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오늘... 길(02)

길 그리고 '나'

by Napolia

길 그리고 '나'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내가 매일 눈을 비비며 나서는 출근길도 있고, 언젠가 꼭 한번 가보리라 마음먹은 지도 밖의 낯선 길도 있다. 익숙하다고 해서 그 길이 늘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이 다르고, 아마 내일 걷게 될 길 또한 다를 것이다. 내가 아직 딛지 않은 미지의 길조차 시간과 함께 흐르고 변한다.


매일 같은 길을 투덜대며 걷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길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댄다. 계절에 따라 가로수의 빛깔이 바뀌고, 어느 날은 보도블록이 뒤집히며 길이 넓어지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뜬금없이 갈림길이 생겨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지난여름, 오랜만에 마음먹고 뒷산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십여 년을 오르내린, 눈 감고도 훤한 길이라 자부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불어닥친 태풍 탓이었을까. 익숙했던 등산로 초입에 큰 나무가 쓰러져 길이 막혀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만든 우회로는 질퍽했고, 나는 잠시 당황했다.

"이쪽으로 가면 더 빠를 것 같은데."

순간의 조바심에 덤불이 우거진 샛길로 발을 들였다. 소위 '지름길'이라 생각했던 그곳은, 들어가면 갈수록 길이 희미해졌다. 나뭇가지에 옷이 걸리고 발은 미끄러졌다. 분명 정상으로 가는 길이라 믿었는데, 어느새 나는 방향감각을 잃고 숲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었다.


로마로 가는 길은 다 통한다지만, 모든 길이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빽빽한 나무 사이로 저 멀리 산 정상의 바위가 언뜻 보였다. 내가 가야 할 곳, 그 '목적지'가 눈에 들어오자 흐트러졌던 마음이 단번에 정리되었다. 덤불을 헤치고 다시 방향을 잡았다. 비록 몸은 조금 고생했지만, 정상이라는 뚜렷한 점을 잇는 선을 마음속에 긋자 길은 다시 열렸다.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튼튼한 신발이나 지름길을 아는 요령만이 아니다. 그 길 끝에 있는 목적지를 잃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다. 목적지 없이 걷는 길은 하루를 걷든, 열흘을 걷든 제자리걸음과 같다. 방향을 잃은 발걸음은 결국 목적지에서 멀어지거나, 영영 그곳에 닿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목적지 저 끝을 응시하고 방향키를 놓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길이 끊겨 있으면 돌아가면 되고, 길이 거칠면 숨을 고르며 걸으면 된다.


목적지가 선명하다면, 우리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혹은 길이 험하더라도 결국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하는 그 물음 하나다.



B&E 01년 11월 어느 날

묵묵히 내 길을 가려한다.

좀 돌아가면 어떠리, 좀 쉬어가면 어떠리

내 갈 곳을 바라보고 잃지 않으면 되는 것을.......




* 이미지 출처 :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