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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Aug 04. 2024

나는 어른이다.

 밤을 어둡게 보내는 요즘이다.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남은 빛. 집 내부를 인지하기에는 그들도 충분하다. 하루 종일 조명등 아래 있어서 그런지, 불을 꺼둬야만 하루가 끝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저녁은 늘 조용하고 어둑하다. 옅은 빛에 기대어 설거지를 하고 몸을 씻어내고 나오던 찰나. 벽에 걸어둔 행주가 이상하다. 거뭇거뭇한 무언가가 있다. 얇은 실같은 것들이 움직이는 걸 보니 분명하다. 바퀴벌레다.


 3년 전 나는 자취를 막 시작했었다. 지어진 지가 30년은 족히 넘은 나의 학교처럼 자취방들 또한 아주 오래 되었다. 아무리 깨끗히 청소를 하고 향을 흩뿌려도 풍겨 나오는 세월의 냄새를 제거할 수 없는 그런 집. 주인이 사는 1층과 마당, 그 뒷켠이나 2층은 세를 주는 방식으로, 조금만 시끄러워도 주인집에서 연락이 오는, 한 주택에 여러 가구가 사는 곳. (생각해보면 바퀴벌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하다) 지금처럼 더웠던 그날, 볼일을 본 뒤에 방으로 들어온 나.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흐르고, 어두운 곳에서도 분명 느낄 수 있었다. 내 삶에 무언가가 나타나겠구나. 여태껏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구나. 그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간의 눈은 생-각보다 적응력이 뛰어나다. 정말 알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고민했다. 슬리퍼로 때려 죽여야 하나? 그럼 사체 처리는 어떻게 하지? 혹여 다시 숨어 버린다면? 이 집을 버려야 하는 건가? 고민은 끝이 없고, 슬리퍼를 집어 들었다.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법을 택하려 했지만, 차마 내칠 수는 없었다. 그래.. 사라질 거라면 눈에 걸리기라도 해다오. 그를 묶어둘 방법도 없는 나는 플래시를 킨다. 지금의 최선은 움직이지 않게하는 것 뿐. 그렇게 우린 멈춘듯 1시간을 대치한다. 여름 밤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피부에 맺힌, 옅은 땀. 그도 땀이란 걸 흘릴까? 마치 죽은 것처럼 움직임 하나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서로의 존재를 느낀 두 생명체.


 불빛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점점 열을 내기 시작한 내 휴대전화. 확실한 행동을 취해야만 하는 시점. 나는 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로 한다. 도저히 저 친구를 내 두 손으로 처리할 자신도, 엄두도 없었다.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던걸까?새벽이었음에도  연락은 꽤나 빨리 도착했다. (남성으로 추정되는) 몇몇 분들이 연락이 왔지만, 먼저 여자냐고 물어댔다.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거짓말을 하고 나의 평안을 지킬 것인가. 남성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고, 그들은은 바퀴벌레처럼 스윽 사라졌다. 연락 하나에 행복과 허무를 느끼다 한 분이 나를 도와 주기로 하셨고, 아무렇지 않게 그를 약으로 절여서 처치해주었다. 생명체의 죽음은 생-각보다 쉽게 결정되었고, 감사의 의미로 그의 집까지 배웅해드렸다. 그리고 손에 치토스 한 봉지를 쥐어드렸다.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 스스로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스프레이형 퇴치제를 구매했다. 이것이 진정한 독립이고 어른임을 외치며, 그들이 나올 때마다 절여 죽을 때까지.. 남김없이 뿌려댔고, 곧장 의식을 잃으면, 시체를 종이에 싸서 바깥으로 투척했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그 이후 나는 그들을 볼 일이 없었다. 꽤나 고층에 살게 되어서 그런지 집이 집답지 않아 살 가치가 없다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2년 동안 바퀴벌레는 길바닥에서만 볼 수 있었고. 나와는 관련 없는 종이었는데.. 이 아름다운 보금자리에서 나의 안위를 위협하다니.. 이 집에서 그들을 처치할 방법이라고는 물리적 방법 뿐인데…. 


 결국 부츠를 꺼내 들었다. 이 부츠로 말할 것 같으면 첫 월급으로 큰 마음 먹고 산.. 나무 굽이 달린 신발이다. 무려 30만원. 우리집에서 어떤 의미로든 가장 강력한 녀석이다. 그래 이 녀석이라면 단번에 그를 죽일 수 있을 거야. 결의에 찬 나. 하나 둘 셋! 탁!! 그를 있는 힘껏 내리친 나는.. 실눈으로 확인해보았다. 확ㄱ실하게 죽었다. 그 어떤 움직임조차 없는 녀석, 3년 전처럼 능숙하게 행주로 그를 감싸고 밖에 투척을 해버린다. 아주 깔끔하다. 징그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 망설임도 없는 걸 보니.. 나 어른이 되었구나 싶다. 그들이 점령한 세상 속에서 승리를 쟁취한 기분이었다.


 이 소동 때문에 바디로션을 바르지 못했다. 바로 발라줘야 보습이 된다고 하던데. 나의 소중한 일상을 되찾고 싶다. 이미 건조해진 피부 위에 급하게 로션을 펴바르고. 아늑한 숲의 향을 느낀다. 싱크대 위에는 새로운 바퀴벌레가 있었다. 한 마리가 더 있구나. 두번째 나타난 그를 보내주고, 내일 다이소에서 바퀴벌레 약을 사기로 한다.

진정한 어른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 법, 역시 나는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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