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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an 15. 2024

책들의 시간 68.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_지그문트 바우만_도서출판 동녘

  이번 독서모임의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란 책이었다. 나에겐 책이 많이 어려웠다. 글자도 유난히 많았고, 문장도 많이 길어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어려웠고 이해도 잘 되지 않아서 처음엔 번역이라 그래서 그런가, 생각했더랬다. 그러다가 내가 너무 소설만 읽어서, 이런 사회학 책이 어려운 건가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부끄러움도 들었다. 내가 너무 사회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내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 앞에서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게 해 준 책이다. 여전히 생각을 정리하기란 참 많이 어렵다.    

  

1.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고독이 필요한 요즘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 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31쪽)


  책은 어려웠지만 제목은 정말 좋았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란 제목이 주는 여러 생각과, 고독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감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2000년대를 맞이하는 사회를 ‘유동하는 근대세계’라 명명하여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쓴, 44편의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엮은 것이다. 각각의 제목들에서 작가가 제안하는 바가 드러난다. 신용카드의 부정적 영향에서부터 질병을 권하는 사회, 건강에 대한 불평등, 공포에 대한 공포, 유행과 경계, 선한 사람들을 악하게 만드는 것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심지어,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강산이 변하는 그 시기에도 변하지 않는 동일한 문제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만드는 면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좋은 책이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독서모임을 함께하는 선생님 중 몇 분은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읽었더라면, 경제 금융의 위기 상황이나, 불안한 사회를 견디고 대비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충분히 공감이 갔다.      


  책의 인용 부분은 작가가 보내는 두 번째 편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부분이다. 글의 서두에서는 한 달에 3000여 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달의 시간을 계산해 보았을 때 결국 소녀는 10분 이상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으며, 혼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생각들, 꿈, 걱정, 희망 같은 것들에 대하여 고민해 보지 않는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다.


  작가는 소녀가 문자를 그렇게 보내는 이유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고독을 음미해보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무엇을 박탈당하고 놓쳐버렸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는 어떠했을까? 지금도 여전히 아주 많은 소통의 창구가 있다. 자신의 일상을 하나하나 보여주기도 하며,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창구도 분명히 많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때로는 시대의 흐름을 놓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 외롭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시의 구절을 빌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하기 때문에 외로움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고독의 시간’은 생각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한없이 분주하고 바쁜 시간 가운데, 고독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자기 직전까지 핸드폰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거나 자료를 찾거나, 여행 블로거의 글을 읽거나 하는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고독의 시간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이 어렵다. 고독이 소통의 단절이 아니면서 스스로를 향한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찾아보는 일, 지금 내게는 그게 필요하다.      


2. 결국은 보여야 한다는 것, 그 함정에 대하여. 


사실 우리는 직접 트위터를 관리(운용)하는 일에 대한 호감 때문에, 또 우리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들의 동기와 목표들을 보고할 때 이미 악명 높게 잘 알고 있음에도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침묵과 어설픔 때문에, 그리고 그로부터 수반되는 느낌들 때문에 트위터에도 불리한 조건이 있다는 점에 대해 눈감은 채 장점만을 부각한다. 어쨌든 우리가 우리를 닮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따라 하면서 서로 이해하기 위해 떠들어대고, 더구나 이해하려는 일에 열중하다시피 한다는 사실은 결국에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이든 그 어떤 때이든지 간에 스스로 아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알 수 있게 만드는 일이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그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 과연 왜 우리가 그것을 하고 있으며, 당시에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목표로 삼고 있고 어떤 꿈을 꾸고 있으며 또 어떤 것을 즐기며 어떤 것을 슬퍼하는지, 말하자면 우리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래도 드러내고 싶은 성향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로 하여금 트위팅을 하게끔 이끄는 그 어떤 다른 이유들조차도 사실은 중요한 것이 못 된다. (49쪽)


  하루에 만 보 걷기를 하고 있다. 걷기를 워낙 좋아하니, 운동도 재미도 나에게 걷기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에 만 보씩 걸어서 백만 보를 채우면, 즉 100일을 쉬지 않고 걸으면 지역 화폐를 준다는 이벤트에 혹해서 매일 걷기를 기록하고, 핸드폰 어플로 확인하다 보니, 어느새 핸드폰이 없으면, 걷지 않은 게 되어버리는 그런 순간이 생겼다.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 마음이 뜨끔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어플 기록하기의 노예가 되어 나의 걷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글은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이 하는 일을 바로 지금 이 순간, 어떤 때이든 간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절반의 공감이다. 분명 그러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작가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평가하고 있다. 보여주는 것, 자신의 일상이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카카오톡을 하는데 어느 순간 ‘멀티프로필’이라는 기능이 생겼다.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카카오톡에서 사람들을 지정하여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른 프로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카카오톡 프로필을 설정할 때 고민이 되긴 한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상, 혹여 학부모님들에게, 아이들에게 내 일상이 노출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감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프로필로 설정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곤 한다. 사실 아무도 나의 일상에 관심이 없음을, 아니 관심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음을 잘 알고 있으며, 세상을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걱정인 것을 알지만, 보여주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지면, 사람들을 대할 때 가면을 쓰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솔함이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온다는 것. 그래서 자신마저도 속이게 된다는 것.           


3. 정리.


내겐 이 책이 참 많이도 어려웠다. 여러 번 읽던 부분을 놓쳐 다시 읽기도 했고,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구절 앞에 자존심이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다 읽었다. 독서모임을 진행하셨던 이번 사회자 선생님께서 정리해 주셨다. 이 책은, 끊임없는 문제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해결해 나가자는 독려로 이루어진 글이라고. 충분히 이해되었다. 사회학자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담긴 책이구나,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작가가 되어 다수의 독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어떤 주제로 편지를 보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나의 일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소통의 장이 있다면 무엇인지, 또는 어디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게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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