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오늘... 길(01)

어제와 내일 그리고 오늘

by Napolia

어제와 내일 그리고 오늘


<프롤로그: 매일 아침 백지 한 장-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창가에 내려앉은 햇살의 눈부심을 맞이하면, 우리는 누구나 공평하게 시작되는 '오늘'의 하루를 받아 든다.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24시간의 규격으로 만들어진 빳빳한 백지다. 하지만 정작 그 귀한 종이를 받아 든 우리는 종종 못다 한 어제의 얼룩을 지우느라 종이를 찢어먹거나, 오지도 않은 내일의 계획을 상상하다 펜을 놓치곤 한다.


<과거에 사는 사람들>

직장 생활을 하며 숱하게 봐온 풍경이 있다. 한때는 전설적인 성과를 냈을지 모르나, 지금은 "나 때는 말이야"라는 주문(呪文)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선배들이다.

그들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회의 시간에는 "우리 왕년에는 밤새워 가며 맨땅에 헤딩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정작 지금 논의해야 할 새로운 기술과 변화의 흐름을 놓쳤다. 그들에게 과거는 훈장이 아니라, 오늘을 외면하게 만드는 안대와 같았다. 어제의 영광을 닦느라 오늘의 먼지를 뒤집어쓴 줄도 모르는 사람들.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치고 오늘 치열한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그런 사람이 튼튼한 미래를 짓는 꼴도 보지 못했다.


<미래만 기다리는 사람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오늘 흘려야 할 땀방울을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로 퉁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치 복권 당첨을 기다리듯 인생의 '한 방'을 기다린다. "이번 프로젝트만 잘 넘기면", "경기만 좀 풀리면"이라며 오늘 당장 해야 할 귀찮은 일들을 미룬다. 밭을 갈지도 않고 가을의 풍요만을 노래하는 격이다. 그들에게 오늘은 그저 '지루한 대기 시간'일뿐이다. 하지만 겨울이 닥치면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미래의 곳간을 채우는 건 화려한 청사진이 아니라, 오늘 흙투성이가 된 손톱 밑에 낀 검은 때라는 사실을.


<에필로그: 오늘을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

존경했던 한 리더가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단 한 번도 먼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돋보기를 쓰고 신입 사원이 가져온 최신 트렌드 보고서를 정독했다. "왕년에 내가" 대신 "지금 우리가"를 이야기했다. 그에게 어제는 묻어두는 거름이었고, 내일은 오늘 만든 결과물일 뿐이었다.

과거에 갇히면 늙은이가 되고, 미래만 좇으면 몽상가가 되지만, 오늘을 살면 '장인(匠人)'이 된다.

어제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내일을 꿈꾸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늘이라는 좁고도 단단한 발판을 딛지 않고서는 그 어디로도 도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삶은 어제의 후회로 칠해진 회색빛도 아니고, 내일의 기대로 부풀려진 장밋빛도 아니다.

삶은 내가 숨 쉬고, 걷고, 만지고, 보는 바로 지금, 입체의 이 순간이다.


그러니 곰팡이 핀 어제의 기억은 털어내고, 오지 않은 내일의 불안은 접어두자.


우리에게 진짜로 주어진 시간은, 내 심장이 뛰고 있는 바로 지금뿐이니까.



B&E 01년 11월 어느 날

* 내게 주어진 백지를 꽉 채우진 말자. 드문드문 여백으로 오늘의 풍경을 살자.




*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