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 협회에서 한 통의 공문을 받았습니다.
중소기업 홈페이지 구축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익숙한 표현들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반응형, 인터랙티브, 관리자 기능, 소유권 이전, 글로벌 대응.
그리고 그 아래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정가 1,000만 원 상당의 홈페이지를 회원사 한정으로 50% 이상 할인 제공.”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예시 사이트들도 함께 열람할 수 있도록 링크가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하나씩 확인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페이지의 구성과 흐름은 대부분 비슷했고,
디자인은 몇 년 전 감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미지와 문구만 바뀐 채, 모양만 다른 같은 화면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각 기업마다 필요한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기업에게는 빠르고 저렴한 선택이 최선일 수도 있고,
기술적 호환성이나 모바일 대응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정 기능만을 빠르게 구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방식이 실용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다’는 말과
동일한 무게로 설명될 때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문제는 단순히 구조가 단조롭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할인’이라는 말이 설계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가격을 내세우며 그것만으로 가치가 완성된 것처럼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브랜드의 언어도, 사용자의 흐름도,
기업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자 하는지도 빠져 있었습니다.
물론, 무엇으로 만들었는지가 문제는 아닙니다.
워드프레스든 템플릿이든,
충분한 고민과 설계가 담겨 있다면
좋은 결과는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결국 결과를 좌우하는 건 도구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단순히 복사해 붙이는 일과
설계하는 일은 분명히 다릅니다.
비슷한 틀을 사용하더라도
그 안에 기업의 방향성과 언어를 담으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결과로 드러나는 차이가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기술은 작동하고 있었지만,
신뢰는 설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기업의 정체성도, 사용자의 흐름도,
그 어디에도 ‘경험’이라 부를 수 있는 구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만드는 홈페이지와 기억에 남는 경험은 다릅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가격이 아닌 ‘기준’,
속도가 아닌 ‘방향’, 할인이 아닌 ‘설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