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두 번째 관문, 결정 2
두 번째 관문: 결정 2
박 국장은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프로젝트에 대한 승인을 받자마자 이 프로젝트를 전담하여 추진할 조직 구성을 이재창 시장에게 건의하여 ‘인천직할시 공영개발사업단’을 창설한다.
이재창 시장은 박 국장이 초대 단장을 맡아 사업을 추진해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박 국장은 무려 23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본인의 인생계획인 중앙부처에 가서 국가경영에 참여하는 것도, 장관의 목표도 포기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망설인다.
그러나 박 국장이 아니면 누가 이 거대 프로젝트의 내용을 알고 추진할 수 있느냐는 시장의 설득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프로젝트에 공직의 일생을 걸기로 결심하고 단장직을 수락한다.
그리고 공직을, 그리고 인생을 걸고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전략무기를 선정하고 이재창 시장에게 조목조목 건의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챙겼다.
이재창 시장은 행정의 프로다.
박 국장의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했으며 전문가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여 쾌히 그리고 과감하게 조치를 해주었다.
물론 박 국장의 요구사항은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 요구사항은 세 가지였다.
첫째, 공영개발사업단장에게 사업대상지 도시계획에 대한 전권을 부여할 것
둘째, 공영개발사업단장에게 재정권을 줄 것
셋째, 박 국장에게 공영개발사업단 요원 선발권을 줄 것
이재창 시장은 조례를 개정 또는 제정하여 도시계획 권한을 주고 재정독립을 위한 특별회계를 만들어 주었다. 공영개발사업단 요원 선발은 박 국장이 요구한 사람을 배치했다.
시의 다른 간부들은 의아해했다.
그리고 수군대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시장들은 박 국장이 원하면 다해주는 거지?”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송도정보화신도시 사업은 결코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1,500여 만평의 신도시, 그것도 정보화신도시를 목표로 한 미래도시를 건설하려면 당시의 기준으로도 가히 수조 원의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천시의 재정형편으로는 한해 100억 원도 편성이 된다는 보장이 전무했다. 결국 시예산을 받아서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100년이 걸려도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발에 소요되는 재원을 자체 확보를 해야 했다.
이는 경영사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공무원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직접 벌어야 하는 초유의 일이었다.
박 국장은 자체 도시개발사업을 벌여서 매립 공사비를 벌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그러나 당시 지금까지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업무를 해야 하는 신설기관인 공영개발사업단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없었다.
특히 도시개발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핵심이 도시계획 결정과 인허가인데 일일이 해당되는 여러 담당부서를 설득하기도 어렵고, 적기에 사업진행이 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뜻을 같이하는 이재창 시장이 지원을 해주겠지만 언제든지 정부 인사발령에 의해 다른 시장이 오게 될 텐데 그때는 사정이 다를 수 있었다. 무려 23년이 걸리는 장기 사업이다.
특히 매립사업이 끝나고 도시건설 단계에 들어가면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도시계획으로 정보화신도시를 구현해야 하는데 기존의 옛날식 도시계획 개념으로 무장된 시의 도시계획부서를 넘어서는 것은 아마도 대통령으로부터 사업승인을 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임을 행정경험을 통해 판단할 수 있었다.
도시계획에 대한 원스톱 전권이 필요했고 확보했다.
그런데 도대체 재정권은 왜 필요했던 것인가
프로젝트 추진 재원은 자체 경영사업으로 스스로 벌어서 충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별도 조치가 없으면 벌어들인 이 돈은 일반회계의 세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다음 해에 사업자금으로 쓰기 위해서는 예산부서의 복잡한 예산편성 과정을 거쳐서 사업예산을 편성받아야 하는데 공영개발사업단의 요구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다. 아무리 스스로 벌어도 사업진행이 보장이 안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 사업은 전혀 미래가 불투명하고 결국 일반 행정기관 업무행태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절박한 목표가 있었고 핑계 뒤에 숨어서는 안 되었다.
조례를 제정하여 세입과 세출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특별회계를 만들어서 해결했다.
실제로 공영개발사업단은 부여받은 도시계획 결정권과 인허가권을 백분 활용하여 큰 걸림돌 없이 적기에 도시개발사업을 시행하여 사업자금을 성공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고, 독립된 특별회계를 통하여 사업자금을 효율적으로 목표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에 대다수의 정부사업처럼 정부의 지원이나 인천시의 예산, 즉 세금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다면 이 사업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은 자명하다.
다음으로는‘사람’의 확보였다.
프로젝트 기획은 혼자로서도 가능하고 오히려 혼자가 좋을 수도 있지만 이 거대한 사업의 추진은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능력이 있고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재창 시장이 허여 해준 공개단 요원 선발 권한을 활용했다.
그동안 인천시청에서 일하면서 이때를 대비하여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좋은 사람이 보이면 메모를 해두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훈련을 시켰다. 본인 소관의 일이 아니라도 담당자와 건설부에 함께 가게 해서 안면을 익히게 했다. 그 요원들은 훗날 “아, 그래서 그때 내 소관도 아닌데 날 보냈던 것이군요.”라고 좋아했다.
그렇게 평소 평가해 두었고 같이 일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공영개발사업단의 창단요원으로 선발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단장의 “책임과 성과를 통해 인천을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만든다”는 기치 아래 원팀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일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사람의 힘은 크다.
그들이 없었으면 이 사업은 아직도 포부와 계획으로 끝나고 말았을 만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중요한 역할을 온몸을 던져 수행해 주었다.
예를 들면, 건설부 소관의 공유수면 매립기본계획 및 매립인가를 받아 오는 일, 도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성을 만들어 최단 시간에 토지를 사고 개발하여 분양함으로써 필요한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일, 공항건설에 대한 주민동의를 확보하고 인천공항에 필요한 부지를 영종 용유지역 주민을 설득하여 조기 보상하는 일 등, 모든 정열을 바쳐 일했던 ‘사람’들 덕분에 오늘의 송도국제도시와 인천공항, 인천대교,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있고 밝은 인천의 현재와 미래가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이들을 조례 등으로 제도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박 국장이 인천을 떠나 중앙정부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20여 년이 넘는 세월에도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박 국장이 이루어낸 프로젝트 성공의 두 번째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