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첫번째 관문, 결정 1
첫 번째 관문: 결정 1
박 국장이 만든 기획서, 즉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정책(포스트 홍콩 전략) ’과 그를 실현시키기 위한 ‘송도정보화신도시’ 프로젝트, 영종신공항‘ 프로젝트, 그리고 ’영종 용유 국제해상관광단지‘ 프로젝트는 자타가 공인하는 가능성 제로의 프로젝트였다.
1980년대, 수도권 억제정책은 역대 정부의 최우선의 정책과제였다.
송도신도시와 인천공항 프로젝트는 이를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불가능의 요소는 그뿐이 아니었다.
수도권신공항은 이미 청주로 정해져서 부지 매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프로젝트의 양대 무대 중의 하나인 영종도 용유도 무의도는 인천 땅이 아니고 경기도 행정구역이었다.
그럼에도 노태우 대통령은 영종 용유 무의도를 파격적으로 인천에 주면서까지 프로젝트를 승인한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88년 대통령에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인천직할시 초도순시에서 놓칠 수 없는 정책 프로젝트와 만난다.
이재창 인천직할시장이 별실에서 보고한 송도정보화신도시, 영종신공항, 영종용유 국제해양관광단지 조성 프로젝트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 아래에서 2인자로서 오랫동안 국가경영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새 정부 국정어젠다로 국내적으로는 “서해안시대”와 국제적으로는 “북방정책”의 기치를 내걸었다.
중국의 개방,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등 세기적인 국제정세의 대변환에 대비하는 전략적인 포석이었다.
그리고 그 웅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한편 동북아는 새로운 국제 HUB 경쟁이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NASA에서 미국과 동북아를 3시간 40분대에 주파하는 신기종 초음속 여객기 SST(Super Sonic Transportation)가 개발되고 이는 국제 HUB 개념을 새로이 바꾸는 계기가 된다.
동북아의 용들은 본격적으로 이 새로운 HUB 경쟁에 나서고 있었다.
일본의 간사이공항, 홍콩의 책랍콕공항, 중국의 푸동공항,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확장 추진 등이 그것이다.
이 새로운 HUB 공항은 24시간 운영이 필수요건이며 첨단항공기 그리고 첨단물류시설 등의 미래 신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확장성을 보유해야 한다.
이 조건들을 만족하는 곳은 해상공항이다.
경쟁국들은 바다를 매립하여 신공항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국토균형개발의 주술에 취하여 새로이 건설할 수도권신공항을 중부내륙 깊숙한 곳인 “충북 청주”에 입지를 정했다.
그리고 동북아의 HUB 경쟁과 국가발전의 미래에 대하여 귀를 닫고 입을 닫고 있었다. 아무도 문제의식을 가지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때 박 국장은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일명 포스트 홍콩전략) 정책”과 그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젝트인 “송도정보화신도시”, “영종신공항”, “영종용유 국제해양관광단지”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고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노태우 대통령에게 끈질기게 보고하였다.
이는 중국의 개방을 대비하는 미래 전략적 프로젝트였다.
거기에다 동북아의 새로운 HUB를 목표로 한 수도권신공항 건설을 제시하고 하늘이 내린 최고의 해상공항 입지까지 발굴하여 제시한 것이다.
영종신공항은 24시간 운영, 미래 확장성, 그리고 SST 기종의 취항까지 대비하는 완벽한 입지에다 간사이공항 부지 건설비의 1/20이라는 놀라운 경제적 타당성까지 갖춘 완벽한 신공항 입지를 찾아 제시한 것이었다.
중국의 개방과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등 새로운 국제적 개방시대를 대비하는 국가적 미래전략의 구체적 프로젝트에 진심으로 목말라하던 노태우 대통령은 이를 놓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큰 정치적, 행정적 부담과 경기도의 거센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바로 1988년 정기국회에서 지방자치법을 개정하여 영종 용유 무의도를 인천으로 편입시켜 주고 영종도에 수도권신공항 건설을 검토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1989년 인천에서 건의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큰 결단이었다.
박 국장이 이 가능성 제로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추진하면서 기대한 단 하나의 가능성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안목과 결단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 기대는 정확하게 맞았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첫 번째 관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이것은 이 프로젝트의 전체 추진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의미 있는 성과였다.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만든 것,
그리고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을 직접 설득한 것.
이것이 프로젝트 성공의 비결을 만들어 낸 “결정 1”이다.