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에게
뮤지컬을 좋아한다 했다. 낮에는 사무직으로 일하는 그녀이지만, 실제로 뮤지컬 공연도 올린다며 수줍게 웃던 모습이 선하다. 당시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고, 뮤지컬 문화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어서 그런 게 있나? 신기하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직장인 밴드야 무대와 공연장이 워낙 많고 - 가끔 유튜브에서 영상을 추천해 줬기에 익숙하다만. 화려한 세트장과 수많은 배우들이 필요하고 공연 전문 플랫폼의 개입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낯선 문화였다. 직장 생활하면서 어떻게 병행하는지도 의문이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그녀의 취미에 대해 잘 몰랐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
‘미미’ 자신의 이름을 미미라고 소개했다. 당시 나는 영어 커뮤니티에서 멤버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 신입 멤버들을 인계받아서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설계해 주고 - 서포트하는 역할이었고 늘 첫인사는 통화로 해야만 했다. 반면, 멤버들은 자신의 영어 이름을 지어야 했는데, 나의 이름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누구는 최신 AI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니셜이나 본명에서 따오기도 하는데, 그녀는 스스로에게 미미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아주 수줍게 내게 말했다. 사실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미미라는 이름은 흔하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고, 어린 시절 미미라는 인형이 있었기에 살짝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의 주인공 이름이라고 - 그녀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녀와의 첫 기억은 조금은 수줍고 당차기도 했었다. 그리고 함께 활동하고 만나며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활동한 지 3개월 정도 흘렀나 - 미미의 SNS에 뮤지컬 공연 공지가 올라온다. 2025년 1월 5일, 구로구 인근의 공연장에서! 나는 공연을 보기로 결심했다. 뮤지컬이란 장르도 궁금했고, 무대에서의 미미가 궁금했다. 수줍은 미소를 가진 그녀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실제로 보고 싶었기에. 저녁 6시 즈음 구로역에 도착했다. 공연장이 있다고 하기엔 조금 적적한 동네였다. 역 바로 옆엔 백화점이 있었지만 5분만 걸어도 주택, 아파트가 즐비한 이곳에 공연장이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한참을 찾아 헤매었다. 마트 건물 지하로 내려가야만 볼 수 있는 비밀 아자트 같은 곳에 공연장이 있었다. 매표소에서 내 이름을 말하고 공연장 입구로 들어선다. 그곳엔 철근으로 제작된 세트와 공중전화 부스와 약간의 단차가 있는 의자들이 있었다. 대략 30석 정도로 그중 절반 정도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들 자신의 옆자리에 꽃다발과 종이 가방 따위를 얹어 둔걸 보니 배우들의 지인이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유독 내 손이 초라해 보였다. 그저 공연만 보러 와 빈손으로 왔던 내가. 시선을 무대로 다시 돌려 본다. 계단 달린 철근 세트장을 보니 배우들이 오르락내리락할 것 같은데 조금 위험해 보였다. 누군가 다치진 않을까 걱정한다. 공연이 시작된다.
뮤지컬 제목은 <렌트>. 현실은 암울하고 답이 없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청춘을 담고 있었다. 당장 렌트(달세)를 낼 돈이 없거나 꿈을 계속 이어나갈지 고민하기도 사랑 앞에 망설이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꺼낸다. 어떤 분은 긴장한 탓에 음정이 아쉽기도 했고, 열심히 코러스를 넣으며 화음을 쌓아냈지만, 이상하게 작품 초반 미미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분명 여주인공 같은 포지션인데.. 학예회에서 자식 찾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미미야!!
그때 미미가 등장한다. 고양이처럼 화악 튀어 오르며, 관능적이고 당당한 몸짓을 보이며 - 우리에게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며 사랑을 노래한다. 더 망설이지 말라고. 마음이 있다면 당장 뛰어들라고, 그런 그녀를 보는데 눈이 흐려진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분명 행복하고 열정이 담긴 메시지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댔다. 나는 울 때 콧물까지 터져 나오곤 하는데, 훔칠 휴지마저 없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울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배우 중 한 명과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공연 후반부 결국 미미는 사망하고 공연도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마지막 곡이 흘러나오고 “52 만 5600 분의 귀한 시간들 -”이 흘러나오며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날의 미미는 미미 그 자체였다. 정말 그 캐릭터처럼 무대에서 숨 쉬는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고 - 아주 뜨겁게 귀하게 보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눈빛, 손짓, 숨소리 하나하나 지금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모습. 마음에 별을 품을 이들은 저렇게 빛나는구나. 일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미미의 표정이 기억날 정도로 나에겐 큰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분명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오로지 지금을 사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빛이었다. 나의 눈물은 감탄과 존경 그리고 부러움이 섞인 것이리라.
공연장 밖에서 모두들 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울고 있던 나는.. 먼저 갈까 하다 미미를 기다려 본다. 오늘 공연은 정말 멋있었다고. 너무 뜨거웠다고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배우들이 나왔고, 나는 한 발짝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꽃다발을 들고 온 친구들을 먼저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나의 두 손은 조금 초라했기에. 그리고 잠시 빈 틈을 타 그녀와 사진을 찍고 오늘 너무 멋있었다고 전했다. 지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할 수 없을 말을 해내니 마음이 개운하다. 그 순간에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청승맞을 정도로.
구로구에서 집으로 가야 하는 길. 운이 좋게도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1월의 추운 날씨를 느끼며 - 버스 창 밖을 본다. 그날의 별들은 유난히 빛났다.
무대 위 미미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