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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Jul 01. 2023

냉장고를 비우며

(몸과맘 다이어트)


  ‘먹는데 목숨 걸지 말자’,라는 글씨를 찐하고 큼지막하게 써서 냉장고문에 붙였다. 먹기 위해, 지인들과 나누고 싶어서. 그리고 사방에 흩어 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요리를 한다. 이유야 어쨌든 맛있게 먹고, 맛있는 것을 먹이기 위한 요리는 행복이다.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식탐의 소유자인 나의 냉장고는 먹을 것들로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웬 음식욕심이 그리 많은지 틈 날 때 마다 요리를 또 한다, 우스운 일이지만 쉼 없이 만들고 먹는 마음 넉넉한 내가, 나는 참 기분 좋다.




   무릎에 이상이 생긴 지 벌써 햇수로 삼 년째. 비만이 무릎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터. 그러나 솟는 식탐과 스트레스를 빙자한 폭식은 참을 수 없는 욕구며 핑계였다. 더구나 취미이자 특기인 음식 만들기는 식탐을 일으키는 절대이유 인 것을 낸들 어찌하랴.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통증은 극에 달했고 드디어 나는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그리곤 ‘먹는데 목숨 걸지 말자‘라는 의지의 글을 써서 냉장고에 붙였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후 제일먼저 냉장고를 살펴본다. 그리고 수납장 안의 식재료들도. 반년이상 먹어도 남을만한 것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까맣게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이 숨어있었다. 냉장고에는 과일과 야채는 물론 이미 만들어진 음식들로 냉동실과 냉장실이 가득하다. 그 모양은 흡사 마트의 빈틈없는 진열대 모습 그대로였으니.



  


 냉장고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그 안에 있는 재료의 양도 종류도 질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냉장고와 수납장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틈 도 없이 냉기출구 까지 막고 있는 반찬통.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검정 봉지가 수북한 냉동실. 그리고 수년째 방치된 서랍속의 온갖 것들. 살펴볼수록 어의없는 광경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런데 죄책감까지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먹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 하다고 만들고 또 만들어 냉장고를 채우는 걸까. 또한, 이미 버릇이 되어버린 만들고 버리는 짓은 도대체 어찌 설명해야 옳을까.


   냉장고 속을 가만히 드려다 본다. 나의 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됐다. 이제껏 그저 채워 넣기만 했던 것이. 냉장고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욕심껏 채운 식재료로 가득했으니까. 그랬기에 그것들은 계획대로 먹지도 쓰지도 못하고 썩어 가기도 했으리라. 이제껏 살아오면서 욕심으로 너무 많은걸 안에 담기만 했지 제대로 사용도 못했던 나라는 사람. 냉장고를 비우면서 많은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인생은 삶이라는 냉장고를 채워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다 때때로 비우기도 한다. 왜냐하면 삶이 힘에 부칠 때면 비워야 하기에. 또한 내 인생이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언가가 쌓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의건 타의건 그 안에 채워진 모든 것들은 나의 인생이다. 지금 나는 하루하루를 무언가의 재료들로 요리를 하듯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







   현재 내가 쓰는 글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매일매일 의식의 냉장고 깊은 곳에서 재료들을 끄집어낸다. 그리곤 무조건 쓴다. 맛이 있든 없든. 왜냐하면 아직 매우 작지만, 반짝이는 내 재능을 냉동실속 검정봉지 속에서 썩게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때문인지 뭔가를 써야만 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기특하다.



   모든 것을 이고지고 그 어떤 것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문제였다. 틈도 없이 냉기출구까지 막아서 냉장고가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든 것처럼, 내가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했다. 그래서 이젠 냉장고의 냉기출구 앞을 살짝 띄운 것처럼 내 삶과 몸에도 적당한 여유를 줘야 하리라. 몸과 마음의 틈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김도 이번 냉장고를 비우면서 알아차렸다.



   언젠가 나의 냉장고가 텅텅 비워져 있을 수도 있겠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텅 빈 냉장고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게 나일 테니까.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어느 분의 프로필인 ‘나를 위한 글이 당신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이라는 문장이 나를 흥분하게 한다. 해서 ‘나를 위한 요리와 글이 누군가의 심장을 덥힐 수 있다면’이라는 욕심을 냉장고를 비우면서 한껏 내본다.





   알고 있었지만 미쳐 보이지 않던 그것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 또한 교만일까. 허나 자꾸 비워내는 노력이 냉장고에도 나에게도 필요 하다 는걸 알게 된 지금이다. 이대로의 나를 사랑 하게 된 오늘이 기적같이 기쁘고 행복한 날이리라. 봄이 오는 소리가 솔솔 들린다. 이제 냉장고를 비우고 먹는데 목숨 걸지 않는 날이 계속되면 곧 내 무릎에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그날, 기꺼이 뛰어 나가서 찬란한 봄을 넘치도록 품어 주리라. 지난해 어느 겨울밤 꽃처럼 내렸던 함박눈. 함박눈처럼 내리는 봄꽃을 나에게 선물하기위해 봄이 내게 살살  다가오는 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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