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끝, 저는 송파구로 이사왔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를 가진 집이라 쿰쿰한 냄새가 나지만, 저는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전에 살던 집은 제 마음 둘 곳이 없었거든요. 천장 구석의 곰팡이 자국과 바닥에선 본드냄새가 진동을 했죠. 집주인은 저를 유난떠는 청년으로 여겼습니다. 정당한 요구들은 힘을 잃었고, 집이 아닌 숙소처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느 숙소와 다른 점은 그 누구도 저를 대신해 청소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방은 곧 마음이라고 했던가요. 집이 먼지 투성이가 될 수록 마음의 찌꺼기들을 거둬낼 수 없었어요. 그러고 싶지도 않았구요. 청소하는 순간 과거의 저를, 이 집을 선택한 나를 안아주기 힘들어졌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이 공간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다루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1인용 소파를 샀고, 그간 하지 않던 이불 빨래도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채우고 있어요. 주말마다 바깥으로 향했던 걸음은 이제 갈 곳을 찾은 듯합니다.
음식도 만들어 먹기 시작했어요. 베란다에 작은 싱크대를 두고 부엌이라 했던 과거와는 달리, 부엌다운 부엌이 있어요. 어제는 카레가루와 몇 가지 채소를 사서 카레를 해먹었어요.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나를 위해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건강을 위해 채소를 갈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맛이 있지는 않지만 나에게 좋은 것을 준다는 생각만으로 충분해요. 저번 주부터는 러닝을 합니다. 사실 이건 오래 전부터 생각해두었던 건데, 대학생 때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전 집에서는 달릴 말한 곳이 없어서 외면했어요. 이제는 마음 편히 달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헬스장이 아니라 사람 구경 하면서, 매일 다른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죠.
새로 알게 된 사람과 연락도 시작했습니다.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정도로 최근 기분 좋은 일 중 하나였죠. 새 집에 오니 새 인연도 생기는 구나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만남은 불발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만남이 그리 환영할 일이 아니었나봅니다. 비록 표현하는 방법이 읽고 난 뒤 답장하지 않는 방식이었지만! 오히려 다행이에요. 적어도 자신의 결정 앞에서 만큼은 당당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저에게 집중하고 싶어졌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기댈 곳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왔지만, 그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조차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확신하지 않는데..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쉽게 사랑할 수 있나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2년 동안 모른 척했던 나를 더 돌봐주고 싶어졌어요. 나이도 딱 서른, 여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기에도 나아가기에도 좋을 시기잖아요.
어떤 방향으로 뻗어갈 지 모르겠지만,
분명 달라져 있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4월 22일 송파구 주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