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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an 22. 2024

책들의 시간 69.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_박상영 에세이_인플루엔셜

  오래된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제주 한달살이였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였고, 겁도 많이 났다. 혼자서 밥도 잘 못 먹는 내가, 혼자서 한달살이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은 생각을 쉽게 현실로 옮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족들과 함께 한달살이를 하고 싶지만, 가족 모두의 동의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기억 속 최악의 여행이 남편과의 전주 여행이었던 터라 함께하자고 권유를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부부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기에 혼자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제주 한달살이를 위해 열두 달의 시간 가운데 ‘한 달’의 시간을 빼는 건 쉽지 않음을 잘 알기에, 결심한 것이 일주살이. 일 년에 두 차례 정도는 타 지역 일주일 살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처음이 ‘강릉’이었다. 여름에 겨울 강릉 여행을 계획하고, 일주살이 숙소를 알아보고, 그리고는 잊은 듯이 일상을 살아내다가 겨울,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일주살이 여행에 들고 간 책이 바로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다. 마침 딸이 참 재미있게 읽었다길래, 기대가 되었다.      


1. 나에게 여행이란 뭐지?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에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 수도, 써놓고 보니(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이런 내가 여행을 통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즐기기 힘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마음먹었다. 완벽을, 완벽히 폐기하리라고. 지금이 아닌 언젠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꾸는 게 아니라, 그저 작은 빈틈을 찾아보리라고. 단 1퍼센트의 ‘공백’이 주어지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그러안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리라고. 휴식이라는 행위에 어떤 완벽을 기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휴식’과는 거리가 먼 개념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15~16쪽)


  이 책은 직접적인 어떤 여행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장소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근데 곰곰 생각해 보면, 새로운 어떤 장소에 함께하는 누군가와의 시간이 여행의 핵심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강릉 일주일 살기를 계획하고 처음 이틀간은 딸과 함께 보냈다. 딸이 돌아간 후 진정한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에도 강릉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작가의 오랜 작가 친구 송지현의 허균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떠난 강릉 여행, 소돌 해변의 풍경, 엄지포장마차에서의 술, 해변가에 모여있는 청둥오리들에 대한 의견, 호텔 온수풀에서의 장난스러운 모습들까지, 여행의 순간에서 만나게 되는 짧은 찰나에 대한 묘사가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스스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행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와 사람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했다. 괜스레 강릉 여행 가운데 만난 책에 강릉이 소재로 쓰여 있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책을 읽으면서 ‘순도 100 퍼센의 휴식’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여행지에서 여행 관련 책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여행이 마냥 좋은데, 굳이 여행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까 싶다마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 대하여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말해주고 싶긴 했다.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이 휴식의 동의어라고 믿었다. 

  예전부터 나는 여행을, 정확히는 여행이라는 개념을 사랑해 왔다. 특히 여행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중략) 여행 이야기는 언제나 나에게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다는 환상과 이국에 대한 동경을 동시에 불어넣어 주었다. 그 시절 나는 여행이라는 개념을 몹시도 동경했다. 그러나 활자를 벗어난 현실의 여행은 환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13쪽)


  작가의 생각에 일면 공감한다. 나도 여행이 휴식의 동의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임을 믿는다. 그렇다고 오랜 시간의 여행이나 하루를 온전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빠듯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가볍게 한 곳을 둘러보고, 산책하듯 주변의 밥집에서 밥을 먹고, 일상의 연장인 듯 아닌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그 짧은 찰나가 주는 기쁨이 오랜 시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숙소에서 밤바다의 하얀 포말이 인 파도를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추운 바람이 숙소에 몰아쳐도 함께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잠잠해지는 마음과 시간들. 여행의 맛인가 보다, 그렇게 느낀 시간. 나는 여전히 여행이 필요하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확인하게 된 시간.      


2. 참 좋은 사람들


  외적인 젊음과 내적인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듯,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애써 노력하지 않고서는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도 쉬이 퇴색되기 마련이다.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는 결속력의 중심에는 조하나의 마음 씀씀이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강한 친구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던 것 같다. 마치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것과 같은 그런 마음 말이다. 종미와 M 못지않게 깨달음에 호들갑스러운 나는 새삼 모두에게, 심지어는 조하나에게도 조하나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나답지 않은 기특한 생각을 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이런 찰나의 노력들이 모여 결국 우리 인생을 구성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288쪽)


  책을 읽으면서 작가 주변의 사람들, 작가를 둘러싼 관계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자습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의 이야기와 소설가 친구들의 이야기, 가파도에서 함께 지낸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특히 김연수 작가와의 일화 이야기들이 참 좋아서, 강릉 여행 중에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사서 읽기도 했다. 


  내게도 참 좋은 사람들이 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나의 귀한 친구. 대학교 때 이 아이를 만나고 지금껏 그 인연이 이어져오고 있다. 애써 노력하지 않고서는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도 쉬이 퇴색되기 마련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린 서로에게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의 지방 억양이 좋아 따라 해 보기도 했으며, 하나하나 일정을 메모하여 지워가며 실천하는 그 아이의 습관을 부러워했더니 어느새 나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친구, 아무렇지 않게 전화해서 울 수 있는 친구, 마음을 숨기지 않고 보일 수 있는 친구가 있음이 참 감사한 일이라는 것, 늘 느낀다.      


3. 정리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강릉에서 출발해 3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 나의 여행은 결국 참 좋은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나는 다시 또 떠나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행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아니지만, 충분한 휴식이 되었으며, 나의 참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고,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한 칸 채워 온 시간이 되었다. 

다시, 맞이하는 하루.      


[이야기 나눠 보기]

1)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장소가 있습니까? 누구와 함께한 여행이었으며,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주변의 참 좋은 사람들을 떠올려 봅시다. 그런 좋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으며, 어떻게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지, 애써 노력하는 부분들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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