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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Aug 14. 2023

껍데기

(사랑을 빙자한 아들집착)

   

    ‘이 사람은 껍데기가 없는 사람이야.’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의 한 대사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영 지워지질 않는다. 얼핏 들으면 평범한 대사였는데, 신선한 모양새로 내 주위를 맴돈다.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이냐며 묻는 말에 ‘껍데기가 없는 사람’, 그리고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이 사람’이라 표현한다. 마치 곁에 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것처럼. 

   나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이 예의는 바른데 껍데기처럼 느껴지는 것과 달리 겉 치례 없는 사람을 향한 애정과 신뢰에 짜릿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짧지만 강한 대사로 각인된 그 장면은 많은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때문일까. 지금까지 껍데기를 두르고 살아왔던 짧지 않은 나의 삶을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으니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눈으로 말하고, 입 꼬리의 높낮이로 표현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 것이 배려 깊다고 자만했던 나만의 표현법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랬기에 남편, 자식, 또한 이웃들도 내게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다. 나 이런 사람이니 너희들도 내게 이렇게 하라는 암시적 명령과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내 마음 같은 줄 알았다.’ 라는 표현이 안성맞춤이려나. 사랑의 마음이면 모든 것이 완전하리라는 나의 생각. 그  어쭙잖은 생각은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렇게 흐르고 흘러 그 곳에 닿을 때 까지 그저 무난한 삶이 이어지는 줄 알았으니까. 허나, 그것은 교만과 욕심이었다.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그리고 싱겁고 매운 말이라도 많이 했어야 했다. 그 말들 속엔 사랑이 스며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의 욕구는 내가 그들에게 했어야 할 말 을 듣기위해 눈으로, 입 꼬리의 모양으로 그들을 포박했고 고문했다. 그 결과 고스란히 지금 부메랑으로 내게 다가온다. 무관심과 침묵으로. 이제 것과는 너무나 다른, 낯선 모습인 그들의 마음을 읽는다. 그 모습에서 나는‘왕따’나 ‘이방인’이라는 느낌뿐이니까.


   말에도 껍데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겉치레’말이다. 가면을 씌우고 진심 인 냥 ‘사랑한다, 고맙다’를 남발한다. 그럴 때는 언어에 기름칠도 듬뿍하고 동그랗게 내 뱉는다. 진심이긴 했지만 뭔가를 바라면서 보상받기위한 껍데기로 무장한 말들이었음을 고백한다. 엄마로 아내로 친구로서 할 짓은 아니었다. 그리고는 소통됐다며, 대화가 충분했음을 자축하며 박수를 친다. 내가 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 또한 내가 그랬듯이 얇게라도 껍데기를 두르고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 나도 고맙고 사랑해’ 라고. 나는 언제나 그랬다. 그들에게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컸다, 아니라고 고개를 크게 저으면서도.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 내 가슴에서 그들에게 전하는 모든 마음은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껍데기 없는 진솔함을 말하고 전했다고 착각했으니까.

   고마워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호들갑과 너스레를 떨면서 말한다. 조금은 과장되고 벅차하는 얼굴을 하면서. 그것은 모양 없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간혹 눈물을 떨구면서 까지. 나의 마음을, 존재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그것이 때로는 지나쳤을 때도 있었으리라. 온 몸으로 말하고 표현했을 테지만 그들은 그 몸부림을 껍데기라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좋고 그름을 확실히 했어야 했다. 중언부언 하지 말았어야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두리뭉실 넘어가지 말았어야했다.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진심이니까 알아서 상대방 마음에 가 닿을 줄 알았다. 그 행위가  교만이고 욕심 이었을지라도. 


   눈앞에 있어도 애틋하고 종일 내 옆에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아들들은 이제 마흔을 훌쩍 넘겼다. 엄마의 눈짓과 입 꼬리의 모양만으로 나를 달래주던 그들이 내게서 멀리 도망쳐 버린 느낌이다. 더구나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 눈도 입도 볼 수 없어 멀어짐이 더 할 수밖에. 그럼에도 아들들에게 희망한다. 이제껏 나의 말과 행동들이 껍데기 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기를. 설사 그렇더라도 서로의 눈과 입 꼬리로 충분한 대화를 했고 모자(母子)사이의 사랑과 믿음은 애쓰지 않아도 그대로인 것을 믿고 싶으니까.

   좋아서, 원해서 시작한 글쓰기에도 껍데기 없는 투명한 나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단 한명의 독자라도 서로 대화도, 소통도 될 테니까. 언젠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면 이런 말을 듣기를 희망한다. ‘이 사람, 정말 껍데기 없는 사람이더군요.’ 묘비명에도 그리 적히는 상상도 해본다. ‘아들을 더 없이 사랑하는 엄마’라는 한 줄의 글도 옆에 더하길 욕심내본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를 일이고, 정답 없는 인생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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