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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Jul 15. 2023

카페 힉스빌

( 나의 뉴욕 이야기  1)


    오후 다섯 시, 가게의 하루를 마감을 하는 시간. 친구 C의 전화를 받는다. 기분이 좋거나 아니면 꿀꿀해서 일테다. 아니 그보다 일상이라 해야 할지도. ‘카페 문 여니?’ 혹은 ‘카페 문 열자‘. 전화의 핵심은 어쨌거나 모이자는 거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우리 모두는 그곳을 ’카페 힉스빌‘이라고 부르는데 주소가 뉴욕 롱아일 랜드의 힉스빌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도 그 청(凊)을 거절해보지 않았다, 그것은 하루를 마감하는 기쁨이며 내가 가장 원하고 좋아하는 모임이기에.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먹고 마시고 노는 일이니까


  늦봄부터 가을이 익을 때 까지 우린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렇게 타국에서의 고단했던 하루를 마감했고 겨울엔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며 와인을 홀짝댔다. 몸을 휘어 감는 재즈나 7080의 낭만과 그리움인 통기타노래와 팝송을 흥얼대며. ‘카페 힉스빌’은 그렇게 삼십년을 말없이 항상 문을 열고 있었다. 언제라도 그 누구라도 Welcome하는 나만의 깊고 따뜻한 마음으로.  카페 뒤뜰, 체리우드의 분홍 꽃망울이 터지면서부터 친구들은 나보다 더 바쁘다. 7시나 되어야 가게 문을 닫는 세탁소와 nail shop을 운영하는 그네들. 그에 비해 나의 가게는 5시면 마무리된다. 집에 도착해서  밥만 준비 하면 된다. 안채와 뒤뜰을 왔다갔다할 필요조차 없다. 뒷마당에는 두 개의 그릴과 요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으니까. 그 수준은 야외식당이라 명명해도 손색없을 만큼이다. 일 곱 시 삼십 분쯤 그녀들은 남편들 과함께 속속 카페로 모여든다.


(뒷 뜰의 체리우드와 잔디)

                                                             

   많게는 8명, 가끔 5명이 모일 때 도 있다. 세 팀의 부부와  싱글인 나와 내 친구가 우리의 조합이다. 모두 부지런하고 나름 아이들도 잘 키운 이들이다. 그렇지만 뻥 뚫려 시린 가슴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목말라했다. 어느새 카페 힉스빌은 퇴근 시 들려 한 잔의 와인이나 맥주를 음악과 함께 마시며 심한 갈증을 해소하는 곳으로 되었다. 나와 그네들은 그 시간을 사랑했다. 그네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기에. 삼십 여년을 그렇게 저녁 즈음의 시간을,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삼십대 초에 교회에서 만난 우리들은 어느 사이 반백이 되었지만 늘 서로 의지했고 카페를 더없이 사랑했다.


   그들이 가지고온 음식을 식탁에 차린다. 일류식당 못지않은 상차림이다. 고기나 해산물 그리고 술은 필수다. 싱글인  두 여자를 위한 그네들의 배려 또한 남다르다. 정말 친 남매들처럼 두어 시간 먹고 마시고 논다. 내 작은 뒤뜰은 늦은 봄 이팝나무와 라일락의 향기가 사라지면 몇 구루의 장미와 철쭉꽃이 우리들과 함께한다. 해마다 4월말이면 허리가 휘도록 심는 일년생 꽃들. 꽃들의 향연과 새파란 잔디는 어쩌다 취기에 젖은 우리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할 때도 있다. 물총놀이는 우리들을 꿈 많던 소녀와 소년으로 돌아가게도 했으니까.   나지막하고 단아한 게다가 얌전하기 까지 한 나의 집을 나는 몹시 사랑한다.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많았던 집. 나로 인한 두 아들의 아픔과 나의 서러움 까지 모두 기억하며 흡수하고 있을 집의 모든 공간들. 허나 생각해보니 그 반대였다. 좋은 기억이 더 많은 그 집은 나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나의가족들의 역사이기도 했으니까.


   언제나 마음 편히 먹고 놀 수 있는 이모, 고모의집. 그것은 이모, 고모할머니의 집으로도 이름 지어진다.

 예쁜 할머니가 해주는 푸짐한 한국음식과 웃고 떠들며 부대끼며 밤새 카드놀이를 하면서 밤을 지새우는 할머니의집. 새해엔 세뱃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곳. 여름에는 바비큐 파티와 애 어른 할 것 없이 잔디를 뒹굴며 물총놀이를 맘껏 하는 곳. 그래, 나의 집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미국가족의 집이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모이는 식구의 숫자는 삼십 여명에 이른다.

   아들들이 떠난 집에서 혼자 서러워할 나를 위해 고단을 핑계 삼아 퇴근길에 들려 서로를 위로해주던 친구들. 교회 가까이 있기에 해외에서 오신 선교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을 대접하기에도 안성맞춤 이었던 그 집. 송구 영신예배나 크리스마스이브예배 후 비밀리에 모여서 밤새도록 와인을 마셔댔던 장소이기도 했던 그곳. 정말 내겐 소중하고 귀한 곳이다.   


                            ( 어느 여름날의 생파!!  작은 아들이 준비한  형 생일  바베큐)


  ‘내게 가장 소중한 것(곳)’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집이 떠올랐다. 그곳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 함께했던 곳이기에. 그런데 집 주인 아줌마가 바람이 나서 삼 년째 외출중이다. 지금쯤 뒤뜰에는 배가 주렁주렁 달렸을 테다. 그리고 몇 주 후에는 앞마당 나무에서 내리는 나뭇잎이 꽃처럼 내려서 비단꽃잎처럼 잔디를 온통 덮을 것이다. 가을마다 그 모양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고 그 나뭇잎들은 내게 사랑으로 기억됐었다.

   머지않은 날 집으로 귀환을 하면 나는 제일먼저 무릎을 꿇고 앞마당에 키스를 할 테다. 그리고는 뒷마당으로 가서 두 팔 벌리고 한 바퀴 돌면서 이렇게 소리치리라. ‘얘들아! 집 주인 아줌마 돌아왔다. 잘 있었니?’ 



   요즘 들어 점점 더 뉴욕이 그리워진다. 돌아가면 못 봤던 뉴욕을 두루두루 살펴봐야겠다. 등 돌렸던 그곳들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그런데 불과 삼년밖에 안 지났는데 몸도 마음도 정말 예전 같지 않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무릎상태 때문에 더욱 마음이 허한 듯하다. 이제는 소녀 같은 주책 스런 모자람 에서도 벗어나야겠다. 진정 나이 값을 해야 하기에.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내주위의 모든 것들이 내겐 가장 귀하고 소중하다. 그것이 비록 내게 손해를 입히고 아프게 했다하더라도. 그것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테니까. 주위의 모든 것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가올 가을을 두 손, 두 팔 크게 벌려 뜨거운 가슴으로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곧 앞 뜰에 내릴 꽃같은 낙엽과  주렁주렁 달린 배..... 폰에 저장했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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