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이에서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서먹하거나 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주 웃고, 함께 이야기하며, 식탁 위에 서로의 하루를 올려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유 없이 외롭다.
이 감정이 사치일까. 아니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세월의 흔적일까.
10월 17일, 결혼기념일이었다.
독립해 각자의 길을 가는 두 딸과, 어느새 나보다 피지컬이 좋아진 막내아들까지 모두 모였다.
우리는 외식 대신 집에서 식사를 택했다.
그게 더 마음 편하고, 더 오래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밖에 나가면 우리는 늘 눈에 띈다.
아마도 웃음이 끊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저 테이블은 뭐가 저렇게 좋을까?"
그런 시선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우리 가족의 식탁에서 메인 디시는 밥과 반찬이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남들의 소소한 일상을 디저트처럼 곁들인다.
그 시간은 언제나 따뜻하고 유쾌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그 웃음의 한가운데서 나는 점점 고요해지고 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축구는 한 사람의 기량보다 팀 전체의 호흡이 만들어내는 예술 같다.
서로의 위치를 믿고, 그 신뢰 위에서 공이 움직인다.
어쩌면 우리 가족도 그런 팀인지 모른다.
큰딸은 대화를 조율하는 미드필더,
둘째는 빈틈을 파고드는 윙어,
막내아들은 능청스러운 센터백,
그리고 아내는 모든 방향에서 날아드는 공을 막아내는 레전드 골키퍼.
나는 자연스레 스트라이커를 맡고 있다.
예전엔 골 결정력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은퇴를 앞둔 선수처럼, 자꾸 헛발질을 한다.
가족은 그런 나를 배려해 준다.
그런데 그 배려가 내겐 고요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눈빛 속엔 여전히 '아버지'가 있지만,
그 시선 속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가끔은 그들이 떠먹여 주는 찬스조차 놓친다.
공이 스쳐 지나가듯, 식탁의 웃음도 내 귀를 지나간다.
나는 웃는 척하며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는다.
요즘의 나는 가족의 경기장에서 침묵을 훈련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웃음소리 하나하나가
내겐 잘 짜인 팀의 패스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리듬 속에서, 나의 외로움을 천천히 읽는다.
어쩌면 이 외로움은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 인정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된 순간의 허전함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로, 남편으로, 가장으로 살아오며
늘 중심에서 팀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이제 그 중심은 자연스레 다음 세대로 옮겨가고 있다.
그 자리를 내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더 조용하고, 더 쓸쓸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식탁 위에 귀를 연다.
가족의 웃음 사이로,
아직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기를 바라며...
B&J 32년 10월 어느 날
고요 속의 수다를 꿈꾸는 스트라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