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이 남은 9월 초, 교수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철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유롭게 의견을 남겨주세요.” 그 때 정확히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세상을 설명하려는 생각’이라고 답했던 것같습니다. 변화무쌍한 현실을 어떻게든 해석하고 답을 내려는 본능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본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며 세계를 발전시켜왔지만, 여전히 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수많은 논의와 추측만이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저는 딱 하나, 변하지 않는 고결한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진리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늙고, (그 방향이 옳든 옳지 않든) 세계는 발전하고, 우주는 팽창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시작했을 때의 저와과 마무리 지었을 때의 저는 엄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기연속성에 묶여있어 모두 같은 '나'라고 생각하지만 제 안의 물리량, 저의 위치, 생각 모든 것이 절대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변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변화를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늙고 싶지 않고,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고, 가진 명예와 직위 그리고 부를 놓으려 하지 않지요. 그래서 저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인간은 한없이 초라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슬픈 일입니다. 지금의 나를 붙잡아둘 수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에게나 파괴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 누가 나를 잃고 싶을까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하나의 진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붙잡을 수 없으며, 언젠가 이 지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존재라는 것을요.
그래서 철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불교는 ‘나’를 버려, 집착을 거둬낸 해탈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고행과 수련을 하고, 기독교는 신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금욕과 기도로 마음을 다스립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종교, 철학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그저 변화에 맡기는 것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흐름 속에서 매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고, 그 선택을 하나의 길로 그려보면 그 누구도 걷지 않은, 나만의 길이 되겠지요.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지금 이 순간을 자기답게 채워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아온 자기 확신은 어떤 변화가 와도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자기만의 찬란한 빛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21년 11월에 발매된 자우림의 11집 <영원한 사랑>의 수록곡 중 ‘PÉON PÉON’에는 “마마도 파파도 형아도 그 누구도 살아있는 동안엔 춤을 추는 것이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사는 우리 삶의 목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라져버릴 존재이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있는 힘껏 자신의 춤(자신의 삶)을 춰야한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내세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은 살아있을 때만 춤을 출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걸 삶에 치여 잊곤 합니다. 지금의 힘든 과정 또한 나의 삶이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삶이 보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추고 있는 춤 또한 항상 변할 것입니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엄연히 따지고 본다면, 다른 동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과 춤을 추고 있는 지금의 존재는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있는한 10대에도 20대에도 .. 80대에도 여전히 삶이란 무대에서 있는 힘껏 춤을 출 것이며, 추어야만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내일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춤을 추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춤은 감히 그 누군가가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고귀함으로 자리하며 변화 속에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살아있는동안 있는 힘껏 춤을 춥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