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학

나의 아저씨 감상문

by pinggu

역학의 기본은 외력과 내력의 작용에 대한 해석이다.

외력은 말 그대로 '외부에서 어떤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고, 내력은 '그 물체가 외력에 맞서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대항하는 힘'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주인공 박동훈이 이지안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크..대사 누가 썼는지 몰라도 토목공학도 입장에서 들으니 박수가 절로 쳐지는 부분이었다.

이 대사를 보고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드라마에서는 명확히 내력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지 않는다. 그 말은 뭐냐? 자기 인생의 내력은 자기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는 것.


설계에서는 정말 많은 외력의 작용을 염두한다. 외력은 바람, 눈, 비, 지진 등 자연적 현상에서부터 교량 위를 지나다니는 차량, 교량 자체의 하중, 교각에 발생하는 파력 등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외력들은 작용 물체를 변형시키는 인장, 압축, 전단, 비틀림 등 다양한 힘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우리의 인생에 작용하는 다양한 외력 역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혹은 변화시키는) 다양한 '감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소한 예시로 친구와 게임을 하다가 패배하고 느끼는 분함,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어 느끼는 허전함, 헬스장에서 운동이 잘 되지 않아 느끼는 아쉬움, 모처럼의 외출에서 비를 맞을때 나는 짜증 등등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귀여운 사례들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기껏해야 탄성 영역에서 우리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인생은 그렇게 귀엽지만은 못하다. 가끔 정말 버티기 힘든 외력이 우리를 덮치는 경우가 있다. 몇 년을 공부했던 시험에서 불합격했을 때 느끼는 좌절, 오랫동안 알고지낸 친구혹은 연인과 헤어질 때의 슬픔, 늦은 나이가 되도록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데서 오는 불안함, 좀 더 나가면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신체가 훼손되었을 때의 감정 등.

거친 파도가 강한 뱃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파도를 견뎌 냈을 때의 이야기이고 버티지 못하면 배는 난파된다. 즉, 우리 스스로가 외력에 대항할 충분한 내력을 갖추지 못해 다시 복구하지 못할 정도로 변형된다거나, 또는 부러지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내력을 어떻게 갖춰야 외력으로부터 안정적일 수 있을까?

그 옛날 인류들에게 닥치는 외력은 뒤에서 쫓아오는 맘모스의 공포, 불곰한테 보금자리를 빼앗겨서 느끼는 불안 등일 것이다.

이때 그들에게 필요한 내력은 바로 육체적 능력이었다. 달리기를 잘 해서 위기를 벗어난다거나, 사냥 실력이 좋아서 역공을 통해 맘모스를 그날 저녁거리로 만들어 버린다거나 하는 생존 능력 말이다. 그 시절의 외력은 대부분 '육체적 건강', '생명 유지'과 관련지어져 있었고, 내력 역시 신체 능력과 관련깊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맘모스는 멸종되고 우리는 안정적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지식으로 똘똘 뭉친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고, 이제 우리는 다음날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보다 내일까지 못하면 사수한테 죽어라 깨지는 과제가 더 걱정이다.

이처럼 육체적 위협이 사라지고 사회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외력은 점차 정신적인 부분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던 분노, 좌절, 우울, 불안을 일으키는 수많은 요인들이 매일같이 우리를 덮쳐온다.

심지어 우리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외력을 만들어서 작용시키기도 한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육체는 되었으니, 정신을 건강하게 해줄 내력 보강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선정한 '내력'은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다. 직장을 얻고 사회인으로 자리잡게 되면, 온 세상 천지가 싫어하는 것 투성이다. 돈을 벌기 위해 세상의 톱니바퀴가 되었는데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일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운 극소수의 인재라면 할 말 없지만, 최소한 나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고통스럽다.

싫어하는 것들로 잔뜩 채워진 곳에서 외력으로 '변형'되었으니, 이를 원상복귀시키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필요하다. 쇼핑, 여행 같은 단발적인 것들도 좋지만, 지속적인 내력 보강을 위해선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내가 뭘 좋아하지?'라는 질문이 나를 세상에서 버티게 해줄 열쇠인 것이다.


중량의 맛을 잊지 못하고 헬스장에 간다던가,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로 카메라를 채워넣기 위해 출사를 다닌다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악기로 완곡했을 때의 기쁨 등등.. 많을 수록 좋다.

인간은 너무나 까탈스러워서, 좋아하는 것도 자꾸 단물 빨아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다양한 '극호'활동을 통해 바깥에서 받은 외력을 해소해야 한다.

멘탈의 강성이 너무나 커서 바깥의 어지간한 외력에는 미동조차 없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눈치가 없을 확률이 높다. 어느 정도 눈칫밥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살아가며 외력에 변형하기 마련이다. 즉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단순히 멘탈을 강하게 담금질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 이외의 내 삶을 채워나가면서 야금야금 변형을 회복해야 한다.


어렸을 때, 왜 그리도 어른들이 '이것저것 해보고 많이 경험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 시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지 알게 되고 조금씩 그것을 인생에 녹여내기 시작한다.

개개인의 인생에 녹아들어간 '선호 활동'은 굳으면서 개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스테인리스처럼 합금이 된 우리는 바깥의 스트레스에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행복보단 불행이 조금 더 짙게 깔려있는 요즘 세상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최소한 무너지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굳건히 서있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탐색이 너무나 중요하다.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인생에 즐거움을 녹여낼 수 있도록, 하나라도 더 읽고 보고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