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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Sep 17. 2024

할머니, 나의 할머니

나는 그녀와 친하지 않기에 이렇다 할 추억이 없으나,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당근 이야기’ 뿐.

다섯 살짜리 손자가 먹고 싶은 라면 대신, 생 당근 한 개를 건네주었던 나의 할머니.

그게 몸에 좋은 거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단호한 말투와 표정을.

어른도 아닌, 어린아이가 익히지 않은 당근을 좋아할 리 없기에. 아직도 강렬하게 남은 기억이다.

아직도 생 야채는 어려운 음식이지만, 얼추 나이를 먹어 보니 그 마음을 이해한다.

이왕이며 좋은 걸 주고 싶었던, 원하는 것보다 위하는 마음을.


그게 25년 전의 일이고, 뜨문뜨문 뵈러 갔었지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건, 8년 전 대학 입학 했을 때였다

나의 할머니는 경기도 일산에 계시기에 경상도에서 자주 찾아뵙기 어려웠고

그래서 내 삶의 중요한 시점에만 얼굴을 비췄다. 마치 숙제하는 느낌으로.. 그마저도 아버지의 종용 때문이었지만.


서울에서 터를 잡고 족히 2년은 흘렀지만 여전히 일산은 멀기만 했다. 

같이 사는 큰 집 어른이 보기 싫었고 할머니와 마땅히 할 말도, 나눌 이야기도 없다.

바쁘다는 핑계는 가장 만만했으며, 서울의 생활을 누리기에도 주말은 너무 짧았다.

그렇다. 나는 늙은 할머니보다 내 또래 사람들이 더 좋았다.


그리고 2024년, 처음으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추석. 

명절 때 서울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게 나의 로망이었기에

올해는 바쁘니 대신 할머니를 뵈러 가겠다는, 협상의 도구로 그녀를 사용했다.


잠실에서 일산까지 1시간 30분 거리. 커피 한 잔 마시러는 잘 가면서 어찌 할머니를 보러 가기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을까.

몇 편의 드라마를 보니 금방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집 근처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이 더운 날에도 빙빙 돌며 만남의 시간을 최대한 미뤄본다. 그때, 고개를 내밀어 손자를 열심히 찾는 할머니가 보였다.

성치 않은 눈으로 나를 찾을 리 만무했다. 그녀는 8년 전에 눈에 담아 두었던, 희미한 내 모습을 찾고 있을 터..

그런 그녀를 보고 더는 미룰 수 없어 그 집에 들어갔다. 계단 하나하나에 내 죄의 시간이 발에 차인다.

4층에 다다를 때 눈에 걸리는 할머니의 모습.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는 할머니였기에 나는 그녀의 늙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달라진 점을 바로 알아챈다. 달라진 인상부터 살이 찌고 마름의 정도까지..

오랜만에 본 손자를 안아 볼 수 도 있으련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움직임.

이 순간마저 힘든 길을 걸어왔을 나를 배려하는 눈빛에 죄인이 된 듯했다.

1시간 30분이 뭐라고. 그리도 비싼 척을 해댄 걸까.


온갖 반찬을 꺼내 주시고는 이것밖에 못 먹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결혼은 안 하냐, 만나는 아가씨는 없는지 먹고 살만 한지 8년을 삼켜낸 질문이 쏟아진다.

내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았다.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지 시간의 벌어짐을 메워 보려, 이 순간을 붙잡아 두려는 마음뿐. 

소박한 밥상을 해치우고 나니 다시금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저.. 이제 집에 가야 해서…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이고

혹여 손자가 떠날까.. 했던 질문을 반복하는 그녀를 나는 엉거주춤 안아 드렸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해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작은 온기를 나누는 것뿐. 어떤 위로도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조차 이런 상황이 낯설었기에.


체념한 듯 늘 건강 하라며, 주머니 속에서 5만 원 지폐 두 장. 꼬깃꼬깃 접힌 돈을 쥐어 주시던 손.

급하게 구겨 넣은 신발 속 갈라 비틀어진 발톱. 원래 있었던 듯 제 살이 된 기미가 이제야 보인다.

살아온 시간이 다른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시간을 걷는다.

언제고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아는 듯, 건조한 눈물을 흘려 내지만,

그마저도 금방 마를 만큼 늙어 버린 할머니, 나의 할머니.


창문 틈 사이로 손자 걸음을 지켜보는 그녀를 뒤로 한채 매정하게 돌아선다.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담으려 애를 썼을까. 어떤 생각으로 나를 다시 보냈을까.

상상도 하기 힘든, 아득한 마음만이 무성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자는, 일산과 한참 떨어진 카페에 와서야 애꿎은 눈물을 떨구었다.

늘 당신보다 몇 걸음 늦는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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