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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Apr 22. 2024

갑장들의 부르스

라헬의 소꿉친구

갑장(甲長)들의 블루스 

  

  머릿속에 저장된 제주는 고즈녁한 섬이었다. 해녀들의 물질, 동백꽃이 지천인 나지막한 돌담이 울타리 진 초가집. 마당 안쪽에는 그물과 생선을 말리려고 늘어 논 채반 그리고 이름 모를 제주의 작은 꽃들이 피어있는 꽃밭. 대낮의 해를 머리에 이고 코흘리개 아이들이 고무신을 끌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 만에 눈앞에 펼쳐진 제주도는 섬이라기보다는 그저 신도시 같은 도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환상 깨지는 소리가‘우르르’하고 퍼진다.


   “번개 팅 어때? 빨리 내려들 와라” 삼월 초 속초 여행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번개여행을 하자고 베프 J가 우리들에게 새벽에 급 전보를 치며 보챈다. 일 년 살이 하러 내려갔다가 제주도에 찐 애정이 생겨 눌러앉을 계획 중인 소꼽동무의 명령이었다. 한참, 미국행이냐 무릎수술인가로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였다. ‘잘됐어 떠나자, 떠나보자.’ 즉시 항공 앱 을 열어봤다. 아니! 이렇게 쌀 수가. 내 눈을 의심하면서 항공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오박육일의 세 명의 소꿉친구들의 제주도 여행의 막이 올랐다. ‘맞아, 이게 바로 진정한 번개 팅이지’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 정성껏 준비한 저녁 식탁에서 친구가 입을 뗀다. “결혼 사십 주년 기념일을 너희들과 함께하고 싶었어.” 우리들은 기쁨과 놀람의 환호성을 질렀고 와인과 음식을 마시고 먹으면서 감격의 눈물을 뿌렸다. 그 시간만큼은 우린 절대로 고희를 바라보는 여인도 할머니도 아니었다. 육십 여 년 전 발가벗고 광진교 다리 밑에서 미역 감던 계집아이 일뿐 이었으니까. 


   수 십 년 전 추억들과 조우하면서 우리 셋은 밤을 꼬박 새웠다. ‘그땐 그랬지, 그래 맞아’하며 핑퐁처럼 말은 말을 받아서 이어진다. 이야기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쉬워 밤새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새벽녘. 모슬포 칠층 아파트 창밖에서 내다보는 성산포의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리들은 서로를 생각하며 손을 잡고 감사의 아침기도를 말없이 드렸다.


   우리와 동갑내기로 군에서 예편한 친구의 남편은 넉넉하고 편한 남자였다. 우리와도 사십 여년을 함께했지만 언제나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 아내의 친구들에게도 진심이다. 세 명의 갑장(甲長)들의 오박육일을 책임져줄 안내원 겸 기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섭지코지’의 리조트로 제주 여행의 첫발을 내딛는다.

   섭지코지 가는 길에 들린 함덕해수욕장은 마치 지중해에 온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줬다. 고운 모래는 하얗게 빛났고 파랗다 못해 검게 보이는 잔잔한 바다는 가슴을 뭉클 저리게 한다. 글 쓰는 나를 배려한 친구의 남편은 근처 북 카페 ‘안녕, 토르’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회를 만든 센스도 보여준다. 


제주곳곳의 카페에서 쓰는 커피와 빵 값은 아끼지 않기로 약속 했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이 처음부터 기를 죽인다. 그곳에서 단련된 카페에서의 지출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가슴을 서늘하게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적어도 하루에 한번 씩, 예쁜 카페에서 주머니를 활짝 열고 우리를 위한 호사를 누렸다.

   때 맞혀 제주의 강풍은 뉴스의 하이라이트였고 아름다운 리조트 밖에서 밤새 들리는 바람소리와 빗소리를 오케스트라의 연주 삼아 기억의 저편에 있는 것들을 끌어 모아 또 한밤을 보낸다. 포장해온 생선회와 문어숙회 그리고 그것들과 어울리는 와인은 천둥번개 쳤던 그 밤을 우리들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될 테다. 성악을 전공한 친구의 ‘축배의 노래’와 ‘내 고향 남쪽바다’독창은 우리들의 가슴을 녹여 내렸다. 결혼 기념 케익의 촛불을 끄고 각자 방으로 들어간 둘째 날 제주의 밤이 흐른다.


   그리고 셋째, 넷째 닷 세, 조용하면서도 우리들의 기(氣)를 담은 제주의 날들이 흐른다. 듬직한 기사는 매일의 일정을 짜며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동행에 목숨을 건듯했다. ‘내일은 없다’며. 엿 세 동안 기억도 못하는 제주의 아름다운 길과 바다를 원 없이 걷고 봤다. 때때로 흥 이 넘칠 때면 광기품은 찻 속에서의 춤사위와 목 터지게 부른 노래는 우리들을 십대로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가시리 녹산로 길, 앉은뱅이 샛노란 유채꽃과 연분홍빛 벚꽃 그리고 파란하늘의 뭉게구름. 환상적인 가시리 길은 우리들을 꽃길속의 공주로 만들어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성산포 해변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물론 섭지코지의 갈대와 유채꽃 그리고 바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지경이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입에서는 계속 신음소리가 튀어나온다. “아~ 천국이야.”나와 발걸음을 맞추려고 애쓰는 친구들을 위해 나는 해변벤치의 여인이 되길 자처한다. 그리고는 멍하니 바다를, 하늘을 보며 문장을 잡기위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부지런히 넘나든다.


   제주국립박물관과 갤러리, 오일장, 무지개 해안도로와 카페 등 다닐 수 있는 만큼 우리들은 제주도에 발자국을 찍으며 다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중문 해수욕장이다. 제주에서가장 낙조가 멋있고 황홀하다는 곳이란다. 정말 그랬다. 낙조시간에 맞춰 방문한 카페 ‘The Cliff'은 하와이 인지 발리인지 모를 정도로 이국적이다. 'Pub' 모양의 그곳에서 오랜만에 맛있는 요리와 칵테일 그리고 음악에 취해보았다. 낙조를 보면서 야외에 마련된 커다란 소파위에 몸을 누이고 듣는 음악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수많은 해변 길과 바다, 파도의 포말을 보면서 제주도의 깨졌던 환상의 조각들은 불러 모아 다시 부쳤다. 역시 제주는 제주라며. 수십 년 전의 기억은 가슴에 고이 접고 오늘 느낀 제주도 가슴에 간직한다.

   단순한 오박육일의 여행이 아니었다. 우정을, 아픔을, 배려를 새기고 느꼈던 시간이었으니까. 다시 올수 없는 그 시간들은 영원히 가슴에 새겨져 있을 테고, 언젠가 우리가 또 다시 모일 수 있다면 ‘그땐 그랬지’ 하며 호호호 하며 웃을 수 있을 테니까. 우리들은 그때도 소녀일 것이고 여전히 섹시할 것이다. 늙은 할머니는 우리 인생에서 영원히 없을 터이고 늙은 소녀만 있을 뿐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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