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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와 결별하는 "다음" 다시 걸을 수 있을까?

"다음"의 다음은 어떻게 될까?

by 김석민



2025년, 다음과 카카오는 11년 만에 분리를 추진하고 있다. 합병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이것이 시너지의 시작이라 믿었다. 모바일 시대를 앞두고, 콘텐츠 중심의 다음과 기술 중심의 카카오가 손을 잡는다는 건 그 자체로 미래지향적인 구도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11년 후, 카카오는 커머스, 모빌리티, 핀테크로 급성장했지만, 다음은 브랜드로서 점점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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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기능은 살아있지만, 이름은 사라졌다


메일은 '다음 한메일'에서 카카오메일로 통합되며 브랜드가 변경되었다. 다음의 독자적인 메일 브랜딩은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지도는 '다음 지도'에서 카카오맵으로 브랜드가 변경되었고, 기술적 기반도 카카오 체계로 재구축되었다. '다음 지도'라는 명칭은 이제 흔적도 없다.

뉴스는 더 이상 다음 메인에서 중심을 잡고 있지 않다. 카카오 검색 결과, 카카오톡 콘텐츠 탭, 톡채널 등을 통해 분산 제공되고 있으며, 뉴스 편집 권한도 사실상 사라졌다.

블로그는 2022년 9월 30일, 공식적으로 서비스 종료되었다. 일부 콘텐츠는 티스토리로 이관되었지만, '다음 블로그'라는 이름과 그 안의 수많은 댓글, 방명록, 임시글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다음은, 껍데기만 남은 플랫폼이라는 말조차 지나치지 않다.


sub4_2_12_3.png 1998년 12월 한메일넷 초기화면
sub4_2_12_6.png 2000년 1월 새로운 로고를 반영한 다음 초기화면

(이미지출처 : 한국경제인협회 디지털 기업인 박물관)


그런데도, 다음은 여전히 질문을 받을 수 있는 이름이다


왜일까? 다음은 단순한 포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시대의 웹 감수성을 만들었던 브랜드였다.

메일은 연결의 시작이었고,

카페는 관계의 중심이었으며,

블로그는 기록의 습관을 만들었고,

아고라는 질문이 살아 있는 광장이었다.


지금 다음이 독립법인으로 다시 걸음을 시작하려 한다면, 경쟁자가 누구인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다음은 이제,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다음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해야 할 다섯 가지 전략


1. '콘텐츠 인프라 브랜드'로 전환하라

다음은 더 이상 실시간 검색, 트래픽, 뉴스 배열 경쟁을 할 수 없다. 그 역할은 이미 네이버와 구글, 카카오가 나눠 가졌다.

다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은, "보여주는 창"이 아니라 "보여줄 가치를 설계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실행 설계

뉴스, 블로그, 지역 콘텐츠, 공공 정보 등을 '이슈 중심 레이어'로 묶는 시스템 구축

예: "기후 위기"를 검색하면 → 뉴스 + 지자체 자료 + 카페 글 + 시민 의견이 한 화면에

카드형 탐색 인터페이스, 관계 기반 태깅 시스템 도입

정보의 출처와 신뢰도를 시각화하는 '정보 계보 시스템' 구축


2. '관계의 플랫폼'을 회복하라

다음이 강했던 시절엔 관계가 있었다. 카페는 동네의 소리였고, 블로그는 삶의 기록장이었으며, 아고라는 생각이 만나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관계가 콘텐츠처럼 휘발되는 시대다. 그 틈을 다음이 다시 메워야 한다.


실행 설계

댓글 구조를 '의견 박스' 형태로 전환: 찬성/반대/질문/참조

AI가 의견 요약 → 상단 논점 카드화

공감받은 반론, 정중한 반대 등을 시각화해 대화의 품질을 강화

'지역 이슈' 섹션으로 지역 기반 소통 공간 재구축

익명성과 실명성의 균형을 찾는 '반익명 시스템' 도입


3. 콘텐츠의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에 투자하라

스크롤을 멈추고, 콘텐츠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다음은 다시 기억될 수 있는 웹을 설계해야 한다.


실행 설계

읽다가 중단한 글을 자동으로 '미완성 읽기함'에 저장

계절/기념일에 맞춰 과거 글을 자연스럽게 재추천

사용자가 자주 찾는 주제의 축적된 관점 변화를 시각화

댓글도 최신순이 아닌 축적·참조형 정렬

'생각의 서재' 기능: 개인의 관심사별 아카이브 자동 구성


4. '시작점으로서의 다음' - 답이 아닌 질문을 만드는 곳

검색의 끝이 아니라 탐구의 시작이 되는 플랫폼.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만드는 곳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이다.


실행 설계

모든 콘텐츠 하단에 "이 글이 던지는 질문" 섹션 배치

AI가 생성하는 '연관 질문 추천' 시스템

사용자들이 만든 질문을 큐레이션하는 '질문 아카이브'

전문가와 일반인을 연결하는 '질문-답변 매칭' 플랫폼



다음은 다시 걸을 수 있다


그것이 브랜드라면, 철학을 구조로 증명해야 한다


다음은 기능을 잃었지만, 아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름이다.

현재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되었지만, 정작 의미 있는 정보를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모든 플랫폼이 사용자의 시간을 더 많이 붙잡으려 하는 시대에, 다음은 반대로 가야 한다.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닌 "더 깊이, 더 의미 있게"의 철학으로 무장한 플랫폼. 사용자가 스크롤을 멈추고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 정보를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축적하고 관계를 쌓는 곳.

다음이 다시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을 보여줄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지를 선택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 다음은 다시 우리 곁에서 의미 있는 이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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