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네 번째 관문, 결정 4
네 번째 관문: 결정 4
<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인천직할시 공영개발사업단에서 어렵게 어렵게 매립인가 절차를 마치고 사업자금을 벌어서 송도신도시 매립사업에 착수한 지 10여 년 만에 1단계 매립지 535만 평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소위 IMF 사태라고 일컫는 국가적 외환위기를 맞게 되어 도시건설을 위한 투자유치는 고사하고 토지매각 자체가 불가능해지니 도하 각 언론에서는 ‘인천시 파산’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실제로 IMF 사태하에서 부동산 관련 사업은 살아남기가 어려웠다. 서슬 퍼런 IMF는 모든 기업에게 보유 부동산을 처분하여 자기 자본 비율을 높이도록 했고 당연히 새로운 부동산 취득은 허용되지 않았다. 기업들은 줄이어 도산했으며 직장을 잃은 사람이 넘쳐났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갈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국가부도 상태의 암담한 경제충격 아래에서 집을 사고 건물을 사서 미래를 꿈꾸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었다.
당연히 송도신도시 사업도 좌초위기에 당면했다. >
박 국장은 행정자치부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무총리 산하 부처 합동 기구인 문민협의 운영국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화장실 혁명’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던 차 최기선 인천시장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박 국장, 신문 봤지. 인천파산 운운하는.”
“네, 그렇지 않아도 걱정하고 있던 차입니다.”
“내려와서 어떻게 좀 해봐. 박 국장이 만든 거잖아.”
최기선 시장의 요청을 받고 행정자치부를 떠나 다시 인천광역시 기획관리실장으로 부임했다.
난국 타개를 위해 맨 처음 한 것은 가능성 없는 국내 기업에 대한 토지매각 시도를 접고 해외 투자자 물색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는 것으로부터였다.
그리고 위기는 곧 기회, 파산상황을 수습하고 사업의 반전을 통한 본격적으로 미래도시의 꿈을 다시 불 붙이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이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로‘투자유치부’라는 외자유치 전담 조직을 도시개발본부에 신설하였다. 도시개발본부는 공영개발사업단의 후신이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전신이다.
그것은 가망 없는 국내 투자유치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해외 투자유치로 방향을 선회하는 정책 전환과 함께 그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을 위한 결정이었다.
이 새로운 시스템으로 미국 뉴욕의 유명 디벨로퍼인 게일 사를 유치하고 송도정보화신도시 국제업무지구(IBD) 167만 평을 127억 불을 투자하여 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하여 완벽한 국면전환은 물론 본격적인 미래도시 건설을 시작한다. 또한 이를 계기로 활용하여 ‘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하고 ‘인천대교’ 건설과 ‘송도 지하철’ 건설을 이루어내게 된다.
이들 세 가지 조건은 인천을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자 특히 인천의 최변방에 위치한 불모지였던 송도신도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이는 당초에 기대한 대로 불모지에 다름 아닌 송도신도시 지역의 사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킴으로써 그 혹독한 부동산 사업 빙하기라 일컫는 IMF 사태에도 불구하고 송도불패의 신화를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제적 찬사를 받고 인천의 미래를 밝히는 송도정보화신도시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외자유치도, 3대 조건을 실현시키는 것도 또 다른 ‘가능성 제로’의 상황이었다.
당시는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 최악의 환경을 극복해야만 했고, 단 한 가지 남은 방안은 해외투자 유치였다. IMF 사태라는 최악의 사업환경 아래서 $127억 불이라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렵게 만든 조직 ‘투자유치부’가 역량을 발휘해 주었다.
미국 뉴욕의 이름 있는 디벨로퍼인 게일 회장 일행이 관심을 가지고 인천을 방문했다.
박 국장은 최기선 시장과 함께 경찰 헬기를 빌려 인천과 송도신도시 입지를 보여주고 미래도시 건설사업에 투자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된 게일 사 투자유치 협상은 미국과 한국을 수십 차례 오가며 이어졌다. 그러나 1년 여가 되도록 협상이 종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무려 127억 불을 투자해야 하는 게일 사는 사업성공에 확신이 서지 않았고, 인천은 당초에 시장이 약속했던 토지가격을 이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손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기선 시장이 약속했던 토지가격은 ‘토지 조성원가의 절반 가격’으로 평당 25만 원선이었다. 이것은 법상 불가능한 가격이었다.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 해도 조성원가는 받아야 했다.
이외에도 이 사업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반드시 특혜시비가 불거질 것이었다.
협상 책임자인 박 국장은 게일 회장에게 사업성공의 확신도 심어주어야 했고 동시에 정상적인 토지가격도 받아내야 했다.
참으로 어려운 과제였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가능성 제로’의 사업이었다.
어려움 극복의 연속이었고 극복하지 못하면 사업은 좌초되는 것이었다.
박 국장은 프로젝트 기획 당시부터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이라는 정책목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도시개발사업이 성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제도시로서 홍콩과 같은 경제자유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를 늘 가슴에 담고 있었다.
이제 기다리던 그 기회가 왔다. 배수진을 칠 때였다.
어차피 게일 사를 유치하지 못하면 사업성공은 물 건너가는 것이었다.
당시 IMF사태를 맞은 우리나라는 외자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외자유치는 부족한 달러를 들여오게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거의 빈사상태에 처한 한국 경제를 돌아가게 할 투자라는 기름을 확보하는 동시에, 그렇게 됨으로써 국제적 신뢰도 회복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리 작은 외자투자라도 중요하게 여기고 거국적으로 외자유치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기회'였다.
이 기회를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건곤일척의 배수진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 번뿐인 중요한 카드, 극적이면서 마지막 타이밍의 순간을 봐야 하는 것이다.
참을성 있게 분위기를 조성했다.
게일 회장은 선대부터 대를 이은 뉴욕의 성공한 디벨로퍼이고 존 하인즈 사장은 하버드대를 졸업한 재목으로 친할아버지가 보스턴의 전설로 불리는 하인즈 보스턴 시장이다.
박국장이 중점을 두고 설득한 포인트는 송도정보화신도시는 국가발전전략적 미래도시라는 점, 장래 홍콩을 넘어서는 국제허브도시의 비전을 가지고 추진되는 국가적 프로젝트로서 이미 인천국제공항 개항으로 날개를 달고 있다는 점을 세뇌하듯이 강조하고 도시계획적 그리고 사업적 비전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토지가격은 민감한 사항이라 말도 꺼내지 못하고 신도시의 미래적 가치만 되풀이하여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제시된 그 가격으로도 사업이 될까 말까 판단이 안 서는 상태에서 토지 값을 몇 배로 올려달라고 하면 협상은 깨질 것이 명약관화했다.
게일 사는 개발사업 경험이 많은 전문가 그룹이다.
인천의 변방에 위치하여 환경이 열악한 송도에 지은 아파트나 비즈니스 빌딩이 팔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IMF 사태로 몰락한 한국 전체의 부동산 경기가 언제 살아날지 전망이 안 되는 상황에서 투자를 결정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박 국장이 제시하는 비전은 게일 회장의 야망과 비즈니스 감각을 자극하여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후일 게일 회장이 박 국장에게 고백한 바로는 대를 이은 디벨로퍼로서 박 국장이 제시하는 비전을 듣고 한 블록이 아니라 하나의 신도시를 만들어 보고 싶은 야망이 손을 뗄 수 없게 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한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이제는 1년여에 걸친 협상을 어떻게든 종결지어야 했다.
2002년 1월, 대미를 장식할 협상이 된 회의가 뉴욕에서 일주일여에 걸쳐서 있었다.
이때 박 국장은 투자유치 협상 성공은 물론 송도정보화신도시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그동안 준비해 왔던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게일 사 측에 제안한다.
이 회의에는 게일 회장과 존 하인즈 사장은 물론 협상을 맡은 로펌, 뉴욕의 세계적인 설계회사인 KPF, 투자자문 모건스탠리 측 등이 모두 참석한 자리였다.
회의가 시작되자 박 국장은 좌중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운을 떼었다.
“혹시 이 회의에 참석하신 분 중에서 이 사업이 성공할 것으로 믿는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
“아무도 안 계시는군요.”
“사실은 저도 이 사업이 성공하리라고 믿고 있지 않습니다.”
“!!!!!!!!????????”
충격을 받은 참석자들 모두의 의아한 시선이 박 국장에게 모아졌다.
"오늘 저는 이 사업의 성공을 보장(guarantee)하는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이 조건은 계약서에 명기될 것입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사업이 진척되지 못한다면 토지 대금을 반환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조건이 충족되었음에도 사업에 성공을 하지 못한다면 게일 사가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 이것을 인정한다면 다음의 사항에 동의하시기 바랍니다.”
인천이 보장해 줄 조건의 내용은 3가지.
첫째로 송도정보화신도시를 ‘경제특구’로 지정해 준다.
둘째로 인천신공항과 송도신도시를 15분에 직결하는 ‘제2연육교(인천대교)’를 건설해 준다.
셋째로 송도신도시에 ‘지하철’을 넣어준다.
그 대신 게일 사는 이 프로젝트가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를 건설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인천이 제시하는 도시계획(스토리텔링 도시계획)하에 도시디자인과 건설의 국제적인 수준을 확보하면서 다음 사항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1. 사업토지의 가격을 당초 인천시에서 제시한 ‘조성원가의 절반 가격’은 이행이 불가하니 ‘시가’로 지불해 줄 것, 그리고 사업구역 내 미매립 부분도 선지급할 것.
2. 센트럴파크(15만 평)를 조성해서 인천시에 1달러에 매각해 줄 것.
3. 국제전시시설(컨벤시아)을 선투자 조성할 것.
4. 국제규모의 잭니컬러스 골프장을 건설하고 PGA급 대회를 유치할 것.
5. 최고 수준의 국제학교를 유치 개설할 것.
6. 사업수익의 반출은 최종적으로 비즈니스(오피스) 빌딩이 분양된 후 가능.
게일 사는 그 제안을 100% 수용했다.
게일 사와의 건곤일척의 딜은 성공했다.
그러나 인천이 달성해야 할 세 가지 약속은 지하철 건설을 제외하고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모두 100% 정부의 손에 달려있는데, 제2연육교 건설은 이미 인천이 외자유치를 통하여 영국의 AMEC으로부터 1억 불을 확보했음에도 정부의 강한 반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고,
경제특구는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초유의 제도로 정부와 국회를 넘을 가능성이 없었고, 다른 지자체들의 특혜시비도 예상되는 등 여러 가지 여건상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운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었다.
진짜 건곤일척의 딜은 이제부터였고 어떻게 정부를 설득하여 약속을 이행하느냐의 무겁고도 어려운 과제는 박 국장의 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양측의 그 약속은 차질 없이 이행되어 엄연한 현실이 되어있다.
박 국장의 건곤일척의 승부수는 한치의 차질도 없이 적중했고
송도신도시 프로젝트는 사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였다.
그리고 인천공항과 함께 송도국제도시의 미래전략을 이끌고 있다.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경제특구 약속은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하여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하였고 국내 최초로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되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개청 된다.
인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직결하는 제2연육교인 인천대교는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하여 승인을 받아 2009년 개통한다.
송도신도시 지하철은 인천지하철 1호선을 연장하여 개통하였다.
애당초 송도국제도시의 날개로서 기획된 인천공항이 드디어 명실공히 송도정보화신도시의 어깨 위에 장착된 것이다.
인천대교가 없다면 송도에서 공항까지 1시간 반 이상이 소요된다. 그런 상황 아래에서는 인천공항은 이미 송도신도시를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로 만들기 위한 전략시설로 작동될 수 없었고 아울러 송도신도시 분양 사업도 흥행이 될 가능성이 없었다.
박 국장은 모든 약속을 차질 없이 이행하였다.
한편 송도신도시 사업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게일사에 요구하여 성사된 게일 회장의 약속도 하나도 빠짐없이 이행되었고 송도국제도시의 명성과 수준 높은 시민의 삶의 질 그리고 시민의 긍지가 되고 있다.
먼저 대전제인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로서의 수준과 품격을 가진 도시 디자인과 도시건설’ 요구는 송도국제도시의 핵심지역인 국제업무지구(IBD) 167만 평을 국제적인 찬사를 받을 만큼의 수준으로 마무리하였다.
오늘의 송도국제도시의 명성은 이것을 바탕으로 한다.
설계를 담당한 뉴욕의 KPF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대한민국 서울의 랜드마크인 150층짜리 ‘롯데타워’의 설계를 수주한다.
국제업무지구 부지 대금을 '시가'로 지급해 달라는 요구는 제일 먼저 이행되었다.
인천시가 지정한 공식평가기관의 시가평가를 통하여 책정되었고 지급되었다. 그것은 최기선 시장이 당초 제시했던 금액의 4배(1단계 부지) 및 8배(2단계 부지)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아직 매립이 되지 않은 부분까지 대금이 선지급되었다.
인천은 파산의 위기를 넘어서 추가 매립공사와 신도시의 인프라 건설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도시건설에 날개를 달았다.
‘송도 센트럴파크’는 살기 좋고 멋진 송도정보화신도시의 얼굴이 되었다.
센트럴파크가 없는 송도국제도시는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괜찮은 신도시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게일 회장은 박 국장이 요구한 센트럴파크의 중심을 관통하는 운하를 이태리의 베니스, 중국의 소주 등 전 세계의 운하도시를 직접 방문 벤치마킹하여 최종적으로 베니스의 운하형태를 형상화하여 완성하는 의욕과 성의를 보였다.
게일 사는 15만여 평에 달하는 센트럴파크를 조성하여 약속대로 인천시에 단 1달러에 인도한다.
송도신도시에서 가장 값나가는 도시 중심의 금싸라기 부지를 팔지도 못하는 공원으로 과감히 할애한 박 국장의 도시계획적 결단과 게일 사의 국제적이고 진정 어린 도시건설 실력이 맞아떨어져서 운하라는 수변경관과 너르고 푸르른 녹지와 함께 어우러지는 멋진 건축물의 핵심적인 도시경관이 탄생할 수 있었고 송도국제도시가 목표했던 바로 그 이미지와 높은 삶의 질, 그리고 시민의 긍지와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최고의 도시가 되는 기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시민들은 생활 속에서 느끼고 즐기며 자랑스러워한다.
방문객들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송도컨벤시아’는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인프라인 국제규모의 컨벤션 시설이다.
당시 파산설에 오르내리는 인천시가 돈을 마련하여 조성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꼭 필요한 시설이었다.
게일사에서 선투자 조성하고 후에 인천시가 실비로 인수하는 조건을 제시한 이유이다.
이 국제 수준의 감각적 디자인을 가진 대규모 국제전시장인 송도컨벤시아는 2005년 착공하여 2008년 문을 연다. 후일 게일 사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이 시설을 무상으로 인천시에 넘겨주었다.
‘채드윅 국제학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국제학교로 평가받는 명문 교육기관이다.
좋은 교육환경은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한 필수 인프라이다.
더욱이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송도국제도시가 송도에 와서 일을 하는 높은 수준의 외국인들의 자녀 교육 시설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확보하는 것은 또 하나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도시성장의 두 축은 일자리와 교육이다.
박 국장이 송도신도시의 성장전략을 위해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인 "우리나라의 도시성장 결정요인"에서 도출하고 검증한 결과이다.
송도국제도시는 그 한 축인 교육 부문의 대단한 자산을 단기간에 확보한 셈이다.
‘잭 니콜라우스 골프장과 PGA 대회 유치’
송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는 고급인력이 모이고 살아야 하는 국제도시다.
삶의 질 가운데는 여가(Fun) 시설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런 차원에서 도시 내 골프장 확보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값비싼 도시부지에 수십만 평의 골프장을 유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시에서 직접 할만한 시설 분야가 아니다. 돈도 없지만 운영도 만만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당시 골프장 건설이 가능한 토지가의 한계는 평당 30만 원선, 게일 사가 지불하는 송도신도시 토지가는 평당 105만 원, 도대체 무리한 요구였지만 게일 회장은 박 국장의 요구를 수용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었지만 미국에서는 활발했던 골프빌라 허가를 조건으로 설득했다. 게일 사가 웨스트팜비치에서 운영 중인 대형 골프리조트에도 골프빌라가 있었던 것을 놓치지 않은 결과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명문 잭 니콜라우스 골프장을 만들어 그의 영향력으로 PGA대회를 유치하도록 부탁했다. 잭 니콜라우스가 게일 회장의 친구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골프계의 세계적 전설인 잭 니콜라우스는 골프장 레이아웃을 직접 했고 정기적으로 방한하여 건설을 직접 감독하였다. 그리고..
2015년 프레지던츠컵 대회가 아시아 최초로 송도국제도시의 잭니콜라우스 골프장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박 국장의 건곤일척의 승부수는 기적을 불렀다.
이것은 박 국장에게 전권을 부여한 최기선 시장 리더십의 승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