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파다하게 퍼졌고, 지하도를 건너기 전 아이들은 숨을 참고 한 번에 뛰어 건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그곳은 학교 가는 길의 재미였으며, 통과해야 하는 어떤 장애물이기도 했고, 하루를 다짐하는 도전이기도 했으며, 오늘의 운세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까마득하게 생각도 나지 않았던 공간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추억과 고등학교 3년 생활의 재미를 지닌 공간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너에게는 지키고 싶은 특별한 공간이 있어? 

  스물두 살의 아이는 아직 그런 공간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살아가면서 추억이 담긴,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을 만들어 나가겠지,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아이는 ‘분식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구들끼리 잘 다니던 ‘즉석 떡볶이 집’이 있었다고 한다. 돈이 없어도 워낙 싼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콩나물이 많이 들어간 즉석 떡볶이라 국물이 심심하면서도 맛있었나 보다. 

  늘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잘 가던 곳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같이 놀러 다니던 친구 중 한 명과 크게 싸웠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사이가 데면데면해지면서 친구와는 화해도 없이 멀어졌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떡볶이집에서 친구를 만났다고, 그리고는 서로 각자의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다가 눈이 마주쳤고, 그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고, 그 순간 눈물이 나서 한참을 울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아이가 좋아하던 집이었는데, 이제는 없어졌다. 영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가 분식집 문에 붙었을 때 아이가 문자로 ‘엄마 그 집 없어진대.’ 이렇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간 적도 있던 곳이어서, 아이의 아쉽고도 섭섭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짠했던 적이 있다.      


  살아가면서 어떤 공간이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삶을 통해 차곡차곡 쌓인다. 공간 자체의 특별함도 있으며, 때로는 그 공간에서 만난 누군가의 추억이 공간을 기억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특별한 추억이 공간에서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공간이 지닌 의미가 크다.      


2. 수영, 수영하는 여자들


  처음은 아니지만, 리도를 발견하고 난 이후로, 어쩌면 리도가 그녀를 발견해 준 이후로, 그제야 케이트는 자신이 제대로 살아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물 위에 떠 있을 때면 마치 자기 자신이라는 감각과 모든 근심거리까지도 멀리 떠가는 것만 같다. 물속에서 케이트는 케이트가 아니다. 그저 물과 하늘에 둘러싸이고 보호받는 하나의 몸일 뿐이다. 물은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해 준다.(271쪽)


  한국에서 출간될 때의 제목, ‘수영하는 여자들’. 그래서 제목을 보았을 때 운동이 주는 어떤 효과, 운동이 필요한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치유 이야기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부분이 소설의 중심 내용은 아니지만, 중간중간에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는 수영, 수영을 통해 세상을 향해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로즈메리와 케이트는 수영을 통해, 수영장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통해 서로의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며, 서로의 상처를 감싸줄 수 있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참 멋있다. 소설 속 주인공 로즈메리, 여든여섯의 나이이지만, 여전히 수영을 하는. 더 이상 서두를 수 없는 나이이지만, 늘 수수하고 단정한, 그리고 수영을 좋아하는 할머니.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수영을 해서 그것이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 그게 참 부러웠다. 

  운동이 주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나에겐 아직은 그것이 걷기이지만, 잘하고 싶은 운동이 있긴 하다. 그중의 하나가 수영이다.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두어 달 수영을 배운 적이 있다. 근데 수경을 쓰고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은 어느 정도 보완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은 내 몸이었다. 수영복을 갈아입는 순간, 수영이 끝나고 샤워하는 순간, 그리고 수영복을 입은 내 모습을 내가 감당할 수 없었다.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의지보다 부끄러움이 너무 커서 머뭇거리다 수영을 그만두었다. 결국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때 못한 것이 참 후회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 수영이다.       


3. 정리

  이 소설은 지키고 싶은 공간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강인한 대응과 나이 차를 넘어선 두 여성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들에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나이가 여든이 넘은 주인공의 모습, 비 오는 날 수영장에서의 두 젊은이. 푸른 수영장을 가득 채운 노란 오리 인형 등 많은 장면들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수영, 비 오는 날의 수영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소설이기도 하다. 여름을 참 여름답게 잘 보내고 있다. 나는 책과 함께!     


[이야기 나눠 보기]

1) 자신만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있습니까? 지금 그 공간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습니까?

2)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다면 어떤 운동입니까? 그 운동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주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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