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세 그루 나무의 여정

by Napolia

나는 작은 마을의 성주다.

내 성은 대리석도 첨탑도 없지만, 성안 작은 울타리에는 오직 나만 아는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그 풍경의 중심엔 아주 작은 샘물이 흐른다.
큰 강물은 아니지만, 그 샘물은 쉼 없이 자신을 내어주며 성안뿐만 아니라 성밖 주변의 생명들에게도 생기를 나눈다.

특히 성안의 세 그루 나무들은 그 샘물 덕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그 혹독한 계절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견디며 잘 자라왔다.

그런 아름다운 풍경은 성주인 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며 삶의 근원이다.


I. 강인함의 꽃 - 매화나무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것은 매화나무였다.

처음엔 여린 새순으로 봄을 맞았지만, 샘물에 깊이 뿌리내렸기에, 장마의 폭우와 겨울의 혹한을 통과하며 단단히 자라났다. 스스로의 의지로 시련을 견뎌낸 나무는 이제 누구보다 강인하고 고운 향기를 품는다.

기억난다.
폭설이 내리던 겨울의 한밤, 나는 성을 살피고 있었다.
모든 나무들이 추위에 떨며 눈 속에 몸을 숨기는 모습을 보았을 때,
문득 성안에서 작게 싹 틔운 매화나무가 걱정되었다.

종종걸음으로 나무 앞에 섰을 때, 오직 그 나무만 가지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마치 이 추위를 견디는 것이 자신의 숙명인 듯.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모진 풍파는 나무를 꺾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를 더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봄이 오자, 그 매화의 꽃봉오리는 누구보다 먼저 피었다.
더 짙은 향기로, 더 담대한 자태로. 그 모든 겨울밤을 견뎌낸 증거처럼.
나는 그 향기를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언젠가 이 매화가 나의 성을 떠난다 해도, 그 강인함은 또 다른 봄을 피워낼 것이라고.


II. 중용의 지혜 - 자작나무

몇 해 지나 그 옆에는 자작나무가 섰다.
하얗고 매끈한 수피는 숲의 여왕처럼 아름답지만,
속은 누구보다 수수하고 따뜻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듯,
이 나무는 어떤 현실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법을 안다.

한여름의 정오, 모든 나무들이 태양 아래 지쳐갈 때 자작나무만은 그 빛을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받아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걸러내며, 깊은 뿌리로 샘물을 조심스레 머금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자작나무의 투명한 껍질 아래엔 세상을 헤아리는 지혜가 숨어 있다는 것을.

또 다른 날, 폭우가 쏟아지던 밤.
다른 나무들은 흔들렸지만, 자작나무는 빗물을 받아내며 흘려보냈다. 저항하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순응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이 이 나무의 방식이었다.
세상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듯했지만, 그 다름의 지혜는 타고난 중용의 생존방식이었다.


III. 연민의 그늘 - 느티나무

또 몇 해 지나 울타리 가장 안쪽에는 느티나무가 섰다.
그는 따뜻한 성정을 지녔고, 그가 품고 있는 샘물이 넉넉하기에, 어느 생명 하나 상처 입히지 않는다. 풍부한 감수성과 여린 마음은 타인을 품는 너른 그늘이 되었다.

어느 가을 저녁, 성의 일들로 지친 나는 느티나무 아래에 기대어 있었다.
그때 느티나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천천히 가지를 내려 나에게 그늘을 드리웠다.

그 순간 알았다.
이 나무의 감수성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깊은 연민의 형태라는 것을.

봄날, 어린 새들이 느티나무 가지에 앉아 작은 깃들을 펄럭일 때도, 다치지 않게 가지를 길게 내어주었다. 그 노는 모양이 마냥 흐뭇한 듯, 넓은 잎으로 함께 어루만져 주었다.
그것이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맡은 자의 책임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여름에는 지친 일꾼들이 그 그늘로 모여들었고, 그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즐거웠다.
고단한 마음도, 무거운 하루도, 그늘 아래에서는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다.


IV. 떠남을 준비하며

나는 믿었다. 나의 성에서 나의 샘물로 성장한 세 그루의 나무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그 어떤 거대한 성의 정원보다도 아름답다고.

그들은 나의 작은 보살핌 속에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견디며 자라났고, 저마다의 꽃과 그늘을 피워냈다.

하지만 계절이 거듭되면서, 무언가 조용히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알아챈 것은 매화의 향기였다. 봄이 깊어갈수록 그 향기는 울타리를 넘어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처음엔 설레는 마음으로 그 확산을 바라봤지만, 언제부턴가 그 향기가 더 이상 오직 내 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작나무의 뿌리는 점점 더 깊어졌다. 그 뿌리가 울타리 아래를 헤쳐 나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혜로운 이 나무는 이제 이 작은 땅의 경계로는 부족해 보였고, 더 넓은 세상의 풍경을 읽고 싶어 했다.

그리고 느티나무의 그늘은 이제 내 혼자만을 품기에는 너무도 넓고 따뜻했다. 여름날 그 아래에서 쉬는 이들의 웃음소리는 갈수록 많아졌고, 내가 혼자 누리던 그 포근함은 어느새 수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흐뭇함 속에 미묘한 떨림이 섞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동시에 그들을 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V. 사랑하는 방식

성주인 나의 마음은 복잡했다. 자부심이 있었다.
이 작은 울타리 안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자란 그들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 한구석엔 아쉬움이 맺혔다. 이 풍경이 이대로라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있었다. 두려움도.
그들이 이 성을 떠난 후 자신들의 새로운 땅에서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
또한 그들이 떠난 후 내가 남겨진 성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하지만 더 강했던 것은, 그들이 스스로 얼마나 크게 자랐는지를 아는 기쁨이었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이 세 나무를 이 울타리 안에 붙잡아두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한 사랑은 그들이 스스로의 뿌리로 땅을 파고, 자신만의 샘물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성주로서 결정했다. 그들을 보내기로. 저마다의 성을 세우고,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VI. 울타리 너머의 흐름

아침마다 나는 울타리 너머를 바라본다.

저곳에서 새 성을 일구고 있을 세 그루의 나무를 생각하며.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을 축이고,
얼마나 많은 마음을 품어줄지를 상상하며.

울타리 안의 샘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 흐름이 이제 이전처럼 울타리 안만을 적시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비움이 아니라,
한 성주가 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인생"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들의 새로운 정원에서도, 나의 샘물과 사랑은 여전히 흘러갈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 뿌리 아래, 닿지 않는 거리 너머로도.

그렇게 나의 성은 비로소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B&J 32년. 10월 어느 날
우리 삼 남매를 흐뭇하게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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