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나는 어떻게 아내를 악처로 만들었는가

by Napolia

우리는 부부다.

서로에게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 30년이 넘었으니, 세상의 풍파를 나름 잘 버텨온 한 쌍의 짝이기도 하다.
흔한 주례사처럼 결혼 생활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때로는 공중전까지 치르며, 서로 싸우고 또 응원하며 살아온 우리는 전우이자 파트너이며 동지다.

처음부터 능숙한 부부였던 것은 아니다.
신혼 3년, 우리는 거실 시계의 분침이 한 바퀴 도는 것조차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싸웠는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아마도 보이지 않는 주도권 다툼이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이 사소한 기회를 잡아 주도권을 쥐어야 평생이 편안하다'는 막연한 착각이, 아내 앞에서 나를 악마의 탈을 쓴 어설픈 남자로 만들었다. 피식 웃어넘길 수 있는 사소한 일들에 목숨을 걸었던, 참으로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나름 애썼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도 결혼기념일만큼은 와인 한 병과 꽃다발, 그리고 사랑을 눌러 담은 손 편지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에도 아내는 내가 기대했던 만큼 크게 기뻐하는 내색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벤트의 효과는 고작 3일을 넘기지 못했고, 그때는 그것이 왜 그리도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작전을 바꾸어 아내의 생일에는 장인과 장모님을 모시고 63 빌딩 스카이라운지를 예약해 근사한 식사를 대접했다. 그 정성은 나름 오래 기억되었던 것 같다.

젊은 날의 나는 잠시나마 잘 나갔었다. 물론 그 시절은 짧고도 짧았던 한바탕의 꿈, 일장춘몽이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제조와 유통을 아우르는 IT 기업의 실질적인 대표를 지냈지만, 나의 성은 허술했다. 온 나라가 월드컵 4강 신화에 들떠 있던 그 무렵, 벤처 사기가 극성을 부리던 시대적 상황 탓도 있었지만, 결국은 외부의 위협에 대한 면역조차 갖추지 못한 나의 미숙함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그 힘든 시기, 나는 아내의 따스한 내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따뜻한 위로나 흔한 응원 한마디 받지 못했다는 생각은, 무너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변명거리로 남아 지금껏 아내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실패의 원인을 누군가에게 전가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기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한 원망이 관념이 되어 아내를 향한 못난 행동으로 드러나고야 말았다.
나의 그 못난 행동들로 순하고 착하고 웃음밖에 모르던 현명한 여자는 얼마나 속병을 앓았을까. 나는 오직 내가 살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나의 악처로 만들었다.

그렇게 30년을 함께 살아온 지금, 아내의 마음속에 남은 것은 사랑보다는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워 온 전우애나 동지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 자신마저 속여가며 가정을 지켰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남편에 대한 연민일지도. 그 감정을 무엇으로 규정하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 어렵고 힘든 30년의 세월을 '같이' 겪어냈으니까.

전우든, 동지든, 파트너든, 친구든. 우리는 무엇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긴 세월의 희로애락을 분명 함께했다.
이것이 우리 '부부'의 정의다.

B&J 32년 10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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