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시장의 원리 : 사랑의 기초 다지기
나경제 씨는 회사에서 '보고서의 신'이자, '요약의 달인'으로 통한다. 그의 철칙은 간단하다.
"결론부터 말해. 용건만 간단히." 문제는 이 직업병을 퇴근 후 안방까지 끌고 들어온다는 점이다.
저녁 식탁, 정말자 여사가 모처럼 신이 나서 입을 연다.
"여보, 오늘 윗집 영희 엄마 만났는데 글쎄 그 집 남편이 이번에 승진을 했대. 근데 영희 엄마가..."
아내의 이야기가 기승전결의 '승'쯤에서 무르익을 때, 나경제 씨가 습관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잘랐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승진해서 좋대, 아님 당신이 배 아프다는 거야? 핵심만 말해. 서론이 너무 길잖아. 서론이~"
순간 정 여사는 입을 닫았다. (정적). 침묵 속에서 밥그릇과 숟가락만 요란하게 수다를 떨었다.
나경제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밥 먹는데 무슨 대하소설을 쓰고 있어. 핵심만 얘기하고 요점만 들으면 되지. 시간 아깝게.'
하지만 정 여사는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래. 너는 회사에서야 '결론만 말해'가 통하겠지. 근데 집에서도 그러면... 나는 뭐야? 너한테 서론, 본론도 없이 결론만 보고하는 부하직원이냐?"
"아니, 내 말은..."
"말 좀 길면 어때. 나도 하루 종일 속상했던 일 있으면 시시콜콜 얘기하고 싶은 날도 있지. 근데 넌... 집에서도 요점만 얘기하라고 하냐. 인간도 요약하냐. 이 화상아."
그날 이후 한동안 식탁 위엔 시베리아 한랭전선이 형성됐다. 밥상엔 김치 하나만 덩그러니 올라왔고, 국그릇은 자취를 감췄다.
나경제 씨는 시간을 아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밥줄이 끊긴 거였다.
"회사에선 결론 없는 보고가 최악인데... 집에선 결론만 찾는 게 최악이네. 아, 김치만 먹었더니 속 쓰리다."
돈이 돌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듯, 부부 사이엔 '쓸데없는 말'이라도 혈액처럼 돌아야 사랑이 산다. 내가 효율을 따지며 입을 닫는 순간, 우리 집 경제(밥상)는 곧장 대공황에 빠진다. 아내와의 대화는 비용지출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