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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Jul 01. 2023

바람이 촛불을 흔들지라도

(바람, 바람, 바람)

    요즘처럼 바람(空氣)의 고마움이, 이토록 가슴을 뭉클 하게 했던 때가 예전에는 없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는 일상에도, 바람(希望)이 많으니 순간순간이 매우 새롭다. 더구나, 깊숙한 가을에 발을 담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戀愛)피우고 싶고, 바람나고 싶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허나, 이 세 가지 바람의 속내는, 내게 남은 시간을 뜻있게 보내라는 따듯한 가슴이 만든 진심일 테다.


  ‘저벅저벅’ 수천수백의 발자국이 내는 우렁찬 소리가 들려온다. 쉬지 않고 땅을 두드리는 비의소리다. 태풍 ‘한남노’의 영향으로 양지마을의 땅을 헤집는 빗소리가, 내 귀엔 힘찬 발자국소리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처럼 언제 그칠 줄 알길 없는 강한 빗소리도, 마음의 온도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음을 확인한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그리고 오늘처럼 두려움으로도.

   

 비오는 밤엔 더욱 유난스러워 지는 나다. 집안의 불을 모두 밝히고 청소나 옷 정리를 한다. 어느 비오는 밤에는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유난스런 무릎의 통증을 벽에다 고하기도 한다. 때로는 파도처럼 몰려오는 허기짐에 라면을 끓일 때도 있긴 하지만. 그런데, 오늘밤은 내 마음이 촛불을 켜고 싶단다. 글제 ‘바람과 안부’를 받았다. 순간, ‘바람이 촛불을 흔들지라도’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이 그려지면서  심장박동수를 높인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그 문장이 나를 홀렸고,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몰려왔으니까.




   전등의 스위치를 모두 내리고 촛불을 킨다. 인적도, 집도 거의 없는 곳이라 칠흑 같은 어둠이 작은 나의 집을 덮는다. 흡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기에 작은 촛불 하나에서 뿜어내는 빛은 대단하기까지 하다. 보름달 같이 환한 빛을 발하는 촛불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젖는다. 내게 온 제목의 깊은 의미를 헤아리면서. 힘찬 빗줄기는 밤하늘에 매달린 채 그 기세가 더욱 세지는 듯하다. ‘저벅저벅’ 우렁찬 발자국소리의 빗소리가 여전하니까.

   조금 열어놓은 창문으로 찬바람이 살짝 들어온다. 순간 촛불이 조용한 흔들림을 보인다. 꺼지지 않고 단지 흔들리기만 할뿐인. 만약 창문을 활짝 열어놨더라면, 그 바람이 강풍이었더라면 촛불은 당연히 꺼졌을 테다. 그 순간 촛불에서 나를 본다. 삶, 시간, 의무와 책임감 등 내게 속한 세상의 무수한 참견들을. 흔들지라도 결코 흔들릴 수 없었던 나를. 아니, 흔들리면 안되는  나를. 거짓말처럼 그 상황은 사십 년 전의 나를 소환한다

   

 나는, 강한 바람이 두려워 내게 속한 세상의 창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 놓았나보다. 그랬기에 바람이 흔들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모진 세상 풍파에서 나를 보호하려는 소리 없는 짠한 몸짓이었을지도. 그 수 십 여년을 空氣의 고마움도, 希望을 노래하지도, 戀愛의감정은 사치라며 그저 먹고살기에 급급했나보다. 내게 허락된 지경(地境)안에서의 세 가지의 바람은 아들들의 성장과 노동의 대가인 통장의 잔고가 전부였었으니까.



  코로나의 등장으로, 어쩔 수 없이 길어진 모국에서의 나를 위한 쉼의 날들. 허락된 2년의 시간이 지나고 벌써 네 번째 가을을 맞는다. 그만큼 모국은 나를 홀리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아주 가끔씩 외로워 엉엉 울 때를 제외하면 충분히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다. 게다가 문예창작모임이 있고 그에 속한 아름다운 이들이 있으니까.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세 가지의 바람을 맘껏 누릴 테다. 바람을 맞으며 여행을, 바람을 꿈꾸며 글쓰기를, 나 자신과 바람을 피우며 죽을 때까지 섹시하게 살기로.


    이 글을 시작한지 벌써 두 주째. 오늘 새벽은 기온이 뚝 떨어져서 스웨터를 걸치고 컴 앞에 앉았다. 나이 탓일까, 날씨 탓일까, 그도 아니면 재능 탓인지 요즈음 통 그님께서 아니 오신다. 머리와 가슴속에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과 이야기들을 막힘없이 쓰고 싶다.  다다다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졸졸졸 시냇물 소리 내는 글을 마구 찍어내고 싶은데


    몸에 돌아다니는 말들을 어디다 꺼내 놓고 싶다. 꺼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언어로 된 글을 귀한 아가를 낳듯이 쓰고 싶은데. 내가 쓴 글로 삶의 고백을 완성 하고 싶은 바람(希望)은, 아마 내 세상 끝날 까지 계속 되도 이루지 못할 일일테다.




   겨울답지 않게 코발트빛 하늘에 하얀색 수채화 물감을 뿌린 듯 구름이 잔뜩 겨울을 뽐낸다. 그런 겨울이 나를 귀찮으리만큼 보챈다. 때문에 나와 함께할 바람들에게 부탁해 보려한다. 그 바람들은 따듯하고 어여쁘고 더하여 뿌듯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다운 바람들과 함께 마치 봄밤의 꽃비처럼 그 속으로 날아들고 싶다고.


    여전히 창문은 살짝 열어 놓을 테다. 그리고 나를 위한 바람만을 생각하면서 시절을 누릴 테다. 관점을 바꾸면 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 있을 테니까. 4년 전부터 나만을 위한 날들을 시작했지만 결코 그러지 못했다. 허나 이제는 바람이 촛불을 흔들지라도 순전히 나만을 위해, 결코 흔들리지도 꺼지지도 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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