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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Mar 13. 2022

파이어족의 교제 방식

집으로의 초대와 식사  


어느 날이었을까요? 

문득 친구로부터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점심에 콩국수 괜찮음?"


그녀와 나는 싱가포르에서 일로 만난 탓에 이렇게 애매한 말투를 씁니다. 이제는 막상 일이 겹치지도 않고 나이도 거의 같아서 직접 만났을 때는 편하게 말을 놓지만 말이지요. 문자의 말투야 어쨌든 우리는 편하게 할 말 다하는 사이입니다. 갑작스러운 문자에 저 역시 "좋아유~"하고 간단하게 답할 정도이니까요. 


그렇게 급 성사된 만남을 위해 그녀는 한국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해콩을 1~2시간 불리고 다른 견과류와 함께 직접 믹서기에 갈아서 국물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하필 토요일 점심 러시아워에 걸려서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도착하게 된 그녀. 택시에서 계속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지만 어쩐지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이 뜨거운 땡볕에 직접 만든 음식을 들고 집까지 찾아오는 그 정성과 마음이 고맙기만 했으니깐요. 


친구는 콩국물과 면을 가져왔고 우리는 오이, 토마토, 삶은 달걀, 김치를 준비한 뒤 면을 삶았습니다. 

생각보다 늦어진 점심 덕분에 오히려 더 맛있고 감사한 한 끼가 되었네요.  

  

한국에서 보내온 해콩으로 만든 콩국수 




점심 식사 후에는 과일과 바나나 케이크도 먹고 콤부차도 마시며 또 수다 한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일 얘기라든가 업계 얘기를 주로 했지만 지금은 사는 이야기, 고민거리, 다른 사람들한테는 하지 못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늘어놓습니다. 


그러다가 미처 알지 못했던 소식을 들으며 놀라기도 하고 친구의 고민에 진심으로 걱정도 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수다를 떠는데 먹는 게 끊기면 안 되죠? 

친구가 따로 챙겨 온 씨앗호떡에 집에 있던 블루베리, 민트를 토핑 하여 2차 후식으로 내어 놓습니다. 







속에 견과류가 있어서 그런지 더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이렇게 식사를 하고 후식을 먹다 보니 뜬금없게도 '협동'과 '조합'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메인을 챙겨 오면 곁들이는 것을 준비하는 우리, 식사를 준비해 온 친구를 위해 후식을 준비하는 우리. 

아주 특별하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느껴지는 식사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미국의 '파이어족'들은 친구들을 만날 때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일단 비용 문제 때문이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서는 함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자라올 때는 가족이 아닌 사람을 집에 들이고 초대한다는 게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바깥의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아마도 비교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행여 살림살이로 판단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유럽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남미 등을 거치며 여러 곳에서 지내고 나니 오히려 집에서 만나고 초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간단한 식사를 하더라도 직접 만든 음식을 서로 나누며 여러 이야기와 그 마음, 마음을 나누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세 집 정도가 한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집에 모여 함께 식사하기도 했는데요. 코로나로, 한 친구의 출산으로, 지금은 그 흐름이 끊겨 버렸지만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틈틈이 만나며 그 교제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한국에도 이런 말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떤 사람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려면 소금 세 부대를 함께 먹어야 한다."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이 세 부대나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식사를 함께 해야 하는 걸까요? 

그만큼 셀 수 없는 많은 끼니를 함께 해야 상대를 알게 되고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들과의 교제에 있어서는 '먹는 것 = 식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살림이 어떻든,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와 그것을 서로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파이어족은 바로 그런 중요한 가치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화려한 식당에서의 외식이 아닌 집으로의 초대와 가정식사를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이어족은 단지 얼마의 자산을 모아 몇 살에 조기 은퇴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그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 저는 소소한 한 끼를 나누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떤 식으로 은퇴하든 그 만남을 계속 이어가는 생활이 되기를 꿈꿉니다. 


여러분은 어떤 은퇴, 어떤 삶을 꿈꾸시나요?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사람들과의 관계와 따뜻한 정, 계속되는 만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여생을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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