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게 될 거야

by 빈칸센

지금으로부터 4주 전, 처음 퇴사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우리 회사는 업계 1위를 향해 더 뻗어 나가려는 단계여서 주체적인 직원들과 함께 하고 싶다. 최근에 많이 지친 것도 있겠지만 2년 동안 지켜봤을 때 - 빈칸씨는 최고를 지향하기보다는 둥글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 같다.”


정말 맞는 말이다. 살면서 최고가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 적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 적당한 최선을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끝까지 달리는 건 너무 힘이 드는 일이니까. 나를 위한 20 퍼센트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부정할 수 없었기에. 공백을 매우려는 듯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회사 방향성이 확고한 만큼, 계속 함께 일했을 때 빈칸씨는 빈칸씨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서로에게 좋은 방향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을 들어 보고 싶다. 다시 한번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 회사와 함께 할 것인지, 아니면 정말 빈칸씨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볼 것인지. 빈칸씨 생각이 정리된 후에 이야기 더 해보자. 이틀 정도면 시간 충분할 것 같다.”


나도 열심을 다했다고. 잠시 지쳐서 방향을 잃어버린 거라고. 나름대로 애쓰고 버티고 있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을 삼킨다. 최고가 되려는 회사, 변명할수록 구차해질 뿐이었다. 언젠가 회사 높은 분과의 미팅에서 “빈칸씨는 간절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문턱에서 좌절하게 될 거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 정말 통찰력 있으시구나 느꼈다. 너무 맞는 말이었으니까. 한편으론 저주처럼 느껴진다. 살면서 그리 간절하게 바란 게 있었나.? 10년 전 재수할 때뿐이었다. 그때에도 나의 간절함이 아닌 - 자식 된 도리로서의 간절함이었다. 그래도 괜찮은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마음 정도. 강산이 변했지만, 나는 그대로다. 만약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망설임 없이 더 노력하고 도전해 보겠다 했을까?


이틀 뒤 회의실에서 다시 그녀와 독대했다. 퇴사를 선언했다. 한때 하고 싶다 외치던 일을 포기하겠다고. 더는 못하겠다고 말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목이 턱 막히고 잠깐이지만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낀다. 답답한 속이 울렁 거린다. 그녀는 말을 더 얹지 않았고, 퇴사 날짜를 정해 회의를 마무리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시간이 정말 어색했다. 남은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 본다. 정말 퇴사하는 게 맞을까? 후련하기도 후회스럽기도 한 마음을 바라본다. 하지만 역시 뱉어버린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날 저녁, 판교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 2년을 꼬박 다닌 그 길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두 눈에선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리고 - 한로로의 <사랑하게 될 거야>가 흘러나온다. 노래가사처럼 언젠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열심히 휘몰아쳤던, 지금의 선택을 내린 나 자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