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다섯 번째 관문, 결정 5
다섯 번째 관문: 결정 5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 정책은 ‘포스트 홍콩전략’으로 불린다.
세기적 대변환을 가져올 중국의 개방시대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여 동북아의 변방(Far East)을 벗어나 동북아의 국제 비즈니스 HUB가 되는데 명운을 걸어 보자는 기획이다.
중국이 개방되고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 그동안 독보적으로 홍콩이 담당했던 동북아의 국제비즈니스 중심 역할에 변화가 올 것이고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천이 그 역할을 가져온다는 구상이다.
그 구체적인 준비를 위해서 홍콩을 크게 앞서는 미래도시 송도정보화신도시를 만들고 이를 세계와 24시간 연결하는 물류허브 인천신공항을 만드는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기획되었다.
송도신도시가 홍콩을 제치고 국제비즈니스 허브 위치를 가져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뛰어난 삶의 질을 보장하는 ‘환경도시’와 송도정보화신도시에 입지 하는 것만으로도 비즈니스 경쟁력이 보장되는 ‘정보화된 첨단기술도시’ 기반이었다.
이 정보화된 첨단기술도시 환경을 기반으로 하여 IT(정보), BT(바이오), NT(나노), FT(융합) 산업의 기본 생태계를 조성하여 이들 미래 첨단산업을 송도신도시에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미래형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 중에서 전략산업으로서 가치가 크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IT와 BT산업이었다.
다행히 IT분야는 이미 우리나라의 대표산업이었고 송도정보화신도시를 채우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BT산업은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한마디로 당시의 대한민국은 BT산업의 불모지였다.
당연히 송도에 BT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이루어지기 너무도 힘든 꿈이었다.
더구나 BT산업의 중요성을 늦게나마 인식한 정부가 정책역량을 집중하여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충북 오송에 바이오단지를 추진하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송도는 정부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송도신도시는 홀로 서야 했다.
그러나 바이오산업은 결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돈을 퍼부어야 한다.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인재와 기술적 기반도 필수적 요소다. 바이오산업이 극히 일부 선진국의 전유물인 이유이다.
박 국장은 BT산업을 바닥부터,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무모할 뿐만 아니라 그런 방법으로는 송도신도시로서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발상을 전환했다.
씨앗을 심는 방법이 아니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를 이식해 오는 방안, 즉 국제적 바이오기업을 유치하자. 돈도 기술도 시장도 함께 온다.
그리고 송도정보화신도시에 바이오 클러스터를 만들어 바이오 생태계를 만들고 활성화하자. 바이오 연관산업을 한데 모아 비즈니스 효율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을 세우고 송도신도시에 우선 10만 평의 바이오클러스터 단지를 획정했다.
그러나 어떤 국제바이오 기업이 불모지 대한민국에 오려고 할 것인가.
그러나 두드려보지 않으면 열릴 문은 없다.
간절한 염원으로 가능한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시도해 보자.
다시 한번 투자유치부의 활약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염원에 답이 왔고 기적이 시작되었다.
서정진 사장을 만난 것.
“세계적인 바이오기업 제넨테크의 자회사인 벡스젠이 최초로 아시아 지역에 생산기지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송도신도시에 유치합시다.”
만약에 박 국장이 국제바이오 기업 유치에 목을 매고 있지 않았다면 이 제안은 이미 담당과장이 단호히 거절했듯이 송도신도시의 땅을 거저먹으려는 수많은 시도 중의 하나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박 국장은 즉시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벡스젠 사로 날아갔다.
가서 유치할 가치가 있는 바이오기업인지의 실체를 현지에서 직접 확인했다.
시설을 보고 보유 기술과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책임 있는 관계자들을 만나 아시아 진출 의사는 사실인지, 무엇이 진출 지역설정의 핵심인지도 확인했다.
그리고 결정과정에서 송도를 도와줄 우군이 누구인지도 탐색했다.
당연히 인천공항이라는 최고의 날개를 단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를 목표로 하는 국가발전전략적 미래도시 송도정보화신도시를 그들의 뇌리 속에 깊숙이 심어 주었다.
그리고 서정진 사장에게 조건을 달아 결정했다.
"유치합시다. 단, 반드시 R&D센터(기술연구소)도 함께 오는 조건입니다."
한편 투자유치부에 지시하여 외무부와 국정원 등에 협조를 구하여 해당 기업의 실체와 정보의 진위를 가능한 대로 다시 한번 확인을 시켰다.
실체가 확인되었다. 투자유치부에 벡스젠 유치 TF를 구성했다.
마침 현지 방문 시 만나 설명을 들은 벡스젠 사의 고문인 한국계 신승일 박사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최종적으로 서정진 사장 팀의 집념과 활약에 힘입어 벡스젠 사 이사회에서 싱가포르의 파격적인 제안을 누르고 송도신도시가 한 표 차이로 최종 결정되었다.
싱가포르가 제시한 유치조건은 부지의 무상 제공과 함께 최초 고용되는 280여 명의 BT분야 석박사의 교육비를 전액 부담하겠다는 것.
그런데 이것은 우리는 법상, 형편상 불가능한 입장.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송도신도시로 최종 입지가 결정된 것은 인천공항이라는 날개를 달은 송도정보화신도시의 입지와 미래비전, 그리고 대한민국 수도권의 우수 인재 활용의 시장성이 주된 요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업이 무산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한미 합작기업 셀트리온이 사업부지를 매입할 자금 조달에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국의 독특한 후진적 금융 관행이 그 원인이었다.
담보가 없으니 대출이 안 되는 것이었다.
대출이 안 되니 부지를 살 수 없고 부지가 없으니 모든 인허가도 진행될 수가 없었다.
사업성이 대출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미국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기적 같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아 보낼 수는 없었다.
박 국장의 고심이 깊어졌다.
그리고 결국 방안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방안은 박 국장 자신의 공직생명을 걸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돈을 벌어서 10년 후에 갚도록 하는 외상 매각 방식이었다.
이것이 지방재정법과 공유재산관리법 등을 저촉하지 않으면서 돈 없는 셀트리온에게 합법적으로 토지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고 후일 특혜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사업이 잘되면 다행인데 안 되면 대금을 받을 수가 없고 토지로 회수해야 하는데 그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정부감사를 받을 경우 중징계에 수사의뢰가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처분의 대상이 확실했다.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뇌물을 받지 않으면 감옥에 갈 일은 없겠지만 공직생명을 걸어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공직생명을 걸고라도 가야 하는 길이었다.
“가자. 큰일이니 크게 걸자.”
“내 관운이 여기 까지뿐이라면 받아들이자.”
“내가 평생을 건 프로젝트인데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해 봐도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고 훗날 박 국장은 회고한다.
“무엇을, 누구를 위하여 나는 내 공직생명을 걸어야 하는가”
공영개발사업단의 후신으로 송도신도시 개발을 관장하고 있는 도시개발본부의 본부장은 오홍식이었다.
신설한 투자유치부가 여기 소속이다.
게일 사 유치, 셀트리온 유치 등 어려운 일을 잘 치러냈다.
오홍식 본부장에게 지시했다.
“10년 후 불입 조건으로 매각하는 것으로 기안해서 결재를 올리되 결재난은 기획관리실장과 시장 두 개만 만들어 올리세요.”
“왜 그렇습니까?”
“위험한 결정이니 둘이면 충분해.”
결재가 올라왔다.
결재 난이 세 개였다.
그리고 오홍식 본부장이 사인을 해서 올렸다.
오 본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오 본부장, 결재 난을 두 개만 하라고 한 말 잊었어?”
“형님, 죽어도 같이 죽읍시다.”
박 국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억울해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한 것이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 공직자로서 어렵게 살아온 과정이 오 본부장의 그 말로 보답을 받은 듯했다.
지금 송도국제도시는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최대의 “바이오 클러스터”가 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불모지 대한민국 송도신도시에 불과 20여 년 만에 이룬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적이다.
박 국장이 2001년 바이오산업 육성을 목표를 세우고 기술개발의 첫걸음부터 시작하는 대신 기술과 돈과 시장을 가진 국제바이오 기업을 유치해서 승부를 걸겠다는 발상의 전환은 성공했다.
송도국제도시는 대한민국의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중심이 되었고 바이오산업을 기반으로 밝은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